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이야기 (85)
함께쓰는 민주주의
“전설속의 누님” 순댓국집 임선호 씨 글 장남수/ jinsoo711@hanmail.net 올해로 꼭 30년, 해마다 9월이면 ‘그날’을 떠올리며 전국에서 한 공간 안으로 모여드는 여성들이 있다. 제주, 강릉, 광주, 대구, 멀든 가깝든 만사를 제쳐놓고 바람난 처녀처럼 달려가는 그곳, ‘원풍동지’모임이다. 그 모임에 30년 동안 단 한해도 결석하지 않은 임선호(53세)씨를 만나기 위해 조치원의 ‘무봉리 순댓국’으로 찾아갔다. 25년 경력의 순댓국 뽀얀 국물에 직접 담근다는 맛깔스런 김치 걸쳐 먹으니 환절기 감기가 뚝 떨어져나가는 듯 했다. 임선호 씨는 1975년 열여섯 살에 원풍모방에 입사했다. 양성공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언니들에게 노동조합이야기를 들었고 자신이 입사하자마자 유니언숍 제도에 의해 조합원이 ..
이소선어머니, 1주기 추도식 글 장남수_원풍노조, 등 지난해는 특히 민주화운동의 전선에서 큰 역할을 하셨던 귀한 어른들 중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이 이견 없이 호칭했던 ‘어머니’도 떠나셨다. 그리고 벌써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도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터지고, 깨지고 상처받았다. 어머니의 부재로 상처는 더 쓰리고 쓸쓸했다. 9월 3일 오전 11시, 마석 모란공원에는 400여 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준비한 대형버스를 타고 온 민주인사들, 전태일의 친구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관계자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그리고 얼마 전 회사가 고용한 용역에 의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안산의 SJM노동자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들의 티셔츠 ..
‘버티는 삶’ 투쟁 2,000일, 콜트 · 콜텍 노동자들 글 장남수_원풍노조, 등 집필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마친 콜트악기 노동조합 방종운 위원장의 부인 이쌍심(56세)씨의 눈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간병인 일을 한지 벌써 8년. 24시간 맞교대를 하고 나오면 잠을 자야 하는데 여름에는 방이 더워 잠들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대충 집안일을 하며 낮 시간을 버틴 후 저녁을 먹고 이른 잠을 청한다. 남편 회사가 ‘위장 폐업’을 한지 딱 2,000일이 지났다. 3천만 원의 융자 빚이 남아있는 작은 빌라는 자칫하면 넘어갈 지경에 있고,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두 자녀의 학자금 대출도 1천만 원 이상 남아있다. 사람들이 “그런 대학도 있었어?” 라고 말하는 대학을 졸업한 스물아홉 살 아들은 한 달에 실 수령액 ..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깃발이었던 대우조선노조 백순환 글 장남수 (원풍노조, 등 집필) “참으로 긴 굴종과 침묵이었다. 인간이기를 거부당한 사람들의 기계적인 행진이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그렇게 긴 세월 이어져 온 체념과 절망, 그 아득한 무기력……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부여잡은 삶의 집념은 뇌성벽력과도 같이 우리 삶을 강타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기계일 수 없었다. 노동자! 그 찬란하게 빛나는 이름 앞에서.” - 92년, 대우조선노동조합 발행 사진 자료집에서 1987년 그 뜨겁던 여름에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잠시 기계를 끄고 깃발을 들었다. ‘노동조합결성’ ‘기본급 12만원 인상하라’ ‘김우중은 각성하라’……깃발들 사이로 ‘전태일 열사정신을 계승하자’도 펄럭였다..
