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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집, 불온한 연애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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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집, 불온한 연애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08


 

불온하다는 게 무엇일까.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문] 다음 중 불온하지 않은 것은?
1. 여인의 몸뚱어리, 흰 구릉, 흰 허벅지, 그대는 대지와 같은 온몸을 내맡긴다. 나는 억센 농부의 몸으로 그대를 파헤쳐 대지의 밑바닥에서 애기를 튀어나오게 만든다.


2. 사실, 나는 인간인 것에 지친다. 양복 가게에도 가고 영화관에도 가지만. 사실, 펠트제의 백조처럼 불투명해지고 느른해져 나는 원시와 진흙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3. 나는 어디에 도착하였나, 나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이 생명 없는 도시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난 날 나를 사랑해 준 미치광이 아가씨의 거리도 지붕도 발견할 수 없다.


4. 나는 쓸 수가 있다, 오늘밤엔 가장 슬픈 시를. 나는 어느 여인을 사랑했고 그 여인도 몇 번인가 나를 사랑했었다.


정답은 ‘없다’이다. 왜냐하면 모든 답의 출처가 불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온한 출처는 한 권의 시집 『네루다 시집』(성공문화사, 1972)이다.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가 불온하다니! 하지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1971년도 노벨 문학상을 준 스웨덴의 한림원도 불온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림원도 불온하고, 네루다의 시를 즐겨 읽은 수천만 명의 영장류도 불온하다!

내가 갖고 있는 책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1977. 10. 17 유신 5주년을 슬퍼하며.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그림은 없다. 어디서 샀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렇지만 기록은 정확하다. 겨우 대학 2년생이던 나는 벌써부터 절망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사르트르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유로 선고받았다”는 말을 밀교의 진언(眞言)처럼 외고 다녔다. 그래야 했다. 자유 아니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자유였다. 교련복 주머니에 40원짜리 새마을 담배를 넣고 다니고, 흰 고무신짝을 끌고 학교에 가고, 그 나라 말로 “밥 먹었니”도 말할 줄 모르는 주제에 거창하게도 ‘원어 연극’을 기획하고, 수업을 빼먹은 채 잔디밭에 누워 둥실둥실 떠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턱없는 주량에도 턱없이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마 한 일곱 번은 토했을텐데.


그러고도 악착같이 집을 찾아가던 젊음…….나는 그 젊음의 자유를 어느 누구도 건드리는 걸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유신(維新), 고 이문구 선생의 어법을 빌면 ‘박씨유신(朴氏維新)’이 싫었다.

 

박씨유신이 싫었어
박씨유신은 어디에 놀러 가려고 해도 가위를 든 경찰이 먼저 떠오르는 부자유였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과 친구들과 설악산에 갔다. 속초로 가는 도중 우리는 해안도로를 차단하고 버스에 오르는 제복들을 만났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잽싸게 배낭을 머리에 얹고 몸을 낮췄다. 미련한 친구들은 멀건히 앉아 있다가 춘사(椿事)를 당했다. 산에 있는 동안 그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도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다녀야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제 머리를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해괴한 일은 한둘이 아니었다. 모든 게 박씨유신 때문이었다.


밤마다 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영국의 축구선수 조지 베트스처럼 긴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푸른 대지를 마음껏 질주하는 것이었고, 김추자가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하는 손짓이 북한 괴뢰집단과 은밀히 통신화합하는 거라는 유비통신을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학은 기껏 그런 것을 꿈이라고 꾸어야 하는 유치한 나라의 째째한 청년이던 내게 박씨유신의 그 억센 대기압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환기통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무수한 복자(覆字)가 존재했다. 나는 어느새 책을 읽되 활자보다는 행간을 주목하는 독서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하다 못 해 링컨 대통령의 일화를 주로 다룬 김동길의 에세이집 『대통령의 웃음』이 소리 소문 없이 금서로 낙인 찍히는 형국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근엄해야 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도 그런 독서에 길들여진 내가 찾아낸 ‘지뢰’였다. 나는 김수영을 읽다가 그가 파블로 네루다라는 낯선 이름의 시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즉시 칠레산 그 시인을 수배했다. 알고 보니, 그는 1971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했다.



 

나는 앞머리 해설을 읽다가 놀랐다. 검열의 손길은 노벨상 작가라고 피해 가지 않았다. 삭제된 부분은 숫제 검정 먹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책을 들어 형광등 불빛에 비쳐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 부분을 읽어낼 재주는 없었다. 네루다에 대한 호기심은 그렇게 해서 오히려 커져갔다.


나는 열심히 시집을 읽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읽어도 내가 은근히 기대하는, 가령 ‘자유’라든지 ‘독재’라든지 ‘혁명’이라든지 하는 시어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지면을 도배하는 것은 예상 외로 거의 다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시어들뿐이었다. ‘사랑’ ‘연인’ ‘여인’ ‘꿈’ 따위.
나는 혹시 독법이 잘못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네루다식 은유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독재 정권에 시달리는 조국 칠레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그렇지만 두 눈 부릅뜨고 몇 번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구입한 『네루다 시집』은 앞의 해설과 뒷부분(229쪽)에 각기 한번씩 나오는 시커먼 먹칠을 제외하곤 도무지 불온한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당시 아마 그 책은 이른바 ‘금서류(禁書類)’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네루다의 정치적 경력이 최소한 작용해서 그 정도의 ‘가벼운’ 먹칠 판정(그것도 인쇄 사고? 아닐 게다.)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어떤 계기로든 네루다의 불온성에 호기심을 지닌 유신체제 하의 불온한 문학청년이 그 시집을 불온하다고, 아니, 제발 불온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 나머지, 마치 땅을 파서 그 구덩이에 대고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어느 이발사처럼 “이건 불온해. 이건 불온해.” 하고 제 가슴에 대고 외친 게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쉽게 말하자.
불온한 시대는 불온한 인간을 양산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망명 중 섬에 온 네루다에게 우편 배달부가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시가 뭐죠?”
“시? 그건 은유지.”


은유! - 그렇다. 파블로 네루다는 은유의 시인이었다. 그는 그 은유로써 가공할 위력의 피노체트 정권에 맞섰다. 그가 쓴 모든 연애시 모든 사랑시 역시 처음에는 그저 연인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였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야만이 감히 이성을 억압하자, 그 즉시 독재 정권의 심장을 겨누는 칼의 노래로 바뀌어 새삼 애송되었을 것이다.

 

불온한 시대는 불온한 인간을 양산
이것이 분명 좋은 독법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제발 그런 독법이 유행하는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말아야 한다. 낡을 대로 낡아, 이제는 곽딱지 하드카바를 덮던 겉표지마저 너덜너덜 쉽게 찢겨나가는 『네루다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불온했던, 아니 어떻게든 불온하고자 기를 썼던 내 청춘의 한때를 추모한다.
잘 가라, 불온했던 청춘이여!
잘 가라, 불온했던 네루다여!

추기: 성공문화사 판 『네루다 시집』의 편역자는 『휴전선』의 시인 박봉우. 하지만 그도 밝히고 있듯이 그 시집은 시인이 일본어 판본에서 옮긴 삼중역본이라, 차마 권하지 못한다.

김남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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