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 역사의 현장 (99)
함께쓰는 민주주의
1975년 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이 나라의 헌법을 제멋대로 난도질하며 독재를 횡행하다 마침내 10월 유신을 통해 자신의 영구집권 야욕을 충족시키고 포만감에 젖어 있을 때, 쉬쉬하며 숨죽여 엎드린 세상을 향해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고발하며 자신의 배를 가른 지성이 있었다. 그가 김상진(서울대 68학번, 당시 4학년으로 26세)이다. 폭염 속을 돌아다니며 고(故) 김상진 군의 할복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필자의 머릿속에는 러시아 네차예프사건에 관한 상념이 내내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꽃다운 젊음이 고뇌 끝에 선택한 죽음에 대해 그 사실을 기록하기야 간단한 일이겠지만 그 진실을 말하는 일은 쉽지 않은 까닭일 터이다. 네차예프사건은 1869년 겨울, 제정러시..
탄압에서 터져 나온 분노의 파도 같은 현대중공업 노조 울산의 노동자들은 1987년 7·8월 대투쟁을 통해 이 사회의 주인임을 선포하였고, 노조를 통해 민주화운동의 한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한 숱한 고난과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해고자 사무실에서 야구방망이와 각목으로 구타하고 집기를 부수는 등의 폭력이 벌어졌는데 그 배후에는 현대중공업이 고용한 노조파괴 전문가인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리(한국명 이윤섭)가 있었다. 그는 1987년부터 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에 나타나 노조 결성을 방해하거나 노조를 좌경 불순세력으로 몰아 폭력을 유도하는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진 탄압 속에서도 울산의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이로 인해 흔히 울산은..
울산! 과연 어떤 곳인가? 울산의 19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소개하기 전에 울산의 지리적 환경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울산은 말 그대로 산으로 울타리가 쳐져 포근하게 가두어진 천혜의 고장이다. 구한말 삼대 개항지의 하나인 염포(동해에서 서해처럼 염전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던 곳이다)가 있으며 이곳에 현대자동차가 들어서 있다. 고래로 유명한 이곳 태화강 상류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모양의 상형문자가 있을 정도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달천에는 철을 제련했던 곳이 발견되어 요즘 쇠부리 문화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울산은 온화한 남쪽 해양성 기후의 영향과 비옥한 토양, 풍부한 해양자원이 있어 살기에 좋았으니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처용의 모습과 표현처럼 낙천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기독교회관. 1968년 시공된 이래 한국 현대사의 굵은 물줄기는 늘 이곳을 관통해 흘렀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그 뒤를 이어 1972년 유신체제의 등장은 한국 현대사의 기나긴 고난을 예고하고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이라는 그늘진 세월 속에서도 사람들의 억눌린 숨통을 틔어주는 쪽빛 양지를 제공한 곳이 바로 기독교회관과 명동성당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 앞에는 ‘민주화운동의 성지·메카·보루’ 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아 여전히 지긋한 시선으로 인간사를 내려다보는 기독교회관, 그 건물 틈틈이 새새이 켜켜이 머금고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본다. 역사와 함께 숨쉬는 교회 한국 기독교 교회의 사회참여 역사는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항거에서부터 시작된다..
영등포는 우리나라 산업 역사상 초기에 형성된 공업지역으로 이른바 ‘마찌고바’로 불리는 소규모 영세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다. 1990년대 들어 많은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을 시작해, 지금은 몇몇 중소 공장들만이 남아있다. 우리가 찾은 양평동 또한 그러한 변화에 예외일 순 없다. 지금은 몇몇 중소 공장들만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아파트와 상가들로 빼곡하다. 양평동 사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선 박석운 씨(52, 당시 고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장례위원회 대변인)는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 선다. 세월을 더듬듯 찬찬히 주위를 살핀 후 발걸음을 뗀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걷는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걸었을 그 길, 차를 위한 길은 있어도 사람을 위한 인도 하나 놓여있지 않은 좁은 길, 화학..
4·3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북촌’이라는 마을을 4·3과 동일시한다. 그만큼 북촌이라는 마을이 제주4·3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코드가 된다는 것이다. 북촌과 4·3을 연결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다름 아닌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다. 물론 소설에는 ‘북촌’이 아니라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북촌의 원래 명칭은 ‘뒷개’다. 마을의 아래쪽으로 포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시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북촌이 있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함덕리가 나오는데, 이 함덕리가 4·3 당시 북촌에서 있었던 이른바 ‘북촌대학살’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함덕리에 당시 대대본부가 있었고 북촌 학살에 참여한 군부대가 바로 이 부대이다. 대대본부가 있었던 ..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4·3과 관련한 청탁을 받곤 하는데 그 내용은 현장 취재를 하는데 동행하자는 부탁이거나 4·3과 관련한 원고를 써달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을 영화로 만드는 각색 작업을 마무리해야할 처지에 놓여 있어서 올해만큼은 어떠한 청탁도 받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결국은 허사다. 서울에서 내려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의 황석선 씨와 제주4·3연구소 강태권 연구원과 함께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로 향한다. 섬의 날씨는 물론 일기예보가 정확하겠지만 때로는 섬사람들의 삶의 체험에서 오는 감각적인 느낌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루에도 대여섯 번 변화무쌍한 날씨를 아무리 첨단과학시대라지만 어떻게 감 잡을 수 있겠는가. 일기예보에서는 날이 풀릴..
강원도는 나에게 검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마 그것은 험준한 산악과 탄광 때문일 것이다. 험준한 산악에는 검은 그늘이 있는 법이고, 탄광은 말할 것도 없다. 탄광은 어둠 속에서 검은 탄을 캐내는 곳이다. 태백시의 강원탄광을 찾아갈 때 나는 이 검은 이미지를 쫓아가는 느낌이었다. 제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영월, 사북과 고한을 거쳐 태백시로 간다. 강원탄광의 흔적, 철암 태백시로 가면서, 나의 첫인상은 ‘역시 강원도’였다. 험준한 산맥들이 먼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원도다운 풍경은 점차로 사라졌다.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북이며 고한의 시가지에는 화려한 모텔과 음식점들의 입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인상적인 플래카드도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관광도시로 도약하자..
지난 1988년 청주의 택시노조 파업을 주목하는 것은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라는 점이다. 근 일년여 동안 조합원 한명 한명이 자발적으로 또 연합적으로 부당한 사용자와 공권력에 맞선 이유때문이기도 하다.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뭘까?사람은 일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부상이나 질병이 생길 수 있고, 부득이 하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생활에 타격이 온다면 맘 편히 병을 치료하거나 집안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회사가 어떤 경우라도 법정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진 기본급을 저하시키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이다. 청주 택시노조의 장기간 파업 역시 근로조건을 완전 무시한 채 월급제를 일급제로 바꾸면서 택시기사들이 ..
전교조 부산지부의 반 아펙(APEC) 교육과 교원평가제 거부 투쟁은 야당과 수구언론의 색깔론 공세로 인해 지난 11월의 쟁점이 돼버렸다. 현재 조합원 수 10만 명의 전교조는 언론이 부추킨 부정적인 여론과 내부 강온파 대립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제도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치고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보지 않은 이는 거의 드물 것이다. 입시경쟁에서 승승장구해 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극소수 중에서도 시험과 강제적인 규율로 점철된 학창시절을 유쾌하게 회상하는 이는 얼마되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행학습의 압박을 받고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성적의 노예가 돼버린다. 제3자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20년 전과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