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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12월 10일 (금) 오후 4~8시 서울 명동 YWCA 강당
1992년 9월 2일 MBC노조는 공정 방송 쟁취를 위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의 핵심 쟁점은 보도관련 3개 국장 인선에 평사원들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추천제의 존폐 문제였다. 연말 대통령 선거와 선거 방송의 공정성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노사 양측은 이 문제를 놓고 양보 없는 대립을 계속했다. 사측은 인사권은 사용주의 고유권한이란 원칙을 앞세워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고, 노조는 불공정 보도를 일삼아 온 사측의 횡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KBS, CBS 노조의 동조 파업이 확산되자 파업 50일째를 맞는 10월 21일 공정방송조항을 비롯한 쟁점 사항에 대해 노사 양측이 합의함으로써 극적으로 타결됐다.(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588쪽)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사 중에서
1987년 6월민주항쟁은 정치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 경제발전의 역 군이었으면서도 경제발전의 성과 배분에서 소외되고, 권력과 사업주가 요구하는 대로 열악한 조건 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6월항쟁 직후부터 수많은 사업장에 서 투쟁을 벌였다.
‘학살·2’ 중에서 김남주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그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학우여 대답하라 차라리 내가 쓰러질 것을, 당신이 가다니... 친구여 대답하라! 돌아간 벗이여 어서 말해 보시오. 상아탑을 뛰쳐 나와 정의를 외치며 썩어 빠져 문드러져 가는 내 나라를 바로 잡으려다 꽃다운 청춘을 총 앞에 버린 학우여! 못다하고 간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시오. 사나이로 태어나 끝내 남을 위해 일하겠노라고 외치던 그대가 아니었던가 쓰러지면서, 죽어 가면서, 죽었어도 외친 자유와 민주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오 봄은 와도 당신의 다시 피지 못할 슬기롭고도 꽃답던 얼은 우리와 함께 우리에게만 살아 있오. 이제 어둡고 괴로웠던 칠흑의 저쪽에 먼동이 텄오이다. 진구렁 속에 처 박혀 숨막혀하던 민주주의도 잠을 깨기 시작 했오이다. 무어라고 말 해 보시오. 큰 일을 해 보겠다던 당신의 음성이 들리오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