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화 속 시대 읽기 (121)
함께쓰는 민주주의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글 /서효인(시인, humanlover@naver.com) 여기 선거로 뽑은 대표자가 있다. 여기 선거로 뽑힌 자들이 나라를 대표해 모이는 건물이 있다. 지붕이 둥그런 건물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사내가 있고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결정에 의해서 혹은 욕망에 의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시스템은 결정된다. 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방법은 다시 돌아오는 선거에서 한 표 던지는 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어떤 측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고도 하고, 어떤 측에서는 대의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음에 큰 의심을 품고 있진..
곽재구 시집, "沙平驛에서" 글 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청년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청년은 시대에 물드는 리트머스다. 청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며, 대합실 구석에 서 있는 객(客)이다. 그곳은 아마도 사평역. 곽재구 시인에 의해 세상에 나온 사평역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곽재구 시인의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사평역은 같은 이유로 세상 모든 청년이 발붙이고 있어야 할 쓸쓸하고 눈 시린 공간이 되었다. 사평역은 어디에도 없다. 아니다. 사평역은 어디에든 있다. 곽재구 시인은 1981년 「沙平驛에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보통 신춘문예 마감일을 따져보면, 시인이 시 원고를 우편함에 넣은 시기는 대략 전해 11월 정도일 것이다. 1980년 겨..
신경림 시집, '농무' 글/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한때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흙으로부터 비롯되던 날이 있었다. 불과 50년이 지나지 않은 날이다. 그때 우리 대부분은 해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이슬과 함께 논과 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땅을 일구며 땅에 기댄 채 땅에 의해서 살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했고, 가난을 탈출하기 위하여 부드러운 땅이 아닌, 단단한 아스팔트 위로 올라야 했다. 맨손과 맨몸뿐인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그들은 도시로, 서울로, 서울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으로 모이고 모였다. 불과 50년이 되지 않은 이야기다. 신경림의 농무는 농촌의 이야기다. 가난의 서사이고, 떠남의 서정이다. 농촌은 우리 대부분의 고향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제 농촌에 살지 않는다. 농..
단단하게, 더 단단하게 "김정환 시집 1980~1999", 이론과실천, 1999 서효인_ 시인/humanlover@naver.com 시집의 고집 이 시집은 괴물 같은 시집이다. 이런 시집은 본 적이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 광고카피에나 어울릴 법한 수식어를 붙인다. "김정환 시집 19980~1999"(이하 시집)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 김정환은 다작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비유로 표현되고는 한다. 하지만 비유는 비유일 뿐, 시원한 물처럼 장대하게 떨어지는 시의 폭포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의 언어는 서서히 깎이거나 자라서 거대한 풍경이 되는 모래를 닮았다. 씹어 읽을수록 입안이 서걱서걱해진다. 언젠가 바다였다는 사막이나, 언젠가는 늪지였을 산맥처럼 시인과 시는 퇴첩(堆疊)되어 ..
버스 정비공의 시를 희망으로 더듬는다 박노해, 『노동의 새벽』 글· 서효인 시인/humanlover@naver.com 어느덧 서점에서 박노해의 첫 시집을 구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알아본 정보로는 영등포에 있는 거대 쇼핑몰 안, 대형서점에 단 한 권이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한국현대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시집 자체가 ‘몸의 전위’였던 책을 구하기 위해, 휘황찬란한 쇼핑몰까지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의외로 명료하다. 동네서점이 몽땅 망했기 때문이다. 영등포의 쇼핑몰은 거대한 괴물의 입 같았다. 원을 중심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인파는 혼곤했다. 백화점과 쇼핑몰 근처에서는 사창가의 여성들이 매달아 놓은 현수막이 반쯤 찢어진 채 비를 맞고 있었다..
4월의 시인, 혁명의시인_신동엽 글·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세계 곳곳은 지금 혁명의 바람이 거세다. 오랜 독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자국민을 억압한 독재자들은 이제야 그 말로를 맞이하거나, 성난 민중에게 끝내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과 독재자의 싸움은 언제고 시민의 승리로 마감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어떤 죽음과 고통도 헛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지금 이곳과는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민주화의 바람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헛되지 않기 위해 가야할 길을 우리가 겪어왔기 때문이다. 헛되지 않은 혁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의 정신이다. 쇠붙이로 행해지는 권력의 폭력에 큰소리로 저항하는 것이 바로 혁명의 진짜 정신이다. 그리고 이 진짜 혁명의 정..
묵공 - A Battle or Wits 글·김봉석 영화평론가/lotusidnaver.com 기원전 5세기의 중국은 많은 소국이 힘을 겨루는 춘추전국시대였다. 나라의 힘이 강해지면 어김없이 약한 이웃 나라를 침공 했고 힘이 약해지면 반대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야 하는 약육강식의 시대. 하루아침에 나라를 잃은 왕의 신세도 비참했겠지 만 가장 힘든 것은 백성이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에는 병사나 짐꾼 등으로 전쟁터에 나가야만 했고 침략을 받을 때에는 무 참하게 학살당해야 했다. 원하지 않은 혼란과 고통은 진나라가 통일을 할 때까지 반복 되었다. 하지만 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백성들의 고난은 여전하다. 다시 진나라의 폭정에 시달려야만 했으니까. 강자만이 살아남았던 춘추전국 시대에 는 백성들에게 공자나 노자..
모든 시작은 한편의 시(詩)였다_ 양성우, 글·김장환 북세미나닷컴 이사/myth67bookseminar.com 1987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굳이 서울이 아닌 춘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려 했던 건 장학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하고도 모자라 1986년 10월 말, 대학 입시를 한 달도 채 안 남겨둔 시점에 건 대항쟁으로 입건된 누나와 무기력하고도 무능력해 보였던 부모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던 탓이 더 컸다. 1987년의 춘천은 여느 지방 도시처럼 고즈넉했다. 새벽이면 물안개가 몰려와 도시 전체를 장악하고, 아침 8시에도 가게문을 열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누나가 그렇게 부정하려 했던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정권이야 어찌 되었건 부모님 세대가 이루지..
굿 셰퍼드 - The Good Shepherd 글·김봉석 영화평론가/lotusidnaver.com 얼마 전 국정원 요원들이 인도네시아 사절단의 숙소에 침입해서 정보를 빼내려다가 들킨 사건이 있었다. 흥신소 직원들도 하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하고 결국은 국가 망신으로 전락했다. 정보기관은 일종의 필요악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정보기관은 있다. 한국에는 국가정보원, 미국은 CIA와 NSA, 영국은 MI6, 이스라엘은 모사드 등등. 정보기관의 목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대외 비밀공작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스파이, 즉 첩보원도양성한다. 전 세계에 파견된 첩보원들은 자국 이익이 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쟁국이나 적대적인..
크래쉬 crash - 탐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던지는 경고 글·김봉석 영화평론가/lotusidnaver.com 2010년 연말, 1박 2일에서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기획을 마련했다. 한국에 온지 겨우 6개 월인 이도 있었고, 훌쩍 10년을 넘기고 한국인과 결혼한 이도 있었다. 강원도로 여행을 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은 고향에 두고 온 정든 가족들과 의 만남이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가난했던 60년대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혹은 70, 80년대 원양어선이나 중동 으로 일하러 나간 아버지들을 떠올리기도하고. 그런 정서적 동질감도 좋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찾아온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음을 갖는 것.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