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조영래 (5)
함께쓰는 민주주의
조영래 변호사의 흔적을 찾아서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12월 12일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겨우 만 43세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정확하게는 1990년 12월 12일이었다. 이 날이야 다 알다시피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가 시작된 날이지만 공교롭게도 1990년 12월 12일은 음력으로 10월 26일이었다. 돌아가신 날짜도 평범하지 않다. 길지 않았지만 그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정말 어마어마하기에 짧은 이 글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의 삶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1947년 3월 26일, 청송에서 대구로 온 조민제와 이남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옥, 순자, 순희 위로 내리 세 딸을 낳은 후에 얻은 첫 아들이었다. 정확히 ..
인물콘텐츠 ‘인물을말하다’ 제작 사료관은 온라인 동영상 인물콘텐츠 ‘인물을말하다’ 4편을 제작하였다. 주제인물은 신동엽, 장준하, 조영래, 전태일이다. ‘인물을말하다’는 굴곡진 한국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신장에 기여한 인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과정을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의 정의와 공동체를 위한 자기결정을 하기까지 격어야 했던 인간적 고뇌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전태일편은 전태일 열사가 남긴 일기를 통해 드러난 ‘전태일의 소박한 꿈’과 전태일의 인간적 고민을 중심으로 당시 노동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담았다. 장준하편은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통시대적 상황 속에서 장준하 선생의 민주주의를 향한 흔들림 없는 결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신동엽편은 암울했던 현..
횃불을 든 사람들 - 영원한 자유인 조영래 3 이제 어느덧 조금씩 타성이 붙어가는 듯하다. 묶여 온 사람들을 바라보는 전율도 이젠 점차로 각질화되어 일상의 무감동에 조금씩 조금씩 압도되어간다. 나로서는 권력을 향유하는 최초의 체험이며… 어쩌면 아마도 마지막 체험이 될지도. 그러므로 이처럼 기이하게 주어진 넉 달의 기회를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가장 맑고 신선한 숨결로 부딪쳐 나아가 최선의 것을 이루어내어야 한다고 마음먹고는 있다. -1981년 12월 검찰청 사법관 시보 시절의 일기 조영래가 실정법의 사슬을 내던지고 다시 세상의 양지로 나온 것은 1980년 1월, 박정희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그해 2월, 수배시절을 함께 한 이옥경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그는 곧바로 사법연수원에 재입학..
횃불을 든 사람들 - 영원한 자유인 조영래 2 저 황홀한 불꽃을 보아라 저 참혹한 사랑을 보아라 저 위대한 분노를 보아라 아아 불길 속에 휩싸이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외치는 저것은 죽음이 아니다 저것은 패배가 아니다 저 피 저 눈물 저 울부짖음 속에서 싸우는 노동자의 강철 같은 심장을 보아라 -장시 「노동자의 불꽃 아아 전태일」 중에서 마치 80년대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구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놀랍게도 1970년대 작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조영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977년 가을, 전태일 열사 7주기에 맞춰 발표된 이 시는 최근까지 그 필자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안목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끈질긴 주목을 받아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예운동사’..
횃불을 든 사람들 - 영원한 자유인 조영래 1 그립고 아쉬워도 더는 슬퍼하지 않으리다 단 한 가지 당신 마지막까지 괴로워했다는 저 이십년 세월의 저 편 불타 돌아간 전태일 씨에 대한 그 마음의 빚도 이제 숱한 노동자들 영롱한 눈빛 속에서 다 갚았으니 다 스러졌으니 오히려 고마운 새마음으로 돋아나고 있으니 안심 안심하소서 오고 감 없고 부서질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마음이시여 -1990년 12월 13일, 김지하 시인의 「조시(弔詩)」 중에서 누구일까. 죽는 날까지 전태일에 대한 마음의 빚을 떨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표표히 돌아간 그 사람은. 43년 생애보다 몇 곱절 긴 여운과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그 사람은. ‘부서질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은. 한국 변혁운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