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세계 최대 인도 민주주의의 허와 실 본문
인도는 영국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1947년 이래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났던 군사 쿠데타가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상당히 오랫동안 회의당이 집권을 하였고 그 정부의 수상 직에 네루,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큰 아들 라지브 간디가 오른 일이 있어 ‘네루 왕조’라는 비판과 비아냥거림을 받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비민주적 방법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민도가 떨어져서 그랬는지의 여부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헌정 중단을 통한다거나 강압적인 세습의 절차를 거쳐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디라 간디가 집권하던 1975~77년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철권통치를 하였다고는 하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듯 그로 인한 대규모의 충돌이나 인명 살상 등은 전혀 없었다.
네루 왕조
인도는 분명히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정권 교체를 수차례나 한 나라이다. 1947년 독립 이후 회의당은 종교, 언어, 종족, 카스트 등 인도를 구성하는 다양하면서 분열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묶어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세우며 세속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3대 틀로 삼아 국가를 운영하였다. 1967년의 선거부터 점차 일당 우위 체계의 틀이 약화되면서 1977년과 1989년에는 비(非) 회의당 정권이 들어섰고, 1996년 이래로는 여러 정당이 각축을 벌이면서 연립정권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집단주의에 입각한 정치 행태
혈통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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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232명이 살해되었고 그 후로도 유혈사태가 계속되어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때 집을 잃은 사람이 수십만 명이고 재산 손실도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그 폭력사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힌두 파시스트들의 광기는 계속되어 2002년에는 더욱 큰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2002년 2월 27일 고드라 역에서 출발한 기차 안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성희롱이 빌미가 되어 무슬림과 힌두 사이의 폭력 사태가 터졌고 그 결과 아요디야에서 반 무슬림 집회를 하고 돌아가는 중이던 힌두세계회의 행동 대원들과 부녀자, 아이들이 58명이나 죽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왜 그리고 누가 어떻게 그런 처참한 일을 저질렀는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비극이 일어난 직후부터 언론은 이 학살이 파키스탄의 사주를 받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힌두 사회를 전복시키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고 연일 자극하였다. 그 이후 고드라와 그 인근에 사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폭력에 쓰려졌으니 죽은 사람이 5,000명이 넘었고 집과 재산의 피해는 추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곧 바로 예정대로 선거가 치러졌고 힌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의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다. |
인도의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는 것으로 회의당의 혈통주의 그리고 그에 맞선 인도국민당 주축의 극우 파시스트 힌두 근본주의에 이은 또 다른 집단주의는 카스트주의이다.
극우 파시스트 힌두 근본주의
인도에서 네 카스트 가운데 가장 낮은 카스트인 슈드라가 수천 년 동안 핍박을 받으며 살아 온 것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사실이다. 1977년에 독립 후 최초의 비(非) 회의당 정권이면서 사회주의적 성격이 농후했던 자나타당 정부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그들 슈드라에게 보상을 하기 위한 차별정책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정권은 회의당에게 넘어 가고 1980~1989년까지 집권한 회의당 정부는 자신들의 주축 구성원인 슈드라 위의 상위 세 카스트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 보고서의 권고를 이행치 않았다.
그러다 1989년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다시 집권한 자나타당의 브이 피 싱 수상은 1990년에 이를 실행에 옮기겠노라고 선언하였다. 자나타당의 슈드라 세력에 대한 보상적 차별정책의 강행은 회의당의 혈통주의를 격파하기 위해 고안한 또 다른 집단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 체제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도 자신들을 ‘달리트’ 즉 ‘짓밟힌 자’라고 부르며 상위 카스트에 대해 투쟁할 것을 선언하면서 정치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후 슈드라와 불가촉천민들의 집단주의인 카스트주의는 인도국민당의 힌두 근본주의에 입각한 무슬림 죽이기의 광풍을 잠재울 정도로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집단적으로 통합만 하면 권력을 잡는 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들은 최하 단위의 지방 선거에서부터 수상을 뽑는 총선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선거에서 철저한 카스트 몰표를 행사한다. 그들의 보스는 그 방향을 잡아 이끌어 나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손짓에 따라 표를 던진다. 이념도 모른다. 정강도 정책도 모른다. 오로지 우리 카스트를 위해서 표를 던지는 것이다. 철저한 맹목적 집단주의이다. 그래서 그 카스트 몰표를 확보하려고 모든 정치인들이 안달이고 그들에게 애걸복걸이다. 그래서 어떤 정당은 슈드라나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특별 우대 정책의 할당을 최고 70퍼센트까지 공약하는 경우조차 생겼다. 카스트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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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모든 집권 여당은 단호하게 대처했고, 그 가운데는 국가 폭력과 학살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정당은 종교 공동체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그 위에서 집단 테러가 자행되고 그 연쇄의 틀 꼭대기에 국가가 서있는 것이다.
그것은 문맹률 35%가 상징하듯이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낮아, 정치인들의 집단주의 조장과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억 인구의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광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부산외국어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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