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계의 민주화운동 (31)
함께쓰는 민주주의
지금도 진행 중인 '이집트 시민 혁명' 무바라크 퇴진했지만 이집트 국민은 "변한 게 없다" 불만 한상용 연합뉴스 카이로 특파원 / gogo213@yna.co.kr 중동의 맹주국 이집트에서 올해 초 일어난 민주화 시민운동은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집트가 중동 다른 나라에 비해 먼저 혁명을 이뤄낸 셈이다. 그렇지만 현지 국민은 여전히 더디기만 한 개혁 진행 속도에 불만을 드러내며 과도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독재권력의 장기 집권으로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높은 실업률과 나날이 치솟는 물가가 개선되지 않은 점도 국민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혁명 이후 무바라크는 끝내 물러났지만 사실상 변화를 체감하는 이집트인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한동안 잠잠했던 시위대..
태국 첫 여성 총리 잉락 친나왓이 8월 중순 취임합니다.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된 탁신 친나왓의 막내 여동생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오랫동안 '쿠데타의 나라'였던 태국의 정치 모습을 짚어 보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사업회 소식지 2006년 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태국, 자유의 나라를 향한 힘겨운 행진 - 박은홍 군부독재의 다른 이름 ‘태국식 민주주의’ ‘자유의 나라’란 뜻의 태국. 그러나 한때 ‘쿠데타의 나라’라고 불렸던 태국. 이 나라에서는 1932년 절대왕정이 입헌왕정으로 대체된 이래 1991년 쿠데타가 있기까지 13개의 헌법, 15번의 총선, 17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1946년부터 1981년까지 143개의 정당이 있었으나 단지 소수 정당만이 3년 이상을 버텼다. 의회가 임..
길고도 짧은 민주주의 역사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고도 짧다. 우선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이미 기원 전 5세기경 그리스 도시국가, 특히 아테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민주주의 역사를 계산하면 그것은 무려 2,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가 당시의 시작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 전 그리스시대에 민주정(democracy)의 모습으로 그리고 로마시대에 공화정(republic) 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민주주의는 이후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이렇게 길다 할지라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주의에서 직접 기원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직접적인 기원은 17~18..
‘제 3세계주의’의 기원과 진화 ‘제 3세계’는 지난 20세기 미국-소련 사이 동서 냉전구조가 고착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원래 제 1세계를 지칭하는 미국, 서유럽, 일본 등과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도 아니고, 제 2세계를 지칭하는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WTO)의 가맹국들도 아닌 제 3의 국가군을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각에서는 제 2세계가 사실상 소멸된 현재와 같은 탈냉전 시기에 제 3세계라는 범주가 더 이상 유효한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 3세계 개념은 국제사회에서 식민지 역사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개발도상국’,‘ 후진국’,‘ 약소국’,‘ 빈국’등과 같은 의미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제 3세계..
2차 대전 이후의 민주주의 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유럽의 대부분은 권위주의 정부의 지배를 받았지만, 전후에는 모든 정치세력이 민주적 헌법과 자유선거를 통한 민주정부 수립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치세력은 독일군의 점령에 협력하면서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민주주의야말로 지옥과 같은 전쟁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후 유럽에‘냉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국제정치의 역학은 민주화의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서유럽에서 반공주의 정부가 등장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데 비해, 소련의 외교정책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반대파를 억압하고 민주적 정치를 중단시켰다. 연합국의 점..
1차 세계대전 이후 왜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어났는가?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민주주의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마치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하자 전 유럽에 민족주의가 확산된 것처럼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민주주의의 물결이 전 유럽을 흔들었다.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토만 제국은 전쟁에서 패배 하자 완전히 해체되었다. 핀란드, 스웨덴에서도 권위주의적 군주제가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등장하였다. 전쟁이 진행되는 격랑 속에서 거센 혁명운동이 전제의 지배에 맞서 싸웠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의 차르 체제가 타도되고 1918년 베를린에서 혁명이 일어나 독일제국이 무너졌다. 전후 유럽의 민주주의는 1919년 승전국들이 주도하여 만든 베르사유 조약을 그대로 따랐다. 미..
19세기 서구 민주주의의 위상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민주주의는 서구를 제외한 다른 많은 지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려졌다 하더라도 막 소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서구에서도 민주주의가 제도적·이념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 서구 민주주의는 힘들게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오래된 것이었지만 서구에서 출현했던 민주주의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19세기 서구 민주주의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주도하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대단히 불완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부르주아가 아닌 노동 계급을 포함한 빈민 대중이 힘들게 성취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대체로 19세기 ..
민중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최초의 혁명 프랑스혁명이 근대의 여명기에 일어난 어느 시민혁명보다도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프랑스혁명이 근대의 길목에서 일어난 그 어떤 혁명들 보다도 자유, 평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가장 근본적으로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은 오늘날의 근대 민주주의가 비로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다수의 참여를 통한 다수의 판단이 소수 귀족이나 절대군주에 의한 판단보다도 뛰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증하게 보여주면서 구시대의 낡은 지배의 전통은 깨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혁명에 참가한 하층계급들의 모습이 미화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때로 무분별하고 잔인한 폭력의 행사, 종교와 도덕을 차갑게 멸시하는 반인륜적 범죄..
근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시민혁명 오늘날 현대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보편적 지지를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수천 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무지하고 질투 심이 강한 군중들에게 정치권력을 맡김으로써 혼란과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진 민주주의의 실천은 매우 예외적인 것에 불과했다.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공동선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7~18세기에 걸쳐 유럽과 북아메리카 에서 일어난 시민혁명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련의 시민혁명들을 통해 정치 과정에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근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시민혁명은 17세..
도시국가 형성과 꼬무네(Comune)의 의미 고대 도시들은 로마 시대에 발달한 도로와 건축 기술 등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발달해왔다. 그러나 고대 도시들과 달리 중세 도시의 전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꼬무네(Comune)는 기존 도시들과는 정치/사회적으로 다른 조건에서 출발하였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제국의 헤게모니를 물려받은 것은 교회였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교회와 수도원 등은 중세도시를 재건할 수 있는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꼬무네라고 하는 중세 자치도시는 이렇게 출발했다. 로마제국의 중앙집권적 권력을 대신하여 교회와 도시 주민들의 자치 권력이 형성되면서 보다 독립적이고 지역적 특색을 갖춘 도시의 번영이 시작되었다. 특히 1096년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이탈리아의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