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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 하모니의 매력 꽃피는 나무의 여행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2:04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 하모니의 매력 꽃피는 나무의 여행

 

  ‘소풍가는 날’은 기독교 민중가요 노래패 ‘새하늘 새땅’에서 활동하던 가수 방기순과 ‘새하늘 새땅’을 거쳐 퓨전국악 팀 ‘the林(그림)’에서 활동 중인 건반 연주자 신현정 그리고 전대협 통일노래한마당에서 ‘진혼곡’ 등의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 김영남으로 이루어진 여성 트리오이다. 앞서 박창근의 음반을 소개할 때도 언급했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민중가요 진영에서는 개인 가수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예전에는 각기 다른 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어울려 새롭게 팀을 꾸리는 경향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활동을 중단했지만 고명원, 유인혁, 정윤경으로 꾸려져 남다른 민중가요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유정고밴드’를 필두로 김영남, 문진오, 손병휘, 신지아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삶뜻소리’와 ‘소풍가는 날’도 이러한 경향의 예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민중가요 진영이 예전처럼 노선 차이로 움직이기도 하고, 그러한 경향이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중음악 진영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목적으로 뭉치고 흩어지기도 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더욱이 앞서 말한 팀들 모두 그 성원들의 나이가 40대에 가깝다는 사실은 이전의 음악작업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팀을 결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민중가요 진영에 개인가수들의 진출이 늘어난 현상과 똑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90년대 후반부터 민중가요 진영에는 독자적 음악 욕구를 기반으로 한 ‘따로 또 같이’의 자유스러움이 중심적인 경향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서른보다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팀을 결성한 ‘소풍가는 날’은 오랜 준비를 거쳐 내놓은 첫 앨범 ‘꽃피는 나무의 여행’에서 그들의 나이에 맞는 원숙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신현정이 대부분 곡을 쓰고 고명원과 유인혁, 조동익의 곡이 하나씩 들어간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여성적인 서정성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민중가요 진영에는 박향미, 손현숙, 윤미진, 전경옥 등의 여성 가수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과 비교해보거나 혹은 시야를 넓혀 대중음악권에서 활동 중인 다른 여성가수들과 비교해보아도 ‘소풍가는 날’은 가장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로 서정적인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방기순과 신현정이 이전에 함께 활동하던 팀이 작곡가 류형선의 자장 아래에서 가스펠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던 ‘새하늘 새땅’이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음반의 프로듀싱을 맡은 연주자 신현정의 음악 색깔이 이처럼 섬세하면서도 밝고 부드러운 쪽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현정이 작곡한 다섯 곡의 노래들은 장석남, 이봉환의 시를 매력적으로 살려내며 동시에 자신이 쓴 고즈넉하고 평화스러운 노랫말들 편안하게 드러낸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그는 ‘불어오는 바람도 이 시간이 가면 오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어떤 나이듬의 깨달음을 담백한 편곡과 잘 어우러진 세 명의 화음으로 들려준다. 또한 ‘꽃피는 나무의 여행’에서는 나무의 입을 빌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여행을 꿈꾸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다른 창작자들의 앨범에 실린 이전의 곡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현정이 쓴 곡들에서 느낄 수 있는 쉽게 절망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서도 결코 요란하거나 번잡하지 않는 단정한 따뜻함 같은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러한 신현정 곡들의 매력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는 누님’의 나이가 되어가는 김영남과 방기순의 서정적인 보컬과 화음을 통해 온전히 살아나 진정성 있게 울리며 ‘소풍가는 날’의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따뜻한 여성적 세계의 매력은 노찾사 1집에서 조경옥이 선보였던 수줍은 여성성과 통하고, 그 이후 늘 당당하고 힘찼던 민중가요 진영 여성가수들의 세계와도 통하지만 ‘소풍가는 날’의 음악은 그 어떤 팀들의 음악보다 여성적이면서도 세련된 서정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갖는데 성공했다.

 

여성적이면서 세련된 서정성을 극대화
그러나 ‘소풍가는 날’의 기본적 매력이 성숙한 여성성에 있기는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트랙은 신현정의 국악적 감각이 돋보이는 ‘환청’과 고명원이 쓴 ‘기억을 잊는 주문’이다. ‘환청’에서 미니멀한 가야금 소리를 타고 허공으로 퍼지는 방기순의 목소리는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슬픔을 잘 표현해냈으며 이 과정에서 레인스틱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고명원의 곡 ‘기억을 잊는 주문’은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몽롱한 모던록 사운드를 선보이며 앨범의 색깔을 다층적으로 만들어내는데 기여했다.

유인혁의 곡 ‘잠’ 역시 이러한 효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리면서도 힘있는 보컬들이 곡의 매력을 온전히 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소 관습적일 수도 있는 팀의 색깔이 이 두 곡으로 인해 보다 확장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절제된 감성으로 훈련된 여성 보컬들의 화음으로 소화해낸 ‘소풍가는 날’의 음악은 시디(CD) 표지의 분홍빛 소녀의 감수성과는 상반되게 성숙하고 세련된 음악들이다. 실질적인 민중가요의 역사가 20년쯤이라고 했을 때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민중가요 진영의 분화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어떤 구체적인 가능성으로 가시화되는 듯하다.
‘소풍가는 날’의 음악은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해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고 지난 5, 6월에 함께 나온 박창근, 손병휘, 연영석의 앨범은 그 믿음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다.
‘소풍가는 날’이 부디 좀 더 끈질기게 그리고 오래도록 밀고나가 새로운 민중가요의 르네상스를 여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서정민갑

진보적 음악운동단체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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