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계의 민주화운동 (31)
함께쓰는 민주주의
‘팔레스타인’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이스라엘? 테러? 하마스? 아라파트?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근에 있었던 KBS의 용태영 기자 납치 사건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납치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사건과 배경을 차분히 짚기 보다는 자극적이고 정확하지 않는 내용들을 쏟아 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희망세상』을 통해 짧게라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를 담아 보려 한다. 팔레스타인의 현대사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와 싸우면서 아랍인들과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오니스트들에게 각각 자신을 지원하면 전쟁 뒤에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팔레스타인이라는 하나의 지역을 놓고 서로 다른 두 집단에게 같은..
1979년 2월 1일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15년 망명생활을 마치고 테헤란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수많은 이란국민들이 호메이니를 맞이하기 위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혁명의 기가 당신 손에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종교적, 군사적, 경제적, 사회적 지도자입니다’라고 쓴 깃발들이 물결을 이루었다. 호메이니는 이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지지자들에게 말했다. “이 나라에서 모든 외국인을 다 몰아내면 우리들의 마지막 승리는 올 것입니다. 나는 신에게 모든 사악한 외국인과 그들을 원조하는 자들의 손을 잘라버릴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공항연설 이후 그는 곧바로 순교자들이 묻혀있는 테헤란 남쪽의 베헤쉬테 자흐라(Behesht-e Zahra) 공동묘지를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현 바흐..
아프가니스탄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탈리반이 행한 연이은 극단적인 엽기적 행위들로 인해서였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음악, 오락, 놀이 등을 금지하면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모두 빼앗아버렸다. 여성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옷인 부르카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직업을 일절 가질 수 없으며 남편이나 부모가 동반하지 않는 한 절대 외출도 할 수 없게 하였다. 남성에 대한 규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면도를 금하는가하면 서양식 복장도 절대 하면 안 되었다. 반드시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되 특별한 예외가 있지 않는 한 이슬람 사원에 모여야 했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행위 또한 엄격하게 금지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인류 문화의 보고인 바미얀 석불이 무참하게 파괴되어..
1998년 9월 2일 저녁, 말레이시아 정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다음날 말레이시아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될 큰 사건으로 인해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신문을 펴든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이 충격적인 소식으로 인해 한동안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월 2일 저녁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ad)는 후계자로 지목했던 부총리이자 재무장관인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을 전격 해임했다. 경제위기 이후 정책노선을 놓고 이 둘 사이에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안와르가 이렇게 해임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해임이 말레이시아에 있었던 그 어떤 민주화운동보다 크고 강력한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
나는 눈물 속에서 자라났고 눈물 속에서 살고 있으며 눈물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나는 태어날 때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19세의 어느 동티모르 청년 - “외세와 독재의 폭압에 맞선 아시아 각 나라 민중들의 투쟁의 역사를 독자들이 알기 쉽게 써주세요.” 원래 이런 원고 청탁을 받을 때는 주관적인 경험과 감정 따위는 잠시 ‘Ctrl+X(오려두기)’해 두었다가 원고를 보낸 후에야 다시 기억 한 편에 ‘Ctrl+V(붙여두기)’해 두는 법이다. 그래야 자칫 사실을 왜곡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고, 글을 쓰다가 자꾸만 옛 기억에 젖는 바람에 마감일을 훌쩍 넘기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9년 8월에 치러진 독립 주민투표 당시 민간 선거감시단 자격으로 동티모르에 잠시 머무른 기억 탓에,..
타이완 섬은 400여 년 전부터 타이완 해협 반대편인 중국 대륙의 푸젠성과 광둥성으로부터 중국 민족인 한족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했지만, 중국 중앙정부에 편입된 것은 청나라 시대 이후의 일이다. 실지로 타이완의 군사적
지난 6월 10일, 필리핀 전역을 들끓게 만든 전화 녹음테이프가 공개됐다. 사건의 주인공은 필리핀의 FBI격인 전직 수사국 부국장을 지낸 사무엘 옹. 테이프 안에는 놀랍게도 현 아로요 대통령의 선거 부정 의혹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5월에 있었던 대통령선거 당시, 아로요가 선거관리위원회 간부에게 상대 후보와 자신의 표차를 백만 표 이상으로 벌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한 메시지가 녹음된 것이다. 그러나 아로요 대통령은 “도청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테이프의 진위 여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다.”며 야당 및 시민사회단체의 퇴진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필리핀판 X파일 아로요 대통령은 지난 2001년 1월 부패 혐의로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에스트라다가 물러..
6월 24일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 타이거(LTTE)가 ‘쯔나미 협력체계(A Post-Tsunami Operational Mannagement Structure, 협력체계)’에 드디어 사인했다. 2002년 2월 22일, 휴전협정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이래 평화협상 중재 역할을 계속해왔던 노르웨이 팀이 이 안을 제안한 지 거의 반년만이다. 집권연정인 ‘인민자유동맹(UPFA)’ 내에서 각각 제1, 2당인 ‘스리랑카 자유당(SLFP)’과 ‘인민해방전선(JVP)’이 협력체계에 대한 이견으로 불안한 동거의 끝을 향해 가는 동안 사인을 기다리다 못한 타밀 타이거는 “협력체계에 사인이 이루어진다 해도 제대로 수행이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드러냈었다. 협력체계를 두고 아슬아슬했던 6개월은 협정 조인이 이루어지던 날 ..
인도의 정치제도는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따른다. 인도의 국회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다수당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집권하게 되어 있다. 만일 야당이 여당에 과반수 의석의 검증을 요구할 때는 언제라도 투표로서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음을 증명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수상의 임기에 상관없이 대통령은 정부를 다시 구성하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총선을 치르고 난 후 절대 다수당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수시로 집권당이 바뀌고 그에 따라 정부가 바뀐다. 인도는 영국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1947년 이래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났던 군사 쿠데타가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상당히 오랫동안 회의당이 집권을 하였고 그 정부의 수상 직에 네루,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큰 아들 라지브 간디가 오..
43년 동안 군사독재 치하에 있는 버마.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국내외에서 투쟁하고 있는 정치인, 운동가들은 미얀마라는 국명을 부정하고 버마라는 국명을 고수하고 있다. 1988년 8월 8일 이른바 8888 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한 버마 군부가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국명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버마의 국토는 한반도의 3배 정도이다. 그리고 국경선은 인도, 중국, 방글라데시, 태국, 라오스 등 5개국과 접하고 있다. 버마는 다문화, 다종교, 다종족 사회이다. 버마족이 70% 가량이고 그 이외에 130여 개의 소수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 식민지에 편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소수종족에 대한 버마족의 지배는 매우 느슨했다. 소수종족들은 그들의 고유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였으며 조공을 바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