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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시대 읽기] 영화에 빚진 현실-영화 <카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4. 11. 19. 00:36

영화에 빚진 현실-영화 <카트>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말하다


글 김남희(knh08@kdemo.or.kr) 



“손님에게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죠. 힘들고 긴 싸움을 버티는 이유는 단 하나에요. 인간답게 일하고 싶어요.”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 진짜 나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존재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 때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잘 되면 나도 잘 될 줄 알았는데…. 우리가 말을 안 하고 묵묵히 일만 하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로 알았던 거예요. 모여서 이렇게 소리를 내야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총 823만 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이 중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정규직 노동자 수를 넘어선 상태이며 특히 여성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 연령층에 분포되어 있다. OECD 국가 중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초단기 근속의 나라 대한민국은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 다룬 영화 <카트>가 지난 13일 개봉했다. 영화는 노동조합의 ‘노’자도 모르고, 파업의 ‘파’자도 모르던 가정주부들이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파업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인물을 빼고 줄거리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노동 영화인데 다양한 인물이 곁들여지면서 가족 영화이자 휴먼 드라마가 됐다.


설명적이고 어려운 화법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할 드라마를 위해 수학 여행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을 둔 엄마 ‘선희’(염정아)와 아이의 어린이 집 시간에 맞추어 매일 칼퇴근을 할 수밖에 없는 ‘혜미’(문정희), 능글맞게 청소원 아주머니들과 농담을 주고받지만 업무의 일환으로 그들을 해고시켜야 하는 입장이 되는 ‘동준’(김강준) 등의 인물들이 탄생했다. 



대한민국 대표 마트인 ‘더 마트’의 직원들은 고객 만족 서비스를 실천하기 위해 온갖 컴플레인과 잔소리에도 언제나 꿋꿋이 웃는 얼굴로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규직 전환을 눈 앞에 둔 선희를 비롯, 싱글맘 혜미,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88만원 세대 미진(천우희)은 하루아침에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게 된다. 


파업과 투쟁의 장면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진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극적인 재미도 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연대해 개최하는 촛불문화제 장면에 참여했던 실제 노동계와 시민단체 소속의 300여명의 투혼이 빛난다. 마지막의 물대포 진압 장면은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온 몸으로 물대포를 맞는데, 영상미도 뛰어나다. 



영화의 영상미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오산에 위치한 700평 규모의 물류창고를 탈바꿈 시킨 대형마트 세트장이다. 이 세트는 갑과 을의 상반된 공간 구분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갑이 지배하는 공간과 을이 생활하는 공간의 색감, 조명, 소품의 배치를 다르게 적용하여 연출한 것이다. 먼저, 마트 매장과 사무실은 깔끔하고 쾌적하며 블루 색상을 주로 활용해 차가운 느낌을 전달했고, 조명 또한 형광등을 마트 끝까지 줄을 맞춰 달아 매장 안의 창백한 분위기와 계산원들의 반복적인 업무를 비유했다. 반면, 휴게실, 탈의실 등은  사전조사를 거쳐 실제 마트의 계산원, 청소원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그대로 표현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다달이 집세를 내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평범한 많은 이들에게,  일터는 팍팍하지만 놓을 수 없는 희망일 것이다. 그 희망이 ‘비정규직’이라는 허술한 안전망으로 인해 무너지는 순간, 삶은 너무나 쉽게 절망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들이 부당한 현실에 눈을 뜨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공이 된다. 믿었던 세상을 잃지만, 동료를 얻고, 가족을 발견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 [둘러보기] ‘개념 있는’ 영화를 탄생시킨 사람들


