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물/칼럼/인터뷰 (230)
함께쓰는 민주주의
해신의 여진을 생각합니다! 요즘 수·목요일에는 저녁모임이나 술자리를 거의 갖지 않습니다. 혹 있더라도 좀 더 일찍 종례하고 집으로 돌아들 갑니다. 수·목요일 저녁 신지도에서 벌어지는 풍속도의 한 장면입니다. 애초에 그 요일을 피해 술자리를 만듭니다. 모 방송국의 드라마 시청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시청률 상승에 한사코 보탬을 주지 못 하는 저이지만, 의 등장 인물들이 빚어내는 삶의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곤 합니다. 장보고와 염문, 정화와 채령 아가씨의 임에게로 향한 저 애틋함의 향방이 어찌 전개될 것인지를 저 또한 속앓이 하듯 지켜보고 있습니다. 물론 1,200여 년 전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이란 죄다 경제의 노역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함을 새삼 느껍게 감지하며, 21세기 들어 강대국의 지배욕에..
곧 경칩(驚蟄)입니다. 우수(雨水)가 앞선 절기지만 진짜배기 봄의 전령은 경칩이지요. 남녘은 이미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요, 북녘에서는 꽁꽁 언 대동강 물이 녹고 삭풍마저 누그러지는 때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기상이변이 하 잦아 시(時)도 모르고 절(節)도 가늠하기 어렵긴 합니다. 지난해 3월에는 게릴라성(?)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에서 오도가도 못 한 채 혹한의 밤을 지샌 차량들이 많았습니다. 올해 역시 겨우내 보기 어렵던 눈발이 2월에서야 매우 사납게 흩날렸습니다. 체감 온도 영하 20℃ 이하로 떨어진 추위가 몰려온 것 또한 2월이었습니다. ‘3월 추위가 장독 깬다’는 옛말이 있듯이 올해도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긴 합니다. 딴은 기상이변과 달리 3월은 아이들 개학을 앞두고 꽃샘추위가 몰려와 옷깃을 한껏 여미..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지요. 한뎃바람은 입안 얼얼하지만 가슴은 활활 타 눈물 쏙 빼놓는 매운 겨자 맛으로 불어 닥쳐야 합니다. 완두콩만한 눈발 또한 드세게 날리어 옷깃 단단히 여미게 해야 참으로 겨울다운 맛이 나게 됩니다. 그해 눈 많아야 이듬해에 풍년 든다 하지 않습니까? 가을걷이 끝낸 거친 논밭에 여직 남아, 다음 해에 심을 알알의 곡식과 민낯 같은 푸성귀 갉아댈 해충도 덮어버려, 탱탱히 얼게 하지요. 그런 겨울에 만나는 겨울 바다는 속살마저 뜨겁게 덥힐 것입니다. 명사십리(鳴沙十里)라 불리는 넓은 모래밭이 완도의 신지도(薪智島)에 있습니다. 어우러짐의 미학, 명사십리 여름철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지요. 북녘, 함남 원산시 갈마반도의 남동쪽 바닷가에 특히 해당화 많이 피어 있다는 같은 지명의 ..
새해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데 막내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섬집 아기’라는 노래였어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라는 가사로 혼자서 노래를 곧잘 부르기도 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견해서 저도 따라 불렀지요.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적요하면서도 넉넉하게 닿는 노래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달마다 동요 부르기를 하는데 어느 달엔가 선정된 노래 중 한 곡이었다고 합니다. 좋은 교육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동요는 학교 음악 시간에 억지로 배우고 난 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서 재빨리 지워버리는 노래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배우고 난 뒤..
사내는 겁에 질려 있었다.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공포가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표정이 원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괴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분노, 원망, 애원, 체념, 심지어 야릇한 미소까지 뒤범벅된 듯한 묘한 눈매는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 가증스러웠다. 김달출. 학생들이 빼앗은 경찰 신분증에 적힌 사내의 이름 석자였다. 그것은 지금 수 십장이 복사돼 교내 모든 게시판에 붙어 있을 것이다. ‘불법 사찰 짭새 체포!’ 사내의 운명은 이제 경각에 달려 있었다. 무쇠보다 단단한 것처럼 보였던 몸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 모양 초라한 행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람하던 어깨도 바람 빠진 풍선마냥 풀이 죽어 행려병자의 그것처럼 왜소하게 오그라든 모습이었다. 1984년 4월 S대 학생들이 올린 뜻밖의 전과는 그 학..
