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화 속 시대 읽기/다큐 리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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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매력에 빠지다 다큐영화 와 사진전 글 김남희 knh08@kdemo.or.kr 영화 포스터, 전시 포스터 작은 다큐영화 한편이 극장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진모영)가 바로 그것. 영화는 16일, 135만 관객을 넘어섰다. 한국 독립영화 사상 가장 빠른 흥행속도다. 이런 추세라면 가 세운 독립영화 최다관객동원 기록(최종관객수 296만명)도 깨질 것으로 보인다. 의 최근 일일관객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최종관객수가 1만 명만 넘어도 성공으로 평가받는 독립영화 시장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성공은 놀랍다. 이 영화의 활약으로 다시금 다큐멘터리가 힘과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큐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장르이면서도, 우리가 현실에서 놓쳐버린 진실을..
진짜, 가족의 탄생 , “그건 평균이지, ‘정상’이 아니에요”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사고 (事故)[사ː고][명사] 1.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2.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사고를 쳤어”. 한 숨을 푹 내쉬는 아버지, 죄를 지은 듯 침통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 고개를 푹 숙인 딸, 흥분한 듯 숨을 씩씩거리는 오빠. 사랑의 도피행각 끝에 배가 불러 나타난 딸이 ‘사고’란 대사를 뱉으면 비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전형적인 한국의 홈드라마라면 그렇다. 사전에 나온 것처럼 ‘사고’는 ‘불행한 일’이며 ‘나쁜 짓’이다. 하여 공공기관의 수장을 낙마시킬 만큼 혼외임신을 부도덕한 짓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임신(사실 이 표현도 지..
감기도 못 고치는 세계에 대한 조롱 - 식코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의사는 한국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대부분 “의술 보다는 인술”을 실천하라는 격언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가슴 아파 하고, 한 발 나아가서는 그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애쓴다. 시골 보건소나 낙도의 공중보건의로 일하거나 ‘국경없는 의사회’같은 NGO에 들어 제 3세계 오지로 의료봉사를 떠나기도 한다. 그런 주인공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병원도 기업이야”, “병원은 흙파서 치료 하냐”란 대사가 어울리는 또 다른 의사 혹은 병원 경영자들이다. 그들은 병원 경영을 위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으며 이른바 ‘돈 되는 환자’를 유..
‘먹고사니즘’의 주문 - 용산참사 5주기를 맞아, 우리 정말 안녕들 한 건가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한복판 용산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서울시와 삼성물산이 주축이 돼서 진행한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 사업으로 강제 철거된 철거민들의 농성 중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뿐 아니라 당시 사건으로 장애를 입은 이도 있고 그 화마 속에서 평생 씻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다. ‘용산참사’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에 구구절절하고 세세한 설명은 어쩌면 필요하지 않을 테다. 우리는 모두 그 날 저마다의 눈으로 이 참극을 지켜봤고 그 비릿했던 기억을 잊기에 5년은 너무 짧았다. 하물며 그 날과 조금도 ..
가장 위험한 에너지의 환상 -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지난 추석 즈음, 명절 차례상을 주제로 수다를 떨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동태전’ 때문이었다. 친구는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동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명태는 생산량의 90%이상이 일본 근해에서 잡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명태에서 다량의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실제로 명태 소비량은 종전에 비해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래세계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영화들을 보자면 인류는 대부분 핵전쟁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핵폭탄이 터지고, 온갖 곳으로 번져나간 방사능에 제 모습을 갖추고 살아남은 생물도 얼마 존재하지 않는.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상상. 어쩌면 현 시점..
마음을 빨래해주는 다큐, 우리학교 - 학교가 아이들을 키운다는 믿음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공교육 12년간의 모든 노력이 투여될 단 하루에 수험생들은 물론 그 주변사람들도 애가 녹는 시기다. 작년 이맘쯤에는 한 도시에서 십 수 명의 청소년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각각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아마 가정, 학교, 사회 어느 곳에도 전할 수 없었던 외로움이었을 테다.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 명문대.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교육’보다는 ‘진학’에 방점을 찍고 있다. ‘높은 교육열’은 곧 ‘높은 사교육비’로 이어졌다. 한국은 GDP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단언컨대, 기적은 종로에서 시작됐습니다. 리얼리티 게이다큐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지난 9월 7일,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에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려 청계천 모퉁이 나무 그늘에 앉았다. 주말 오후의 청계천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커플들이 가득했다. 더워 죽겠는데 굳이 손을 꼭 잡고 붙어 앉은 그들에게 속으로는 저주를, 눈으로는 질시와 부러움을 쏘아내고 있을 때 눈에 띈 한 커플, 서로의 땀을 닦아주고 부채질을 해주면서도 간간히 입을 맞추고 떨어져 앉을 줄 모르던, 어느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그 날은 ,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종로와 청계천 일대엔 레인보우 깃발과 그들의 ..
결국 우리가 그려야 하는 것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한국에서 일본은 여전히 금기다. 친일파, 일제의 잔재 같은 말들은 어디서든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선거판에서 친일파의 후손 운운하며 상대를 공박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그다지 낯선 풍경도 아니다. 그 영향인지 이 사회엔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증오도 곳곳에 도사린다. 후쿠시마에 재앙이 닥쳤을 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고소해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 사실 그 증오심이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지난 세기 일본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군국주의의 깃발을 세우고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가난한 촌부들의 식량을 빼앗았고, 나라 고유의 말과 글을 없앴고, 학대하고 착취했다. 그리고 여성들을 집..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아버지는 늘 ‘폭군’이었다. 사소하게는 TV 앞 리모컨 점유율이나 저녁식탁의 고기반찬 선점권부터 조금 더 심각하게는 어머니를 향한 폭력이나 무책임한 가정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매일 술을 마시던 아버지, 그 술상을 뒤엎던 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 결코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이미지는 가부장, 남근주의 같은 말들로 규정됐다. 그렇게 아직 젊은 날을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증오심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토대가 됐다. 아버지는, 적어도 이 시대 한국사회의 아버지는 정말로 그랬다. 다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 그녀의 아버지 홍재희 감독은 그녀의 아버지 홍성섭 씨로부터 43통..
나의 살던 고향은 춤추는 성미산 -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말하기 무섭게 기사 아저씨는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앞서 택시에 탔던 어느 모녀의 이야기였다. 말인즉슨, 엄마는 내내 어린 딸을 꾸중했는데 그 까닭이라는 것이 버스에서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이란다. “제 밥그릇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는 엄마의 걱정. 기사 아저씨는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 무섭다”고 했다. 간간히 소식을 주고받는 중학생 조카는 얼마 전, 현장학습으로 어느 대기업의 사옥을 방문해 ‘멘토링 스쿨’에 참가했다 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직원들이 열네살의 중학생들에게 자신의 연봉과 학력을 과시하며 스스로 ‘멘토’라 칭한 그 강연회의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