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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 2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2:03

박창근 2집

 


2000년대 민중가요 진영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지난 8,90년대와는 달리 개인 창작자들의 수가 노래패의 수보다 많다는 것이다. 꽃다지, 노래공장, 맥박, 소리타래, 아름다운 청년, 우리나라, 젠, 좋은 친구들, 천지인, 희망새 등 적지 않은 수의 노래패(그룹)들이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개인 창작자들이 그보다 두 배나 많은 것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이것은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현상인데, 당시 노래운동을 대표했던 노래패에서 활동했던 창작자들이 팀 활동의 중단으로 인해서 이거나 혹은 개인적인 창작 욕구를 펼치기 위해서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나타난 경향이다.
기존의 노래패에서 솔로로 독립하는 경향이 대폭 늘어난 것과 함께 소수지만 처음부터 솔로로 활동하는 민중가요 창작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준, 연영석과 같은 이들은 이전에 어떠한 노래팀에서의 활동도 없이 개인 활동으로부터 민중가요계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개인 창작자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당연히 민중가요 진영의 음악적 창작물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민중가요 진영의 음악이 노동해방, 반미자주통일, 민주쟁취 등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노래와 행진곡 풍의 노래로 양식화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다양한 개인 창작자들은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주제를 다른 음악적 양식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대구의 ‘우리여기에’ 출신인 박창근은 그 중에서도 연영석이나 유정고 밴드 등과 함께 90년대 이후 달라진 민중가요 진영의 흐름을 대표할 수 있는 젊은 창작자이다.

 

다양한 개인 창작자들의 다른 양식
그가 1999년에 내놓은 1집 ‘Anti Mythos’는 음악적으로 다소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생생하고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던 앨범이었다. 기존의 민중가요와는 달리 세계와 존재의 본질에 대해 묻는 철학적인 가사와 다양한 질감이 동시에 묻어나는 보컬의 매력은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박창근의 존재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 후 밴드 가객 등의 활동을 거쳐 6년 만에 내놓은 2집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은 박창근의 음악적 지향이 보다 분명해진 앨범이다.
스스로 작사, 작곡, 편곡, 노래, 기타 연주, 음악감독 등 거의 모든 역할을 담당해서 내놓은 2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생태주의적 철학에 기반한 문제제기이다. 기존의 민중가요 진영에서 가지고 있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지나친 개발을 반대하고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일반적 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는 ‘햇볕 따사롭던 어느 날 소녀 손에 쥐어진 소세지’와 ‘멋진 그녀와의 데이트’에서 먹는 ‘화려한 조명 아래 스테이크’를 예로 들며 ‘오늘도 그대는 남의 살을 몇 점이나 삼키셨’는지, ‘남의 젖을 몇 통이나 마셨는지’ 묻는다. 그는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맞물려 있고 인간의 불행 또한 다른 생명체의 불행을 먹고 산다’며 육식 위주의 삶에 담긴 인간 중심적 사고에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다. 버림받아 내팽겨진 꽃들을 외면하고서는 이 땅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육식을 탐하지 않고 땅이 키운 곡식을 섬기며 살겠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민중가요의 담론이 인간중심적 진보철학에서 출발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지금까지의 민중가요는 주류 시민사회운동이 그러했듯 인간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고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철학적, 제도적, 정신적 방법들을 노래로 담아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생태주의운동이 일정하게 발전하며 공감을 얻어가는 데 반해 실제 살펴보면 생태주의철학을 노래로 담는 작업은 드문 편이었다.

 

생태주의 철학을 담아
그러나 지난 1집에서 ‘꽃이 피는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 했던 가수 박창근은 인간이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오만에서 벗어나 지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해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렇게 그는 제도적 모순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민중가요 진영에 생태주의 철학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다른 목소리를 내며 민중가요의 영역을 더욱 넓혀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개인 창작자들이 급증하며 나타난 민중가요 진영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 군대와 사람들의 재앙이 있는 것이 다른 생명을 잡아먹는 인간의 잔인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민중가요 진영 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진영 전체에서도 거의 유일한 생태주의적 문제제기이다.
박창근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지난 1집보다 훨씬 잘 정리된 가사와 탄탄한 송라이팅에 기반한 단순한 편곡으로 담아내고 있다. 지난 1집의 노래 말들이 다소 독백과도 같은 모호함으로 잘 와 닿지 않았던 반면 2집의 노래 말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체로 분명하게 전달함으로써 박창근의 가사쓰기 능력이 현저하게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1집에서는 밴드 편성을 기본으로 장구, 북, 꽹과리, 가야금까지 썼던데 반해 2집에서는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단순한 편성을 선택했다.
생태주의적 감수성의 곡들 이외에 개인적인 곡들이 좀 많고 악기 편성이 단조로운데도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탄탄한 송라이팅의 덕분일 것이다. 그리하여 1집에서 산울림 같은 펑크적 감수성을 맛볼 수 있었다면 2집에서는 포크락 가수로서 박창근의 가능성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1집의 보컬에서 김광석의 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을 정도로 정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매력을 보여주었던 박창근의 보컬이 2집에서는 다소 높고 날카로운 발성으로 변화함으로써 박창근 보컬의 다양한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하지는 못한 느낌이다. 그렇다 해도 현재 민중가요 진영의 개인 창작자들 중에서 서른 넷인 그가 막내일 정도로 새로운 창작자들이 등장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뚝심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앞으로 민중가요 진영의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박창근에게 좀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문하고 싶다.

 

* 서정민갑

진보적 음악운동단체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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