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이야기 (85)
함께쓰는 민주주의
위수령 1965년 4월 한일협정이 가조인되자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반대데모가 폭발하였다. 그 결과 휴교 조치와 조기방학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데모는 잠시 잠잠해졌다. 그러나 8월 22일 개학이 되면서 다시 학생데모는 시작되었고 더욱 격렬해졌다. 경찰병력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휴업령이 내려지고, 정치교수라는 이름으로 일부 교수가 학교에서 추방되었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사진제공 경향신문 광부일기 1 검게 벌린 아가리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 카바이트 칸데라 불빛 벤또 뚜껑 물 한 모금에 가족들 얼굴 떠올리고 - 시 이상훈
1987년 7·8월노동자대투쟁 1987년 7·8월노동자대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파업투쟁으로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향상과 노동운동의 발전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울산지역의 현대그룹 노동쟁의에서 상징되듯이 대공장과 중공업 부문의 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운동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면서 향후 본격적인 대중적 노동운동의 출발을 예고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사진제공 경향신문
1987년 여름 시청광장 1987년 이맘때 쯤, 시청 앞 광장에서는‘독재타도’와‘직선제 개헌’등 정치적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엄마 품에 안긴 채 “거짓 없는 나라에 살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듯한 아이의 얼굴이 이채롭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21년이 지난 2008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진제공 경향신문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역사의 경험을 다루는 데는 기억의 해법과 망각의 해법이 있다. 기억의 해법은 그 사건을 촉발시킨 상황과 그 정 신을 철저히 기억함으로써 이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자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망각의 해법은 과거는 단지 과거지사이므로 잊어버리고 미래에 매진하자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해법은 망각의 해법이 아니라 기억의 해법이어야 한다. 인간이역사를발전시킬수있는능력은역사를기 하고성찰하여교훈을얻는능력에달려있다. 망각의 해법이 아닌 기억의 해법만이그존재의미가있는것이다. 현대사에 묻힌 국가폭력 우리 근현대사는 식민지 지배, 전쟁, 분단 그리고 독재라는 뼈아픈 상처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몇 번의 시도조차 실패로 끝났다. 지난날의 과오..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의 큰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학생운동권, 재야민주인사, 야권이 민주대연 합의 큰 틀 속에서 합심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6월항쟁은 3·1운동 이래 시위 참여자가 가장 많 았고 3·1운동처럼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했다. 일반 대중이 이처럼 많이 참여한 것은 독재 정권의 장기화나 독재정권의 통제, 17년 전까지 있었던 직선제가 실시되지 않고 계속 체육관대통령 이 나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었다. - 『한국현대사 60년』(서중석) 사진제공 경향신문
5·18민중항쟁 1980년 5월 그날의 남도를 표현하기에 이 사진 한 장이 너무도 부족하지만 수많은 민중들의 넋이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곳의 5월은 뜨겁기만 하다. 장갑차를 앞세우고 총칼을 든 계엄군 앞에서 민중 들은 어떤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평범한 직장인과 교복을 입은 여고생, 구멍가게 아저씨와 세탁소 아주머니까지 그날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5월민중항쟁 중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짓붉었다. 사진 김녕만 사진제공 (재)5.18민주재단
12월 섣달 이제 농가는 비로소 두 다리를 뻗고 휴식에 들어갑니다. 한 해 농사를 잘 갈무리해 결실을 얻은 농가에서는 웃음꽃이 피고, 어쩔 수 없이 아픔을 겪은 이들은 이듬해를 기약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네 모두가 온갖 병충해와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제 주어진 몫을 성실히 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럴 즈음 저는 한 산골 마을을 지나다가 사진에서 보는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옥수수 알갱이를 섞어 밥을 지어줬던 마을에선, 마침 매밀 부침개를 서로 나눠 먹으며 섣달의 정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타관살이로 힘들 자식걱정도 하고 이웃마을 병든 김씨를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늙고 튼 손을 맞잡으며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이 이 도회 사람 눈에는 더없이 정어린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한 해 농사가 이렇게 순..
11월 갈무리 비어 있었습니다. 장마와 뙤약볕을 이겨내고 결실 맺었던 풍요로운 들은 이제 긴 휴식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도 촌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피붙이 일가붙이 가릴 거 없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논 두둑 길로 추수한 볏가리를 싣고 돌아오는 할배의 경운기가 보입니다. 볏짐 탓에 짐칸에 타지 못한 손자 손녀가 뒤를 따릅니다. 늙은 할아비대신 기운 써야할 아비는 큰 도회로 돈벌러 간지 오랜 세월 흘렀습니다. 깊은 산 높은 곳엔 어느덧 첫눈이 왔다고 합니다. 그날 밤,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툇마루 넘어 문풍지를 스쳤습니다. 고샅 쪽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입동입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찍었습니다. 글·사진|노익상 photree@hanma..
10월 가을걷이 대체로 요즘 농가에선 탈곡한 나락을 건조 과정 없이 바로 내는 ‘산물벼’ 출하를 많이 합니다. 제 값에 어림없는 끔인데도 서둘러 내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에 처한 농가가 많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나라에서 팔아주는 곡식이 해마다 줄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그나마 있던 정부 수매마저 곧 없어지는 절박함이 앞서서입니다.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길가나 너른 뜰에서 벼를 말리는 정겨운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도 그렇습니다. 한 해 한번뿐인 농사에 온 가족 목숨이 걸려있는 물벼를 가을 햇살에 고슬 하게 말리는 할미 낯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해를 거듭해 물정이 바뀌어도, 이처럼 고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을날 천천한 걸음으로 곡식을 뜰에 내는 정겨운 풍경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