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 역사의 현장 (99)
함께쓰는 민주주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었던 그사람. 계훈제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계훈제! 한 때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184cm의 큰 키와 특이한 성, 그리고 언제나 허름한 국민복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가 간지도 올 3월 14일로 15년이나 되었다. 그의 고향은 평북 선천군 심천명에서 태어났다. 홍경래의 봉기가 일어났던 다복동이 부근에 있고, 병자호란 때의 영웅이었던 임경업 장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런 땅에서 태어나자란 소년 계훈제는 열 여섯 살 때, 일제 강점기 시절 가장 대표적인 민족학교였던 신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의 교풍이 그에게 미친 여향도 컸지만 더 큰 사건은 이 곳에서 장준하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제정구의 도시를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15년 전, 2월 9일, 도시빈민의 영원한 친구 제정구 의원이 55세라는 너무 아까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반백의 머리와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던 제정구 의원은 민주화 운동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이 만든 ‘도시’를 남겼다. ‘도시’란 표현이 거창하다면 ‘마을’로 표현해도 좋다. 그 ‘도시’ 혹은 ‘마을’ 은 그의 고향도 아니었고, 자라난 곳도 아니었으며 육신이 묻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피와 땀이 가장 많이 베인 곳으로 당시는 경기도 시흥군, 지금은 경기도 시흥시 이다. 경남 고성에 태어난 그는 명문 진주고를 졸업하였지만, 대학 입학이 순탄하지 않아 무려 4수 끝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치를 떨다가..
용산 참사의 현장 그리고 탐욕이 낳은 폐허를 찾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2009년 1월 20일.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핫 Hot 했던 용산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서 진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흔히들 용산참사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서 5년이나 지났다. 이 지역은 서울시가 용산4구역이란 이름으로 재개발 사업지구로 지정하고, 삼성물산, 대림산업, 포스코건설 등 쟁쟁한 건설사를 시공업체로 삼아 (대표업체는 삼성물산) 강제철거 등의 작업과 계획을 관리하도록 승인한 곳이었다. 용산4구역의 면적은 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 5만 3442m² 였고, 이 사업으로 40층 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493가구..
조영래 변호사의 흔적을 찾아서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12월 12일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겨우 만 43세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정확하게는 1990년 12월 12일이었다. 이 날이야 다 알다시피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가 시작된 날이지만 공교롭게도 1990년 12월 12일은 음력으로 10월 26일이었다. 돌아가신 날짜도 평범하지 않다. 길지 않았지만 그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정말 어마어마하기에 짧은 이 글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의 삶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1947년 3월 26일, 청송에서 대구로 온 조민제와 이남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옥, 순자, 순희 위로 내리 세 딸을 낳은 후에 얻은 첫 아들이었다. 정확히 ..
양천벌의 전쟁 : 30년 전, 목동 철거민 투쟁의 현장을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영등포와 양천구 사이를 흐르는 안양천, 그리고 두 구를 이어주는 오목교. 천변에 깔끔하게 조성된 체육공원에서는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며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오목교의 외관은 서울의 하천에 걸려있는 다른 다리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다리가 30년 전 안양천 변에 있는 판자촌의 존재와 철거민들의 결사적인 투쟁을 증언하는 몇 안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목동은 여의도와 더불어 한국 방송의 중심지이고 서울 서남권에서는 가장 부유한 아파트 단지이기고 하다, 최근에는 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오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지만 30년 전에는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장안벌을 흔든 27년 전의 함성. 건대 항쟁의 현장을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애국운동 탄압하는 살인정권 타도하자는 애학투련 학생들(1986.10.28) @openarchives 요즘 대학생들이나 일반시민들에게 ‘건국대학교’ 하면 무슨 생각이 나느냐고 물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00시티라는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로 대표되는 서울 동부권의 대표적인 상권을 떠올릴 것이고 일부는 건국대학교의 상징인 황소상이나 서울 시내에 보기 드문 인공호수 일감호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27년 전인 1986년 10월 28일, 이곳은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되었던 건대항쟁이 일어난 현장이었다.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 본관 앞에서 전국의 27개 대학 2,000여명이 모여 ‘전..
과묵, 눌변, 그러나 청동 같은 진정 : 김승훈 마티아 신부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2003년 9월 2일. 정의구현사제단의 얼굴이었던 김승훈 마티아 신부가 64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김 신부를 한국 현대사를 바꾸고 6월 항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25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헌법을 만든 결정적인 사건 즉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은폐 조작 의혹을 폭로한 당사자로 기억한다. 물론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분을 단순히 그 일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10주기를 맞이하여 그 분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김승훈 신부는 1939년 7월 6일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고, 해방 후에는 부모님을 따라 월남했다. 1953년, 소년 김승훈은 한국 ..
8월, 김대중을 생각한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민주화의 거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8월은 아주 특별한 달이 아닐 수 없다. 1973년 8월 8일, 동경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고, 2009년 8월 18일에는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동경에 가면 필수코스처럼 일본 국왕이 사는 왕궁에 간다. 하지만 옆에 있는 그랜드 팔레스 호텔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왕궁에서 가까워서 그랜드 팔레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는 이 호텔은 야스쿠니 신사와도 아주 가깝다. 지금의 이 호텔은 리모델링을 해서 당시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일본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설도 있으므로 호텔에는 당시의 ..
죽산 조봉암의 발자취를 찾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작년 대선에서 인혁당 사건이 화제에 오르면서 ‘사법살인’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지면상 ‘사법살인’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불행하게도 인혁당 사건에서 희생된 8명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있었고, ‘원조’는 바로 1959년 7월 31일, 첫 번째 사법살인의 희생자가 된 죽산 조봉암 선생이었다. 조봉암 선생은 1898년 9월 25일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한반도는 외세의 침략이 잦았지만 그 중에서도 강화도는 상징적 장소였다. 몽골의 침략, 만주족의 침략은 물론 근대에 와서 병인, 신미년에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겪고, 결국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 문을 연 장소가 되고 말았다. 또한 강화도는 집..
명동성당에 가려진 성당과 교회 -성공회 대성당과 향린교회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성공회 대성당 커다란 십자가를 눕혀놓은 형상의 성공회 대성당은 6‧10민주항쟁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이 성당이 어떻게 건설되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민주화의 성지인 명동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졌다. 성공회 성당은 마치 덕수궁의 일부인 것처럼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면 이 성당은 기본적으로 비잔틴-로마네스크 양식임에도 한국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성공회는 1890년 9월, 조선에 진출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서울에 성당을 짓지 않고 강화나 음성 같은 농촌에 한옥 성당을 지으면서 선교를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