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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역사를 향한 장난 같은 질문 "천년의 수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1:56
비극의 역사를 향한 장난 같은 질문 "천년의 수인"
 
  만약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와 비전향장기수 그리고 5·18민중항쟁의 진압군이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 살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출가 오태석의 연극 <천년의 수인>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해서 한국 현대사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알려진 것처럼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3개월 뒤에 15년 형으로 감형되었고 한국전쟁이 나자 석방되어 포병장교로 복귀한다.

그는 이후 곽태영 백범독서회장, 권중희 민족정기구현회장에게 테러를 당하며 도피 생활을 한다. 하지만 결국 1996년 10월에 인천의 자택에서 시민 박기서 씨에게 피살된 그는 암살 배후에 대한 자백을 하기도 하고 백범 묘소를 강제 참배하기도 했지만 끝내 암살의 배후를 명쾌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비전향장기수의 경우, 이들이 1970년대부터 받아야 했던 가혹한 전향공작의 실태가 널리 알려지면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었지만 그들의 민주화운동 유공자 인정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역사적 평가는 아직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5·18민중항쟁 당시 진압군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내란의 수괴들 중 극히 일부만이 처벌을 받았을 뿐 그 아래에서 살육을 저질렀던 중간 지휘자와 사병들의 존재는 철저히 묻혀졌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의 기념일이 생기고 번듯한 추모 묘역까지 세워졌지만 아직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명확하지 않은 반쪽짜리 역사로 남아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사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다뤄
연극 한 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렇게 장황하게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보는 것은 오태석의 작품이 한국사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은 미국의 한반도 지배정책과 친미우익정권의 역사의 뿌리를 이루는 부분이다. 비전향장기수의 문제는 북한에 대한 평가와 통일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5·18민중항쟁은 군사독재정권과 미국의 역할뿐만 아니라 민중항쟁의 방식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모든 주제들은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인 현재형인 것이다.
그러나 전작들에서 과거의 역사를 비틀어 현재와 뒤섞고 경쾌하게 조롱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온 오태석은 지금까지의 사회적 논쟁과는 다른 해석을 내민다. 그의 눈에 비친 안두희는 신념에 불타는 우익청년이 아니라 포사령관 장은산의 협박에 죽지 않으려고 일을 저지른 소심한 청년이다. 비전향장기수 역시 자주민주통일의 신념에 찬 혁명가가 아니라 뇌출혈을 일으켜 말도 잘 못하는 병자일 뿐이다. 5·18민중항쟁의 진압군 병사도 소녀를 쏘았다는 자책으로 정신분열을 일으켜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오태석은 이 셋을 정신병원 같은 수감시설에 모아 놓고 우리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다. 그저 침대 두 개와 검은 벽 그리고 감시 통로로 이루어진 공간에 갇힌 인물들 중 자의로 그곳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두희는 상관의 명령을 받았으며, 비전향장기수는 김일성이 시키는 일을 했고, 병사 역시 발포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상급자는 누구일까? 소대장 위, 중대장 위, 대대장 위, 연대장 위, 사단장 위, 계엄사령관 위, 국방장관 위, 대통령 위에 존재한 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은 극중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인권 선언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고발된다. 하급자에 의해 이루어진 범행을 예방 제지하지 않은 상급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두희와 비전향장기수 그리고 병사는 역사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며 역사의 가해자는 남과 북의 정권이나 당시의 시대 자체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가해자를 밝혀내지 못한 역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시계처럼 멈춰버린 역사로서 우리 모두는 그 멈춰버린 역사 속에 수감되어 있는 수인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남과 북의 권위적인 정권 하에서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시대에 대한 오태석의 문제제기이다. 국가의 부름 아래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하고 그저 호명되어야 했던 시대는 얼마나 비극적이었던가? 이러한 문제제기는 최근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파시즘 논쟁과 더불어 더욱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지적이라고 본다.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지는 도발적인 참신함과 감칠맛 나는 대사 그리고 극단 목화 특유의 탄탄한 연기력은 관객이 극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을 갖추었다. 대중의 말초적인 감각만을 충족시키는데 급급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연극계에서 늘 이렇게 묵직한 이야기를 뚝심 있게 풀어놓는 오태석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역사에 똑같은 무게로 기록될 수는 없어
하지만 당시의 역사가 아무리 폭압적이었다고 해도 민족 지도자를 암살했던 테러리스트를 역사의 희생양으로만 해석하고 통일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비전향장기수가 자신과 안두희를 쌍둥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역사 속에서 모든 개인이 어떠한 주체적 의지도 없이 부속품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차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더욱이 안두희는 자신이 한 일의 의미를 모를 만큼 어리지도 않았고 끝까지 자신의 범죄를 숨길만큼 악랄한 확신범이었다.
광주항쟁 진압군의 정신병과 시민에게 얻어맞은 안두희의 타박 그리고 비전향장기수의 뇌출혈이 의사에게는 똑같은 병일지 몰라도 역사에 똑같은 무게로 기록될 수는 없다. 이것은 복잡한 역사의 실타래를 결국 장난으로 끝맺음한 오태석의 한계이며 우리 역사의 한계이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천년의 수인으로 남겨두어야 할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이상한 똘레랑스의 민주공화국 국민들이 아니던가.


* 서정민갑

진보적 음악운동단체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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