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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 세실 레스토랑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이 깊은 이유는 6월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 역사의 과정에서 기자회견, 성명서 발표 그리고 큰 일을 앞둔 민주 인사들의 회동 장소로 자주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세실 레스토랑은 숱한 민주화 운동사의 사연만 남겨놓고 문을 닫았다. - 사진제공 경향신문
2·4보안법 파동 1958년 제 3차 보안법 개정으로 촉발된 2·4 보안법 파동으로 수많은 시민과 야당의원들이 시위 과정에서 폭력적인 경찰에게 연행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조차 무장 경찰에게 연행되는 상황이었으니 일반 시민들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전국에서 국민들이 보안법 개악을 규탄하는 규탄대회와 시위를 벌였으며, 온몸으로 항의하기도 했지만 정권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판단한 이승만 정권에게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렇게 처절한 과정을 거치며 생명력을 갖고 성장해왔다. 2.4 국회파동을 규탄하며 민권사수 구호가 적힌 유인물을 뿌리는 민주당원 사진제공 경향신문
부마항쟁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 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의 관건, 금권 동원에도 불구하고 제 1야당이던 신민당이 총 유효표 가운데 여당보다 1.1% 더 득표하였다. 이는 박정권의 장기독재와 개발독재를 반대하는 민심의 반영이었다. 이러한 민심이반 현상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으로 표출되어 유신체제의 몰락을 재촉했다.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번지자 박정희 정권은 장갑차를 탄 무장 군인들을 투입할 정도의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진제공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