노동운동이 바탕 된 ‘소통가족’ 글 장남수 (원풍노조, 등 집필) “대학 다닐 때 학생회활동을 하면서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시위현장의 분위기가 치열해지고 전경들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무서움이 밀려오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무서운데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경찰서에 끌려 다녔던 엄마는 어땠을까? 살면서 순간순간 엄마 아빠의 젊은 날을 상상하게 돼요.” 청계노조 최현진(조사통계부장) 조미자(대의원)씨의 딸 최하나(28세, 직장인) 양은 엄마 아빠의 노동운동경력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동생까지 네 식구가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닮아 있고 공감 영역이 같은 ‘소통 가족’이다. - 부모의 노동운동 내용은 언제 알게 되었을까? 어릴 때는 몰랐어요, 고등학교 때던가 옛날 앨범에서 엄마 아빠의 청년시절 사진을 보는데..
오월의 기억, 삼양동 사람들 글 장남수 (원풍노조, 등 집필) * 이 글은 윤기현 씨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김지선 씨의 증언을 더했습니다. 1980년 오월 광주의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치열한 활동을 전개했음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 중 한 지역인 서울 삼양동 산동네에서 이루어진 활동들은 지면을 통해 이야기된 적이 없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면관계로 매우 축소할 수밖에 없는 점, 관계되신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윤기현의 기억 그날, 윤기현(농민운동을 한 아동문학작가이며, 현재 를 설립준비 중)씨는 광주 도청 안에 있었다. 5월 27일 새벽 두시쯤 되었을 때 그들(진압군)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미 ‘순교’를 결의한 상태였다. 다만 최후의 상황이 닥쳤을 때 청소..
“1대 100으로 싸우다 그런 거야.” -청계노조 신광용, 김선주 씨의 아들 ‘동주’이야기 (지난 호에 이어) 장남수 jnsoo711@hanmail.net 물려받은 유산은 이타적 감수성 김선주 씨 부부가 결혼할 때 주례를 하신 문익환 목사님은 한껏 신랑신부를 격려하신다는 게 김선주 씨 인생을 더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빠(신광용)의 일만으로도 골치가 아프셨던 할아버지가 엄마(김선주)마저 청계노조출신에다 무슨 단체일도 하는 ‘투사’라는 바람에 기절해버리신 거다. 그 후의 힘겨운 시집살이는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결혼식장을 감시하는 경찰들도 기가 막히는데 속 썩이는 아들도 모자라 며느리까지 ‘빨간 물든’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동주는 그렇게 시대를 엎치락뒤치락 헤엄쳐 온 가족들의 고단..
“1대 100으로 싸우다 그런 거야.” - 청계노조 신광용, 김선주 씨의 아들 ‘동주’이야기 1 글 장남수 (원풍노조, 등 집필 http://namsoo.tistory.com) 청계노조 간부였던 신광용, 김선주 씨의 아들 신동주(24세,ㅅ대학 언론홍보학과 휴학중)씨를 만났다. 그에게 부모들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담겨있을까? 사실 ‘청계노조’ 하면 떠오르는 명단 속에 김선주 씨를 포함시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개 맨 앞줄에 서 있던 사람, 징역을 살거나 명망이 높아진 사람들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줄을 받쳤던 뒷줄의 사람들, 뒤를 지켜내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역사의 순간들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청계노조에서 김선주 씨들이 없었다면 청계노조의 맥은 다른 줄기와 다른 모양으로 서 있을지..
* “민주화운동이야기”는 민주화운동/노동운동은 우리시대 개개인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때의 어느 선택이, 또 그 이후의 어떤 선택이,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과거’세대의 이야기라면, 그날들 꿈꾸었던‘미래’인 자녀들은‘현재’어떤 모습으로 또 다른 미래를 꿈꾸며 이루어가는지를 연결해보는 장으로 꾸미려합니다. 그 첫 번째는 마침 원풍노조의 자녀들이 모임을 시작했기에 여는 마당의 의미로 시작합니다. 다음호부터는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꾸밀 예정입니다. ‘꿈을 이어가는 사람들’ -원풍노조 자녀모임이야기 - 장남수 “엄마가 노동조합활동을 했고 해고당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울부짖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어요, 지금 내 나이때에 엄마가 저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