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화 속 시대 읽기 (121)
함께쓰는 민주주의
시인이 남긴 아름다운 여백_고정희 시인 글·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리산은 3개 도, 5개 군에 걸쳐 광대하게 자리한 산이다. 지리산은 모성의 산이다. 그 넉넉한 품은 어릴 적 고이 안겼던 어머니의 가슴팍과 같다. 또한 푸르고 당당한 산세는 늘 정직하게 살아왔던 이 땅 모든 어머니의 삶을 닮았기도 하다. 지리산은 실제 외침에 맞서고 쫓기던 수많은 의병과 민초들의 숨을 곳이 되어주었다. 지리산은 해방공간에서 달랐던 사상으로 인해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했던 시대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남도, 아니 한반도의 고난을 조용한 비탄으로 바라보았던 산, 지리산. 이 산의 여성성을 알아보고 어루만지고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이 있다. 글에서, 시인의 죽음을 먼..
태안사의 아름다운 곰_국토의 시인 조태일 글·서효인 humanlovernaver.com 때 아닌 역병이 돌고 있다. 병에 시름할 시간도 없이‘우리의 땅’에 그들은 묻히고 있다. 이른바 구제역이라 불리는 가축의 전염병은 그 병의 진원지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염이 의심되는 가축은 무자비하게 살처분되고 있다. 1월 중순인 현재 200만 마리의 돼지와 소가 매장되었고, 남도에서는 AI로 인 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닭과 오리가 땅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깊게 판 땅에 한때 농민과 고락을 함께하던 가축을 한꺼번에 밀어 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그 위로 흙을 덮어버린다. 이 잔혹한 처분이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그 와중에 사라져가는 생명 의 존엄성에 대해서 우..
글·서효인 humanlover@naver.com김수영을 읽는다는 것 어떤 시인은 시대를 대표하기도 한다. 보들레르는 자본이 잠식하기 시작한 파리의 뒷골목을 상징하고,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 혁명과 그 속의 민중, 그 자체이다. 우리에게도 한 시대를 혁명처럼 살아간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를 쓰고 책을 읽었으며, 번역을 하고 술을 마셨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왔으며, 양계업으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온몸으로 시를 썼다. 그에게 창작이란 자유와 다른 말이 아니었다. 김수영의 시는 당대의 상처를 찢고 핥았다. 그리고 시대의 쓰라림을 제 속에 취하도록 들이부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시대와 시라는 키워드는 다음의 언명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1960년 4월 19일 그리고 김수영. 김수영을 읽는 것은..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사회적 약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져야만 겨우 사회에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세상이라는 점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는 폭압적 정치체제가 그 목소리를 막고 있어서 그랬다고 치자. 지금은 뭔가. 그들의 절규를 외면하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죽음이란 사회나 역사 같은 사회과학적 용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느낌을 담은 단어이다.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볼 수도 만질 수도 기억할 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말하고 웃지 못한다. 내가 사라진 후의 세상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역사가 진전한들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 내 존재가..
황산벌 몇 해 전부터 史劇이 TV 드라마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시초가 된 것이 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이전의 사극이 장년층을 주 대상으로 했다면 이후의 사극은 국민적인 드라마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영향 탓인지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극을 만날 수가 있더군요. 사극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대적 배경만이 과거일 뿐 스토리 자체는 완전히 허구인 경우, 또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극을 만든 경우입니다. 요즘 영화로 비교하자면 전자는 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이 부딪치는 문제, 고증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사극이 흔히 부딪치는 문제는 고증의 문제입니다. 전자의 작품인 경우 대부분 복식 등 외형적..
‘하나’라는 말은 두렵다. 그 ‘하나’에 속하지 않은 입장에서, 혹은 속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 말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모든 것이 뭉뚱그려져서 ‘하나’가 되면 좋겠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그런가. 살림이 복잡해지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더 여기저기서 자기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럴수록 세상엔 대립이 많아지고 소외되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하나’라는 말을 아주 쉽게 사용한다. 민족은 민족대로,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통일에서도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여긴다.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것을 ‘하나’로 만들려니 폭력이 발생하고 억지가 생긴다. ‘하나’가 아니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법석을 떨지만 ‘하..
전태일의 분신은 1970년대가 어떤 시대일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드라이브에 휘말려 무작정 상경했던 이농민들은 대도시의 노동자가 되었고, 1970년대는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노동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기 이전 민중가요의 태반은 대학생층의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노래문화를 가꿀 문화적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대학은 어떤 노래를 불러도 크게 위험하지 않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노동현장의 민중가요는, 민주노조의 역량이 갖추어지고 집단력과 투쟁의지가 높은 곳에서부터 만들어..
“어쩌다보니”라고. 시대의 가파른 벼랑에서 벗어나본 일 없는 소설가 송기원은 늘 이렇게 말한다. 그는 또 자신처럼 ‘어쩌다’ 운동하게 되었고, ‘어쩌다’ 감옥에 가게 된 그런 이들을 좋아한다. 처음엔 그 말이 그저 심각한 좌중의 분위기를 바꿔놓으려는 심사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어쩌다보니”라는 말에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가 있었다. 아니, 이제 그 시대를 지나왔으므로 과거를 먹고 살지 않겠다는 진중한 제스처가 있었다. 또 그 말에는 ‘누구든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이라는 민중성이 녹아 있었다. 세상을 읽는 눈은 꼭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순간의 깨달음이나 본성적 행동양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시대와의 불화 또한 그랬다. 70년대의 전태일..
바그다드 카페 두 여자가 있습니다. 아주 상반된 성격에 상반된 환경에서 살아온. 그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바그다드 카페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미국으로 여행온 독일인 부부가 있습니다. 무척 권위적으로 보이는 남편, 자못 순종적으로 보이는 아내, 남편은 연신 시가를 피워대고 차안에는 행진가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남편은 사사건건 화를 내고, 참다못한 아내는 결국 여행용 가방 하나만을 지닌채 차에서 내립니다. 그녀의 이름은 쟈스민. 영화 (퍼시 애들론, 1988)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Calling you'를 배경음악으로 정처없이 걸어가는 사막의 고속도로, 트럭 한 대가 호의를 보이지만 그녀는 두려운 표정으로 거절합니다. 고속도로변에 ‘바그다드 카페’라는 이름의 허름한 모텔이 있습니..
박정희의 노래들, 과 10월 유신이 벌써 31년 전의 일이지만 내 세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1973년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197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6년 동안 오직 유신헌법만 배웠고, 체력장의 던지기 종목을 공이 아니라 모조리 수류탄으로 사용했으며, 여학생에게도 사격을 권장한다는 정책에 따라 칼빈 소총으로 사격을 배웠던 세대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는 , , ,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앞의 두 곡은 박정희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거의 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하면 먼저 가 나오고, 과 가 뒤이어 나오고 나서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노래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박정희 박정희야말로 우리나라 대통령 중 노래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