영화 <카트>는 유난히 힘들게 제작된 영화다. 극화된 이야기 안에 노동 현실의 문제들을 

사실감 있게 담아내야 하는 기획 단계도 고민이 컸겠지만, 무엇보다 투자 유치가 어려워 부족한 예산을 운용해야 하는 고충이 컸다는 후문이다. 제작자들은 그런 와중에도 노동을 억압하는 자본의 힘을 보여줄 규모 있는 대형마트 세트를 만드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면면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영화는 명필름에서 만들어졌다. 명필림의 공동대표인 심재명과 이은은 부부다. 이은은 1990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를 다룬 <파업전야>라는 장편영화를 감독했다. 영화사 홍보 담당으로 활약했던 심재명은 1992년 영화홍보사 명기획을 설립한다. 이후 심재명과 이은은 1994년에 결혼하고 1995년 명필름을 설립했으며 1996년 창립작 <코르셋>을 선보였다. 이후 1997년 <접속>을 필두로, <해피엔드>(1999년),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2008년), <건축학개론>(2012년)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기존 국내 영화들이 다루지 않던 사회성 짙은 소재로 성공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낸 명필름의 저력은 영화 ‘운동’을 하던 이은과 상업영화 ‘기획’을 하던 심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상업영화계에서는 신예에 가까웠던 부지영 감독의 활약도 돋보인다. 부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부산국제영화제, 까를로바리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도쿄국제여성영화제 등에 초청되었고, 2009년 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연출/시나리오 부문상‘을 수상하며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 <시선 너머>의 ‘니마’와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프로젝트 <애정만세> 중 ‘산정호수의 맛’을 연출했고, 다큐멘터리 <나나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의 총연출을 맡았다. 여성과 노동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였던 만큼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카트>를 통해서도 그간 쌓아왔던 연출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배급을 맡은 리틀빅픽처스도 주목할 만하다. 리틀빅픽처스는 2013년 10월 한국영화 산업의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고 공정한 영화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설립된 배급사다. 영화제작사 리얼라이즈픽처스, 명필름, 삼거리픽쳐스, 영화사청어람, 외유내강, 주피터필름, 케이퍼필름(가나다 순) 그리고 씨네21, 더컨텐츠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총 10개 회사가 주주로 참여했다. 제작사의 창작성과 권리를 존중하고 보다 합리적인 계약과 공정한 수익분배를 위해 노력하여 건강한 영화 시장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화 <카트>에는 또 하나의 숨은 조력자들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들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를 위해 금융기관 없이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불특정다수(Crowd)가 온라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활동이다. 바자회와 두레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이번 크라우드 펀딩에는 5천여 명의 후원자들이 참여해, 약 2억원 이상을 모금했다고 한다. 

 



▲ [깊게 보기] 한국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2014년 기준)


영화를 통해 엿봤던 우리사회 비정규직의 현주소에 대한 실증 자료들을 정리해 봤다. 


   *규모 및 비율

  비정규직 : 823만 명(임금노동자의 44.7%), 정규직: 1,017만명(55%)

 

   *성별

  ☞ 남자 : 정규직 663만명 (63.5%) > 비정규직 380만명 (36.5%) 

  ☞ 여자 : 정규직 354만명 (44.4%) < 비정규직 443만명 (55.6%) 

 

   *연령

  ☞ 남자 : 저연령층(20대 초반 이하)과 고령층(60세 이상)만 비정규직 > 정규직

  ☞ 여자 : 20대 후반과 30대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음. 

 

   *학력

  ☞ 비정규직(823만명) 중에 고졸 이하 학력 70.4% 

 

   *임금

  2013년 3월, 2014년 3월의 지난 3개월 월 평균임금 총액 비교

  ☞ 정규직: 283만 원 ⇒ 289만 원, *6만 원(2.2%) 인상

  ☞ 비정규직: 140만 원 ⇒ 143만 원, *3만 원(1.6%) 인상

 

   *저임금계층과 임금불평등

  ☞ 저임금계층: 25.0%, OECD 국가 중 가장 많음.

  ☞ 임금불평등: 상위10%와 하위10% 임금격차 5.0배

  ☞ 시급제 노동자: 법정 최저임금(5,210원) 미달자 15만 명(14.1%)

                          시급이 최저임금인 사람 27만 명(25.7%)

                          최저임금보다는 많지만 5,500원 이하인 사람이 17만 명(16.5%). 

 

   *고용불안

  ☞ OECD 국가 중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초단기근속의 나라. 고용불안 극심.

  ☞ 근속년수 평균값은 5.6년이고 중위값은 2.5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짧음. 

  ☞ 단기근속자(근속년수 1년 미만) 전체 노동자의 31.3%, 장기근속자(근속년수 10년 이상)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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