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물/칼럼/인터뷰 (230)
함께쓰는 민주주의
자신을 성찰하는 여행 #서울시내 광화문에 있는 모회사에 다니는 40대 중반의 A씨. 그는 갈수록 살기가 버겁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매일 정장 차림으로 버젓한 회사에 출근하는 그에게 "그 정도만 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는 남에게 보이는 것만큼 행복하지않다. 정년퇴직까지 버티는 선배들이 많지않은 것을 보면 그도 언제 회사를 그만두어야할지 알 수 없다. 시대는 늘 새로운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그도 자기 개발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영어 공부도 지쳤다. 영어나 중국어를 새로 배우지는 않는다하더라도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모바일환경과 같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마저 쉽지않다.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오십견에 전립선염까지 남에게 말못할 병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고 인농(仁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생명농업의 선구자 박재일 회장이 지난 8월 19일에 선종했습니다. 신앙과 사회적 관점에서 저는 고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립니다. 경북 영덕에서 10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64~65년 한일협정반대 시위 주도로 옥고를 치르면서 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65년 이옥련 님과 결혼한 그는 옥중에서 첫 딸의 아버지가 됩니다. 졸업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에 간 남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은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남편이 선택한 길과 삶은 언제나 옳다고 확신했으며 이 신뢰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한결 같았습니다. 박재일 회장은 딸 다섯을 낳아 아름답게 키운 아버지이며 부인을 사랑하고 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실천적..
전통문화로의 초대 - 전주학교이두엽 교장 글·사진 유성문 rotacklycos.co.kr 학창시절 전주에 간 적이 있다. 일탈의 작은 여행이었지만 그때 전주의 첫인상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저물 무렵 오목대에 올랐을 때 발아래 교동 일대의 기와지붕이 넘실거렸다. 그 고색창연(古色蒼然)함은 저녁 연무 속에 그윽하기 그지없었다. 실제 몇몇 집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했다. 모색(暮色)이었다. 그 모색은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까닭 모르게 서글프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전주는 변했는가. 다시 오른 오목대 아래로 기와지붕의 물결은 여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퇴영(退)이 더욱 깊어져 버린 느낌이다. 같은 남도의 빛고을이 격랑에 휘말렸을 때에도 비교적 온전했던 전주였음에도 오히려 더 깊이 가라앉..
장차현실의 꿈 ‘여성’과‘장애’를 주제로 한 장차현실의 만화 글 유성문 rotacklycos.co.kr #타령3 - 은혜를 출산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담당 소아과 선생님이…. “애가 문제가 있구만요.” “넷?!” - “저런 애는 버려도 데려가는 사람도 없다구….” - 끝없는 구덩이 속으로 빨려가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은 왜 이리 비참하냐!!” - 왠지 사회 속에 격리되어 있는 듯한 장애인들…. -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들에겐 먼 이야기처럼 생각했었다.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사는 것만도 다행이겠구만.” - 그런데 그 ‘문제아’가 내 품에 왔다. “우짜면 좋냐!!” (-안절-부절-허둥-지둥-) - 내 품에서 아이는 자꾸 자랐다. “어-어-엄-마” “흑-. 근데 되게 귀엽다.” - 이젠 그 문제아..
경술국치100주년의 아픔과 부끄러움, 그 극복과 다짐 을사늑약(1905년), 정미늑약(1907년)을 기억하며 올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100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말 그대로 나라를 빼앗긴 치욕스러운 날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1875년 강화도 군함 공격과 1876년 12개조항의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체결에서 한국침략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1894년 청일전쟁과 갑오농민전쟁 개입 그리고 서울 궁궐 불법점령으로 침략은 더욱 구체화 되고 미국 루즈벨트가 필리핀의 침공을 일본으로부터 보장받고 일본의 한국 침략을 동의한 이른바 태프트-가쓰라 각서(1905. 7)와 을사늑약(1905. 11)을 통해 한국은 사실상 국권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1907년 정미7늑약(1907. 7)으로 고종이 물러나며 군대가 ..
남해 사람은 을 본다 글·최이삭 redsummer312gmail.com 남해 사람은 남해 신문을 본다. 남해군에서 이것은 불문율로 통한다. 식당에서, 볼링장에서, 택시에서도 남해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집 중에 두 곳이 남해신문을 본다더니 정말이었다.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남해신문의 활약은 새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남해신문의 사장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소개하는 글에는 항상 군민의 50%이상이 구독하는 남해신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체감한 ‘군민의 50% 이상이 구독하는 신문’은 업적으로만 끝나는 빛나는 이름이아니라 남해군민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은 생활의 한 축이었다. 한 주민은 “남해에서는 지역신문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
“괜찮아 잘 될 거야, 나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_가수 이한철 글 김미영 kimmyhani.co.kr 이한철(38)은 말 그대로 ‘비타민’ 같은 가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맑은 음색이 그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와 어울리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요즘 그의 활동이 조금 달라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를 보였던 5월 18일, 그는 무대가 아닌 한국에 있는 프랑스대사관 앞에 섰다. ‘외규장각도서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그러고 보니, 최근 그의 근황을 주로 신문과 시사주간지에서 확인했던 것 같다. 그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공연장에서뿐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콜텍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MBC파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현장에서도 기타를 ..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가족 모든 분들께 7월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7월에 우리는 7·4공동성명, 7·17제헌절, 7·27정전협정 등의 교훈을 연도별로 생각하며 묵상합니다. 1948년 7월 17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사적 한계가 있음에도 어쨌든 우리는 일제침략과 미군정의 종속기간을 끝내고 자주국가로서 헌법을 제정하고 민주국민으로서의 긍지를 다짐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중적 핵심 가치를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역대 독재자들이 헌법을 크게 훼손하면서도, 이 1조문 만은 그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민주공화국이라는 ..
오른쪽 손이 왼쪽 손을 긁어준 것의 가치 _풀뿌리 운동과 한밭레츠 글·김성훈 tjletshanmail.net 풀뿌리 운동 이란 무엇인가? 은 특정한 식량을 재배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심어진 풀이다. 이들은 벼, 콩, 배추 등 독립된 자기 이름으로 불려지는 상품이 되며 그 순간 풀이면서 풀이 아니게 된다. 그와달리 쑥, 명아주, 질경이, 민들레, 벌금자리 등은 상품이 아닌 한에서 풀이지만 이 또한 상품화할 목적으로 채취되거나 재배될 경우 자신의 독립된 이름을 가지며 풀이 아니게 된다. 자신의 독립된 이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을 의미하며, 상품이 아니라는 것은 상품-화폐-자본의 질서에 편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풀뿌리 운동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갖지 못한 시민이 스스로의 삶의..
민주주의국가 시민으로 정치 참여하는 것뿐, 나의 본업은 배우 문성근 글 김미영 kimmyhani.co.kr 문제적 캐릭터 전문 연기자. 배우 문성근를 수식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 진행자, 지식인 배우, 노사모 회원, 사회 참여 연예인 등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무궁무진하다. 사실 모두 맞는 말이다. 등 논란이 될 만한 영화에서 그는 독특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팬클럽 회원이자 시민의 자격으로 현실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는 의무”라며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 참여…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지만 후회 없다 하지만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