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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영화 속 시대읽기

황산벌

기념사업회 2003. 12. 1. 17:16

  황산벌


  몇 해 전부터 史劇이 TV 드라마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시초가 된 것이 <용의 눈물>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용의 눈물> 이전의 사극이 장년층을 주 대상으로 했다면 <용의 눈물> 이후의 사극은 국민적인 드라마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영향 탓인지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극을 만날 수가 있더군요. 사극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대적 배경만이 과거일 뿐 스토리 자체는 완전히 허구인 경우, 또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극을 만든 경우입니다. 요즘 영화로 비교하자면 전자는 <스캔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황산벌>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이 부딪치는 문제, 고증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사극이 흔히 부딪치는 문제는 고증의 문제입니다. 전자의 작품인 경우 대부분 복식 등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게 되는데,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문헌으로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주제가 되다보니 상업적 작품이 추구하는 상업적 재미와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의 죽음이었습니다. 분명 삼국사기에 궁예는 왕건에게 패하여 도망 다녔는데 음식을 훔쳐 먹다 들켜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드라마 <왕건>에서는 떳떳하고 멋진 모습의 죽음으로 묘사됐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논란이 뒤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를 필두로 해서 다양한 얘기가 나왔는데 이런 종류의 논쟁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른바 ‘전가의 보도’는 ‘식민사관’입니다. 일종의 정치적 매도인데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숨이 콱 막힐 수밖에요.
  어쨌든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의 죽음을 두고 모 선배역사학자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궁예가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 것이야말로 궁예다운 죽음일 수 있었다고. 한 때 영웅이었던 궁예였기에 그만큼 컸던 백성들의 실망감이 그를 돌로 죽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어찌 보면 해석의 차이일 수 있지만 문제는 해석의 차이를 떠나서 그 드라마를 본 상당수의 사람이 궁예가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죽었다고 믿게 된 데 있습니다. 문헌적인 기록상의 진실은 사라지고 제작자에 의해 조작된 혹은 윤색된 기억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작자들은 여기에 대해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모 인터넷 서비스 ‘지*IN'에서 궁예를 한 번 쳐보시길)
  이것은 딜레마입니다. 그렇다고 역사학자가 제작자들에게 기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창작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결국 여기에 대한 책임은 본의 아니게 역사학자들에게 떨어집니다. 제작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사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역사학자들 혹은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식민사관’이라는 모욕까지 감수하며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그나마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과정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공유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요.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사극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관람한 영화 <황산벌>은 독특한 형태의 사극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평소 생각으로 재단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황산벌 전투를 배경으로 온갖 사투리와 욕이 난무하는 역사극을 코미디 프로가 아니라 영화로 보는 경험은 분명 희한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양측 병사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욕으로 공방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 중 하나입니다. 오랜만에 실컷 웃을 수 있었습니다. 한  군데 스포일러 짓을 하자면 특히 이름 없는 병사 ‘거시기’가 자기편 자랑을 하기 위해 과장을 섞어 “우리는 한 끼 식사에 반찬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말하자 오히려 같은 편 병사들이 황당한 듯 쳐다보며 “야이 씨*넘아”를 외칠 때는 전쟁터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병사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저렇게 간단한 말로 담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참을 감탄하며 웃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섞여 있어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는 아닙니다. 지금의 현실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른바 ‘뻐꾸기’들이 돌아다니며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온갖 악성 유언비어를 퍼트리기, 외세 당나라에 휘둘리는 신라왕, 백제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당나라 황제 등 현실을 생각게 하는 많은 얘기가 영화 속에 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코미디로 풍자한 전쟁의 참혹함 혹은 진실 또한 눈여겨 볼만할 것입니다. 전쟁 자체엔 이데올로기가 없습니다. 누가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 혹은 옳고 그름으로 전쟁의 승패가 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전쟁에선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뿐입니다. 그게 전쟁의 진실일 것입니다. 전쟁에서 누가 더 잔인했느냐를 따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겠죠.
  영화에서는 화랑 관창의 죽음을 희생양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럴듯한 해석이더군요. 정말 진실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세심한 곳에도 제법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화랑이 곱게 화장한 장면을 보고 속으로 ‘오호’했습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써서 고증할 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영화의 말미 드디어 전쟁은 참혹하게 막을 내리고 승리는 신라의 것입니다. 백제군의 유일한 생존자 ‘거시기’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살아 돌아온 ‘거시기’를 부둥켜안고 “내새끼 거시기”를 외치는 어머님을 보며, 자신의 가족마저 죽이고 결사의 각오로 전쟁터에 나선 계백이 ‘거시기’를 집으로 돌려보낸 이유가 아마 자기가 진정 살리고 싶어 했던 것을 남겨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산벌>은 역사적 사실과 해석, 현실에 대한 비유가 교차하는 영화입니다.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보다는 새로운 해석과 현실에 대한 대입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감독의 의도는 일단 외형적으론 성공인 듯 보입니다만 사실 인터넷상에서 관람객들의 평가는 분분합니다.
  그래도 제일 좋은 것은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글_김덕영
1965년 서울 출생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외대, 상명대, 중앙대 등에서 영상역사학 및 영상 아카이브 관련 강의를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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