지금은 구치소나 교도소에 ‘뺑끼통’이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방안에 배변을 하는 통이 있어서 거기에다 대소변을 봤다. 그 통을 일컬어 ‘뺑끼통’이라고 하고 이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교정시설의 화장실을 ‘뺑끼통’이라 한다. 수형 시설 내에서 언어 순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이 말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한번은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달에 몇 번씩 소지해서는 안 되는 물건을 조사하기 위해 교도관들이 방 안을 뒤지는 날이 있다. 보안과장이 재소자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했다. “에~ 이제 재소자 여러분들도 달라져야 합니다. 언어 순화는 기본이고 그리고 폭력 금지 특히 여름철 ‘뺑끼통’ 청소를 각별히 당부 합니다.” ‘???’ 아니 언어 순화를 하자면서 ‘뺑끼통’이라니..
“야, 너 배정식하고 동기지?” “그런데......요.” 털보 선배가 정식이 얘기를 꺼내는 순간 그는 술맛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새삼스럽게 물어보지 않아도 뻔히 아는 얘기를 마치 추궁하듯이 묻는 선배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나아~쁜 노~옴!” 선배는 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정식에게 하는 욕이었지만 그에게는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화풀이를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단지 고등학교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술기운 못지않게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는 입을 닫았다. 험악해지는 선배의 말에 더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술 취해 흥분한 사람과 입씨..
음모, 반역, 작당, 배신, 밀고, 투옥, 욕설과 괴담 뒤의 충격적인 결말…….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반전, 30여 년 전 서울 시내 한 사립 남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난 괴이한 사건이다. 유신체제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74년, 이 학교에 두 가지 이변이 일어난다. 그 하나는 만년 이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즉 ‘뺑뺑이 1세대’를 맞이한 것이다. 고교입시제도 하에서는 감히 유치하지 못할 우수 인재를 대거 확보한 학교 당국은 꿈에 부풀었다. 재단 이사장은 의욕에 넘쳤고 학교장은 투지에 불탔다. 사건의 단초는 여기서 싹텄다. 교사들의 ‘의욕치’가 높아질수록 죽어나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교정은 서서히 입시지옥으로 변했고, 학생들은 ‘점수 따는 기계’로 전락해갔다. 이때 세상 물정 모르..
긴급조치 9호 세대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26동 사건은 그러나 가장 엉터리 같은 사건 중 하나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단죄한 재판부, 그리고 사건 당사자인 학생들도 그 전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심포지엄 중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인 데다 강의동이 폐쇄돼 기관원이나 교직원이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성 현장에 있다가 연행된 학생들도 곧이곧대로 증언할 리 없다. 조서가 어떻게 꾸며지느냐에 따라 훈방이냐 구속이냐가 결정되는 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학생들도 뒤죽박죽 진행된 농성사태의 전말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는 바로 이 사건 현장인 26동에 있다가 연행된 400여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학내 강력한 지하서클의 핵심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그에게 강도 높은 조사가 따르는 것은..
누구는 여름날이면 이십년 전 사건을 떠올린다. 더울수록 그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더위를 식힌다. 납량특집도 그런 납량특집이 없다. 무시무시한 기억이다. 소름이 쫙 끼친다. 그러다가 종래에는 더 더워진다. 부르르 주먹을 떨다가도 이내 맥을 놓는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한숨을 쉬며 빙그레 웃고 만다. 부질없다는 듯 입맛을 쩍쩍 다시는 것도 싱거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 지난 일이다. 1986년이면 제5공화국의 전횡이 가히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당시 민심은 미국의 자본, 금융, 상품시장 개방 강요를 위한 갖은 압력으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굴욕적이게도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은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였다. 이른바 ‘5·3 인천민주화운동’ 등 민족자주·민중민주세력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