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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조영래 변호사의 흔적을 찾아서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12월 12일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겨우 만 43세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정확하게는 1990년 12월 12일이었다. 이 날이야 다 알다시피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가 시작된 날이지만 공교롭게도 1990년 12월 12일은 음력으로 10월 26일이었다. 돌아가신 날짜도 평범하지 않다. 길지 않았지만 그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정말 어마어마하기에 짧은 이 글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의 삶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1947년 3월 26일, 청송에서 대구로 온 조민제와 이남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옥, 순자, 순희 위로 내리 세 딸을 낳은 후에 얻은 첫 아들이었다. 정확히 ..
양천벌의 전쟁 : 30년 전, 목동 철거민 투쟁의 현장을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영등포와 양천구 사이를 흐르는 안양천, 그리고 두 구를 이어주는 오목교. 천변에 깔끔하게 조성된 체육공원에서는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며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오목교의 외관은 서울의 하천에 걸려있는 다른 다리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다리가 30년 전 안양천 변에 있는 판자촌의 존재와 철거민들의 결사적인 투쟁을 증언하는 몇 안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목동은 여의도와 더불어 한국 방송의 중심지이고 서울 서남권에서는 가장 부유한 아파트 단지이기고 하다, 최근에는 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오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지만 30년 전에는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장안벌을 흔든 27년 전의 함성. 건대 항쟁의 현장을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애국운동 탄압하는 살인정권 타도하자는 애학투련 학생들(1986.10.28) @openarchives 요즘 대학생들이나 일반시민들에게 ‘건국대학교’ 하면 무슨 생각이 나느냐고 물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00시티라는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로 대표되는 서울 동부권의 대표적인 상권을 떠올릴 것이고 일부는 건국대학교의 상징인 황소상이나 서울 시내에 보기 드문 인공호수 일감호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27년 전인 1986년 10월 28일, 이곳은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되었던 건대항쟁이 일어난 현장이었다.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 본관 앞에서 전국의 27개 대학 2,000여명이 모여 ‘전..
명동성당에 가려진 성당과 교회 -성공회 대성당과 향린교회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성공회 대성당 커다란 십자가를 눕혀놓은 형상의 성공회 대성당은 6‧10민주항쟁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이 성당이 어떻게 건설되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민주화의 성지인 명동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졌다. 성공회 성당은 마치 덕수궁의 일부인 것처럼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면 이 성당은 기본적으로 비잔틴-로마네스크 양식임에도 한국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성공회는 1890년 9월, 조선에 진출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서울에 성당을 짓지 않고 강화나 음성 같은 농촌에 한옥 성당을 지으면서 선교를 시작했다. ..
노무현의 흔적을 서울에서 찾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5월은 5·16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만으로도 한국 현대사에서 기록될 만한 달이지만 4년 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더욱 ‘쎈’ 달이 되고 말았다. 그는 김해 봉화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부산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상고 출신답게 조세전문변호사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돌아섰다. 부산에서 6월민주항쟁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렸던 노무현 변호사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 국회의원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1988년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부산 동구에서 5공 핵심 허삼수를 이기고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로서 마흔 살이 넘도록 김해와 부산에서만 생활했던 그는 처음으..
지학순을 만나러 원주에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3월 12일은 지학순 원주교구 초대 주교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봉이자 정신적 지주로 기억하고, 어떤 이는 1985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누이를 만난 모습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학순 주교는 이런 평면적인 인상으로 기억될 인물이 아니다. 지학순 주교는 1921년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면 청학리(현 황해북도 중화군 중화읍)에서 태어나 1934년 1월 25일에 중화천주교회에서 메리놀선교회 소속 요셉 클먼 신부에게 영세를 받고, 소신학교인 서울 동성고등학교를 다녔다. 1948년 3월 함경남도에 있는 덕원신학교를 다니다가, 1950년 1월 17일 남북 분단 후 친구인..
도쿄의 늦봄 문익환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 나라가 한국 역사 특히 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한국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역사에도 적지 않은 무대를 제공한 나라이기도 하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진 곳도 도쿄가 아닌가! 하지만 1994년 1월 18일 세상을 떠난 문익환 목사만큼 일본에 많은 흔적을 남긴 민주인사도 드물다. 문익환 목사와 도쿄의 첫 인연은 1938년에 도쿄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사실 학교보다 유학 온 신학생들이 모임인 관동조선신학생회가 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평생의 반려 박용길을 그 모임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마루노우치 빌딩가] 문익환 목사와 도쿄와의 두 번째 인연은 한국전쟁..
12월, 김근태의 길을 가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상지회관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2011년 12월 30일, 투병 중이던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 의장이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고문 후유증이 사인 중 하나였기에 다시 한 번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김근태 전 의장은 자신의 고문 기록을 이란 제목의 책으로 엮었고, 이 책을 정지영 감독이 최근 로 영화화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문재인, 안철수 후보와 함께 시사회에서 보았다. 같이 간 선배는 실제 남영동에서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한 피해자였다. 영화를 보면 고문실에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산이나 서빙고는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소리 때문에 고문..
서울역에서 청계천까지 소년 전태일, 청년 전태일의 길을 걷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11월은 공휴일도 없고, 4월의 4.19혁명기념일, 5월의 5.18민주화운동기념일, 6월의 6.10민주항쟁기념일처럼 이렇다 할 기념일도 없는데다가 마지막 달의 전 달이라 뭔가 ‘밋밋해’ 보인다. 하지만 13일만은 결코 평범한 날이 아니다. 물론 일반적인 달력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 민주화와 노동운동에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날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열사는 1954년,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자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이소선 어머니와 염천교 밑에서 노숙하면서 만리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
10월 유신 그리고 장준하 글 한종수(wiking@hanmail.net) 올해는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게 만든 최악의 폭거인 10월 유신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운명일까? 바로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씨가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다. 거의 전 국민이 유신의 피해자였지만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라면 인혁당사건으로 ‘사법살인’을 당하신 여덟 분과 장준하 선생님을 드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새로 조성된 장준하 공원으로 이장하면서 공개된 선생의 유골은 실족사가 아닌 타살의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렇게 장준하! 그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장준하 선생의 일생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선생은 평안북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