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물/칼럼/인터뷰 (230)
함께쓰는 민주주의
늦은 저녁.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1월의 춘천 명동거리는 어둠을 이겨내지 못했다. 불 밝히지 못한 상가 유리벽에 붙은 ‘임대’라고 적힌 복사용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바람을 탔다. 한국 마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유진규(57) 선생을 만난 건 백지영의 이 더욱 애절한 춘천 명동길 브라운 5번가의 중앙광장 탁자 위였다. ‘유진규의 빨간방에 오십시오.’라고 적힌 엽서를 지어 들었다. 애써 성장을 했지만 마치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온 듯 어린 티를 가리지 못한 여자아이들이 흘깃 쳐다보더니 저희들끼리 까르르 웃곤 어디론가 종종걸음을 친다. ‘빨간방’이란 글자에 그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 유진규는 이제 마임을 하지 않는다. 나이 57의 유진규는 다 버렸다. 새로운 개념의 공연 으로 그는 다시 시작한다.” 엽서 뒷..
이 땅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예술가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워낙 토양이 척박한데다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도 쉽지 않다. 장르가 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연연출가 김민정(36) 씨는 꼿꼿하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보기 드문 예술가로 꼽힌다. 나이답지 않게 다양한 안무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현대무용 전공자답게 무용, 연극, 음악 등을 결합한 실험적인 다원예술 작품을 선보여 왔다. 독립예술제, 인디페스티벌, 프린지페스티벌, 다원예술제 등의 무대에 서며 그의 진가를 알려왔다. 1991년 를 시작으로 , 등 수십 편을 만들었다. 프로활동 10년 남짓, 그는 벌써 무용계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춤은 기존 무용과는 다른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극..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희망의 노래 매주 월요일 오후가 되면, 명동 인근에는 경쾌한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노동자의 아들·딸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 앞에서 산재·해고·이주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들불장학재단 멤버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명동성당 주차장 앞에 작은 무대를 연다. 이 중심에는 30년 가까이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해온 노동가수 박준(48) 씨가 있다. 박준. 그는 80년 명동성당 청년활동연합회를 통해 민중과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된 뒤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운동을 펼쳤다. 그는 늘 장애인, 노동자, 도시빈민, 철거민과 함께 했고 이들은 그의 힘찬 노래를 들으며 애환과 설움을 달랬으며,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제 ‘화려한 휴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서울대 약대 출신의 문화기획자이자 민중문화운동가 그리고 영화사 제작자에서 펀드 매니저까지. 유인택(52) 아시아문화기술투자(주) 공동대표만큼 다양한 인생의 경험을 쌓아온 이가 또 있을까? 모험심이 강하거나, 무모한 도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지난해 5·18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로 관객 730만명을 끌어 모으더니, 지금은 400억 규모의 펀드를 문화콘텐츠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대표로 변신했다. 영화 , , 조용필 40주년 기념콘서트(부산 공연) 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지난 7년 동안 6천억 원이 펀드를 통해 영화계에 들어왔지만, 문화현장 경험이 없는 벤처캐피털이 운영하다보니 수익성과 투명성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영..
홍대앞 라이브 클럽. 어두운 조명 아래, 한바탕 놀아보겠다는 듯 차려입은 클러버들 사이로 퍼지는 음악은……. 가야금 소리? 얼핏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정민아(29)는 이미 가야금으로 홍대 인디 신에서 이름난 뮤지션이다. 지난 해 음반 을 발표하며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그. 맛깔스럽게 국악을 불러내는 솜씨는 물론, 전화상담원, 피시방 아르바이트생 등으로 생계를 이으며 살았던 독특한 삶의 방식도 화제가 됐다. 그런 부지런한 그녀는 올 초 평소보다도 훨씬 더 바빴다. 홍대 연주장은 물론, 서울광장까지 진출한 탓이다. 그를 불러낸 것은 촛불시위다. 촛불집회에 나타난 가야금 연주자 “일찍부터 참여했었죠. 5월 2일 시위 첫날부터 나갔으니까요.”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날짜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
비극적이거나 비참하지 않은 조선인들의 아름다운 일상 9년째 오로지 한 작품을 만들어온 영화감독이 있다. 남의 손을 빌어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도 모자라 자비를 털다 못해 빚까지 졌고, 지난달 말 마지막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1999년 8월부터 우토로 마을을 담은 영화 를 제작 중인 김재범(42세) 감독 이야기다. 일본 교토부 우토로 51번지. 이 마을은 1941년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제에 강제 징집 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일본이 패망한 뒤 무관심 속에 방치됐지만, 200여 재일 동포들은 이곳에서 60여 년 동안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우토로는 오랫동안 주인 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기고 하수도 처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더미 같았던 이곳을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땅..
그룹 드라마 오에스티로 유명한 프로젝트 그룹 촛불이 켜지면, 청계천에는 두 개의 달이 뜬다. 촛불이 잦아들고 사람들이 하나 둘 지쳐가는 자정 무렵이면 어김 없이 청계천에는 아일랜드 민요가 흐른다.‘ 두 번째 달 바드’의 거리 공연이다. 시위가 거칠어져 몸싸움이 벌어질 때도, 지친 시민들이 둘러앉아 노래를 청할 때도,‘ 두 번 째 달 바드’는 켈트 음악으로 부드럽게 사람들의 귀를 적셨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촛불시위를 찾기 훨씬 전부터 현장에서 조용히 공연을 해 왔던 이들은 시위현장을 문화축제로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지금까지 벌써 한 달여 넘는 기간 을 꾸준히 촛불집회에서 보냈다. 촛불이 활활 타오르면서이들의 공연 소식은 널리 입소문을 탔고,이를 본 다른 음악인들도 악기를 들고 힘을 보태기시작해 어느 샌가..
마니아가 있는 신세대 대표 만화가 수십 년 군사독재를 끝장낸 6월항쟁, 어느덧 21년이 흘렀다. 당시 현장을 누볐던 수많은 시민들에 겐 지금도 생생한 추억이다. 이를 경험하지 않은 10~20대에게 6월항쟁은 낯선‘역사의 한 페이지’일뿐. 점차 박제되고 있는 6월항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펴낸 만화 가 잔잔한 반향을 불러모으고 있다. 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가 1987년 6월항쟁 20돌을 기념해 만화작가 최규석(32) 씨가 제작한 만화다. 지난 3월부터 시디로 만들어 전국의 중?고등학교와 공공도서관에 배포됐고 인터넷(www.610.or.kr)으로도 볼 수 있다. “반응이 진짜 좋은 것 맞아요? 괜히 좋아해줘야 할 것 같고 해서 다들 설레발을 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386들은 재미가 없어도 자신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