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화 속 시대 읽기/시대와 시 (19)
함께쓰는 민주주의
미친 춤의 시대 -김혜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댄스나 율동이 아닌 ‘춤’은 원래 제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무의식이 춤의 동작을 결정한다. 1990년대 서울은 춤을 추고 있었던 것 같다. 개발 광풍이 서울 안에서 바깥으로 거대한 몸을 이동시키고, 부동산 시장은 계속해서 새로운 부자를 임명했다. 세기말적 분위기에 젊은이들은 조증과 울증을 반복했으며,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일본문화가 스며들었다. 군사정권이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내놓았고, TV에서는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당신의 경쟁상대는 누구냐고 자꾸 물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의 미친 경쟁은. 김혜순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은 긴 춤과 같다. 1994년에 출간된 시집은 시대적 감수성에 바투 붙은 시..
우리는 깃발을 믿지는 않지만 -오은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 2009)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사내가 구속되었다. 그는 대통령의 친형이며, 여권의 실세였고, 국회의원을 지낸 자다. 정권 말기, 대통령의 친인척이 거의 그래왔듯이 그도 검은 돈에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에게 돈을 준 자들은 지방 저축은행의 경영진이다. 그들은 서민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투기를 하고 서민의 희망을 무참히 모두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권력을 가진 자가, 서민을 돌보기는커녕 서민을 착복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그가 검찰에 출두했을 때, 한 시민이 그에게 계란을 던지자, 사내는 검찰청 관계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저런 사람 하나도 통제하지 못하나..
여기 노래가 그리고 날개가 -詩人 김남주 헌정 시집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여름이 되면 우리는 새삼 덥다고 불평이고 보양식을 찾거나 바다며 산으로 휴가를 떠난다. 뜨거움이 사라진 시대에 뜨거운 날씨만 남아 역시 무미건조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우리는 자연의 지속적이고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탄압에 맞서 얼음을 가득 채운 음료를 마시거나 에어컨을 틀거나 그것도 아님 연신 손부채질을 한다. 그렇다. 여름이 왔다. 나에게 항상 여름인 시인이 있다. 이승에는 없다. 그는 저 너머의 세상에 있다. 시인으로 혹은 전사(戰士)로 불린 사내, 목숨을 내건 투쟁과 영혼을 다한 시작(詩作)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 바로 김남주다. 스스로가 전사라고 굳게 외쳐왔던 시인. 그가 떠나..
슬픔을 길어 올려, 지금 다시 광주로 - 임동확 『매장시편』 글 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1980년 5월 이후가 그러했을 것이다. 하필 5월 광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5월의 남도에서 언어를 습득했으며, 5월의 한반도에서 삶을 지속시킨 많은 사람은 죄의식과 패배감의 등짐을 꾸려야 했다. 우연히 그곳에 없어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산 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곳에 있어서 죽은 자를 목도해야만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 그들은 바로 우리이다. 5월 죽음을 비켜난 우리 모두 죄인이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분과 아픔과 슬픔을 삭이고 말했던 것이다. 나는, ..
청춘을 타전함 -안현미 시집 『곰곰』 글 |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청춘의 시기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논하고, 인권과 평등을 생각해야 한다. 젊은이라면 무릇 더 나은 사회를 바라고, 더 좋은 공동체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외면하고 싶은 일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우리’ 혹은 ‘타자’와의 만남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강이 파헤쳐지는 모습이나 제주 해안의 수만 년 된 바위가 파괴되는 일은 결코 ‘나의 일’이 아니다. 용산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어도,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22명 죽었어도, 우리들 청춘은 ‘나만 아니면’ 된다. 무섭지 않은가. 나는 무섭다. 우리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심하게 휘둘렸다. 1970~80년대에 태어나서 IMF를 축으로 성인이 된 자들..
비극적 서정의 전위로, 그리고 강정으로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글 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역사는 발전하는가. 시는 질문에 답하는 장르가 아니다. 질문을 던지는 장르이다. 1983년 신군부가 열어놓은 컬러의 시대에 황지우 시인은 말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인은 세상을 뜨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사람이고, 세상을 뜨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우리 발붙일 곳은 결국 암석과 바다이다. 그들은 몇 만 년의 격동을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온 지구의 진정한 주인일지 모른다. 오늘 우리는 그들을 밟고 서 있을 면목이 없다. 우리는 살아 있어서, 우리가 살아 있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파괴한다. 우리가 세상을 가볍게 뜰 수 있는 새였다면,..
당신과 나는 모두 사람이었다. -이시영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40년을 넘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이시영 시인은 1969년 등단했고,『만월』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시를 쓰고, 시와 함께 살고, 웃고 울었다. 그리고 2012년 새 시집을 내었다. 시집의 제목은『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이다. 다소 비(非)서정적이고, 단도직입적이며, 느와르적이기도 한 제목의 시집을 꺼내본다. 1989년 겨울 벨기에제 수갑 차고 두 팔이 오라에 묶인 채 검찰청 조사 받으러 다닐 때 그 여자 다니던 무역회사 사무실이 바로 옆에 있었네. 호송버스가 검찰청사 어둑한 구치감으로 미끄러져들어가기 전에,..
아프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글 /서효인(시인, humanlover@naver.com)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00년대로 접어들고 다시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1987년의 뒤풀이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아님 엄살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시대의 폭력을 글의 엄살로 풀어낸 시인이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엄살을 그로테스크 시학이라 이름 붙였다. 모든 아픔은 그로테스크하고, 그런 엽기성은 이제야 제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지나가고 또한 흘러올 시대에 대한 응답으로 시를 택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시는 아프다. 어둡다. 슬프다. 그리고 아름답다. 시인이 시대에 부딪히는 방식에는 딱히 정답이 없다. 강고하고 악독한 시대에도 사람..
이 무거운 물음에 답할 수 있겠는가 글 /서효인(시인, humanlover@naver.com)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참으로 안타깝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 한창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젊은 시인을 에 소개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처참하고 비루하다. 쓰디쓴 통탄으로 감히 시인에 대해서 말한다. 시인은 지금 수감 중이고, 얼마 전 그에 대한 구속적부심은 기각되었다. 그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고, 도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법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 된다. 그는 희망버스를 기획했고, 희망버스에 같이 탔다. 시민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를 썼고, 올해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름은 송경동이다. 그의 별명은 울보다. 그는 아마도 말도 ..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글 /서효인(시인, humanlover@naver.com) 여기 선거로 뽑은 대표자가 있다. 여기 선거로 뽑힌 자들이 나라를 대표해 모이는 건물이 있다. 지붕이 둥그런 건물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사내가 있고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결정에 의해서 혹은 욕망에 의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시스템은 결정된다. 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방법은 다시 돌아오는 선거에서 한 표 던지는 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어떤 측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고도 하고, 어떤 측에서는 대의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음에 큰 의심을 품고 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