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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김규항의 글 모음집 나는 왜 불온한가 본문
B급 좌파 김규항의 글 모음집 나는 왜 불온한가
고향 친구들을 만날때 마다 낯설다. 아저씨가 다 되어 가는 유부남 사내들의 화제란 건강관리와 재테크, 그리고 아이 얘기가 대부분. 늘 입을 닫고 조용히 들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어쩌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매한가지다. 세상이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자조섞인 결론은 결국 노래방의 고성방가로 이어진다. 서른을 갓 넘긴 사내들의 조루같은 조로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새벽길은 그래서 언제나 쓸쓸하다. 아파트의 크기와 은행계좌의 잔고와 자동차의 종류로 행복을 가늠하는 짐승같은 자본의 가치관에 잡아먹혀버린 친구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돌아설 때 김규항의 글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개혁의 담론에 매서운 칼을 들다 허세를 부리지 않고 수사를 남발하지 않으며 단숨에 질러오는 그의 글은 찬물처럼 매섭고 죽비처럼 칼칼하다. 쉬운 우리말로 가까이 있는 벗에게 조곤조곤 속삭이듯 털어놓는 글들은 늘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글을 잘 써서만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 백척간두에 있기 때문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세계관이며 태도이다. |
그가 두 번째로 내놓은 글 모음집 『나는 왜 불온한가』에서 가장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바로 개혁의 담론을 대신하려 하는 ‘의사’진보이다. 진보라는 신념을 버렸음에도 80년대의 운동경력을 팔아 새로운 기득권 층으로 등장한 이들은 이제 시민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김규항이 보기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시민의 힘에 의한 개혁은 단지 ‘변혁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정신을 청산’하는 것일 뿐이다. 주식이 제 값을 받기를 바라고, 핸드폰 사용료가 좀 더 적절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가? 낙천·낙선운동에 슬그머니 혁명을 갖다 부쳤지만 과연 그 혁명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그는 개혁이 주류 담론이 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억압과 경멸에 처한 사람들을 상기시키며 묻는다. 개혁은 결코 혁명을 대신할 수 없으며 단지 노동자 ·민중의 삶을 능욕할 뿐이다.
현실에서 불온한 B급 좌파 |
* 서정민갑
진보적 음악운동단체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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