목록인물/칼럼/인터뷰 (230)
함께쓰는 민주주의
1980년, 그 해 봄은 유난히 어수선하고 뒤숭숭했다. 정국의 향방은 오리를 넘어 십리 안개 속에 있었고, 온갖 억측과 소문이 발 없이도 한반도 남쪽 땅을 뒤덮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구명 작업이 은밀히 벌어지는가 하면, 벌써부터 진원을 알 수 없는 쿠데타설이 생각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래도 봄은 봄이었다. 특히 대학가의 봄은 마치 이 때가 아니면 영영 봄이 없다는 식의 불안감을 부추기며 서둘러, 황급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퍼져나갔다. 감옥에 갔던 동료들이 무더기로 돌아왔다. 지하서클이 버젓이 간판을 내걸었다. 교수들의, 특히 학생 지도를 담당하던 교수들의 태도가 비굴하리만치 달라졌다. 그 와중에도 영어회화 카세트며 세계사상전집을 파는 외판..
불온하다는 게 무엇일까.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문] 다음 중 불온하지 않은 것은? 1. 여인의 몸뚱어리, 흰 구릉, 흰 허벅지, 그대는 대지와 같은 온몸을 내맡긴다. 나는 억센 농부의 몸으로 그대를 파헤쳐 대지의 밑바닥에서 애기를 튀어나오게 만든다. 2. 사실, 나는 인간인 것에 지친다. 양복 가게에도 가고 영화관에도 가지만. 사실, 펠트제의 백조처럼 불투명해지고 느른해져 나는 원시와 진흙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3. 나는 어디에 도착하였나, 나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이 생명 없는 도시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난 날 나를 사랑해 준 미치광이 아가씨의 거리도 지붕도 발견할 수 없다. 4. 나는 쓸 수가 있다, 오늘밤엔 가장 슬픈 시를. 나는 어느 여인을 사랑했고 그 여인도 몇 번인가 나를 사랑했..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보호를 하다보면 오히려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될 수 있다.”(이상수 노동부장관) “노동계의 주장대로 사유제한을 하게 되면 중소기업이 감내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되어 오히려 대규모 실업사태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사유제한을 받아들일 수 없다.”(우원식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 “이미 민주노동당은 기간제 사유제한 도입 시 중소기업들이 받을 충격을 감안해서 사유제한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소기업이 받을 충격을 걱정해 기간제 사유제한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은 ‘어렵고 힘든 사람끼리 윗돌 뽑아서 아래 돌 채우자는 것’이다.”(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지난달 3일,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 트랙터를 앞세우고 팽성읍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대책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트랙터에는 ‘식량주권 사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였다. 이들은 ‘토지 강제수용 절대 반대’와 ‘미군기지 확장 결사 반대’를 위해 11박 12일의 전국 순례를 떠나는 이었다. 농사짓는 일밖에 모르던 농민들이 농기계인 트랙터를 몰고 논두렁이 아닌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이다. 평택에서는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힘든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에 따라 한강 이북의 서울 용산 주한미군 사령부와 의정부 일대의 ..
유엔 회원국으로서 전후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連帶)에 동참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함은 물론, 이라크 정부의 요청, 다국적군과의 관계, 한·미 동맹관계 및 파병효과 제고 등을 고려하여 이라크에 파견된 국군 평화·재건지원부대의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것임. (‘국군부대의 이라크 파견연장 동의안’ 제안이유, 2005.11.23.)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동맹국인 영국, 오스트레 일리아 등 3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A) 보유와 알케에다와의 연관성 등의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다음날인 3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하여 ‘국군부대의 이라크 전쟁 파견 동의안’을 가결해 국회에 회부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황신혜밴드. 1997년 ‘빵꾸록’이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출현하여 ‘뽕짝’과 펑크를 뒤섞으며 ‘남진 시대’의 감수성을 되살려낸 밴드. 희망시장. 자신의 작품을 인정하고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찾는 작가들과 홍대 지역의 주민들, 새롭고 독특한 문화를 찾아 즐기는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날 수 있는 공간. 홍대앞문화예술협동조합(홍문협). 다원적이고 실험적인 창작활동의 전초기지인 홍대지역의 상업화에 따른 문화사막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 이 조합하기 힘든 조합 속에 조윤석(41)이 있다. 그는 황신혜밴드의 베이시스트였고, 희망시장이 생기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홍문협의 대표인, 홍대 앞 유명인사이다. 최근엔 윤이상 선생 10주기를 맞아 윤이상을 추모하는 콘서트 를 기획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
지난달 2일 2차 송환 대상자였던 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시신이 북측 가족들에게 인도되었다.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측으로 송환된 후 처음 실시된 송환이었으며 더욱이 유해 송환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장기수들의 송환 문제는 1993년 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선생이 북측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장기수 문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촉발되었고, 다양한 입장에서 ‘장기수’와 ‘전향’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얼마 전에는 장기수들의 수형생활과 송환 과정을 담은 영화들이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송환 문제는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
최영미(43) 씨는 글은 참 예리하고 정확한데 묘하게 깊은 정이 흐른다. 그녀를 만난 것도 그녀의 글을 통해서였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구직 포기자’에 관한 것이었다. 직업이 구해지지 않아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공식집계로만 11만 명이나 되고,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일주일에 18시간 미만만 일하는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궁금해졌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 연합통신에 의하면 IMF 이후 신 빈곤층이 716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셈이다. 8년 동안 현장을 뛰어다니며 빈곤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 해결을 위해 형식적인 복지가 아닌 참다운 복지를 고민해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녀..
농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세계적 시선에서 식량의 흐름을 바라보아야 한다. ‘경쟁의 시선’으로만 농업에 접근하면 앞으로 식량문제는 파멸이다. 시장논리로 농업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시선 으로는 180정보 이상을 소유한 미국 기업농과 경쟁하기 위해 6정보의 전업농을 육성한다는 조잡한 농업정책밖에 내올 수 없고, 농산물을 수입하고 핸드폰을 팔자는 단편적인 사고방식밖에 가질 수 없다. 근본부터가 잘못된 시선이다. 미국 내에서도 자유화와 시장경제 일변도의 농업정책이 비판받고 있다.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소비과정 모든 과정을 장악하려 하는 초국적 기업자본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제3세계 농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내의 가족농의 문제들과도 결합되어 있다. 가족농들이 기업농들에게..
동해의 영롱한 일출도 분단의 상처와 함께 담는 사진작가 [이시우] 지난 4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우려와 반발을 불러왔던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부시의 재집권으로 한층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 소위‘네오콘’으로 불리는 강경 보수세력들의 영향력이 더 확고해지면서 대북강경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전쟁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분단의 상흔을 담은 『민통선 평화기행』이라는 책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독일어로 번역되어 소개될 예정이고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서도 일어로 번역하겠다는 책이다. ‘동해의 영롱한 일출마저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