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화 속 시대 읽기 (121)
함께쓰는 민주주의
평범한(?) 사람들의 지구 지키기 * 지구방위기업 다이가드(1999, 미즈시마 세이지, XEBEC) 평범하기로 치면 봉급쟁이만한 것이 있을까요. 한 푼의 세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유리봉투 월급에 부양가족까지 있게 되면 돈을 버는 목적이 가족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돼버립니다. 끼리끼리 모이면 직장상사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 아카키 슌수케는 ‘21C’라는 보안회사 홍보과 소속의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어떤 날은 회사 전단지도 돌리고, 어느 날은 회사 캐릭터 인형 옷을 뒤집어쓰고 애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가 남다른 점이 있다면 홍보과 소속 거대로봇 다이가드의 조종사라는 것 뿐 입니다. 그나마 다이가드는 전투 목적이 아니라 홍보용으로 제작돼 여기..
“오금 박힌 무릎으로 짚어간 어둠” - 시인 박정만이 부른 井邑別詞 신동호(시인) 삶과 죽음은 공존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삶이라는 바지 주머니에 죽음을 넣고 만지작거리며 다닌다. 아니, 죽음이라는 머나먼 길을 걷다가 두리번거리며 삶이라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릴 뿐이다. 다만 이것을 달의 뒤편처럼 끝내 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그러나 그림자를 이끌며 살 듯 죽음을 달고 다니는 이들이 없지 않다. 일생을 두고 삶과 죽음의 화두를 쫓는 이들도 있으나 본의 아니게 찰나의 깨달음으로 다가가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하는 이들 또한 늘 존재한다. 위험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미래를 보는 일은 고통의 연속일는지 모른다. 만일 과거도 미래도 망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어느 시대 어느 노래에서나 단골 메뉴이다. 민중가요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노래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때 더욱 사무친다.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져 도시로 올라온 노동자들이, 명절 전날 선물 보따리를 들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모습, 그나마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잔업을 하는 그 모습, 이것이 우리 노동자들의 명절 풍경이다. 1980년대 초반 돌 작사․작곡의 는 추석 휴가 직전의 들뜬 느낌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일이면 집으로 간다 오늘만 넘기면 집으로 간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은, 단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왜 하필 제목이 ‘오늘만 넘기면’이겠는가. 고향집은, 서울에서의 힘든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 고통스러운 삶으로 빠져들기 이..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은, 많은 노래를 남기기도 했지만 또 많은 노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어떤 노래는 남쪽에만 남고 또 어떤 노래는 북쪽에만 남았으며, 또 어떤 노래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불려지지 못한 채 오랫동안 파묻혀 있거나 사라졌다. 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공개적으로 불려지지 못한 노래이다. 이 난에서 여태까지 소개한 노래는 주로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속에서 불려졌던 노래인데, 은 거기에서도 소외되어 있던 노래였다. 남과 북에서 공개적으로 불려지지 못해 이 노래를 기억하고 불러온 사람들은 1960,70년대 학생운동 출신자가 아닌, 전라남도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빨치산들이 불렀던 노래였던 까닭에 학생운동권에 마음 놓고 유포할 수 없었던 노래였고, 또 선율이나 가사에서 독특한 사회..
대중가요권에서도 히트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민중가요권에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히트곡이 나온다.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때 갑자기 부상한 인기곡 도 그러하다. 지난 달 6월시민항쟁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노래를 필요로 했지만, 창작자들이 그렇게 빠르게 새로운 경향의 노래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대투쟁이라는 경험이 노래화되어 신작(新作)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가을 와 부터였으니, 결국 1987년 여름부터 무려 1년 동안이나 노래의 수요공급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었던 셈이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상황에서, 그 이전의 노래 몇 곡이 새롭게 조명되어 인기곡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 를 로 개사한 ..
슈팅 라이크 베컴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건강한 영화, 어른들이 함께 보아도 즐거운 영화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세대간 틈이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현실이니까. 여기에다 교육과 재미까지 겸비해야 한다니, 이보다 어려운 과제가 없겠다. 서울 YMCA 산하 ‘건전 비디오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에서 분기별로 선정하는 ‘청소년을 위한 좋은 비디오’가 그나마 객관적으로 권할 수 있는 작품 목록이 될 것 같다. 선정 작품들은 책자를 만들어 각급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 배포하고, 또 작품 판매전도 열고 있다. 10여 년 넘게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학교나 단체의 시청각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어떤 작품을 권해야할지, 어디서..
실버 코미디 모든 세대와 계층이 소외감과 박탈감을 하소연한다. 어린이들은 과외에 시달리느라 유년기를 반납했다하고,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장애인은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시위하며, 노동자는 임금과 처우 개선을 부르짖고, 여성은 일과 가사 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한다. 동성애자는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명퇴자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고 한다. 직능과 나이별로 뭉쳐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실버 세대도 빠질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에 했던 말로 기억한다. “모두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수십 년 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잘 견디어 왔습니다” 정말 그렇다. 모두들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
과 이영미 벌써 6월항쟁이 16년 전 일이 되었다. 넥타이부대와 함께 한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는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큰 사건들은 늘 예상치 않게 터져 나오기 때문에 그 상황에 꼭 맞는 새 노래가 나올 수가 없다. 새로운 노래를 창작자들이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설사 새 노래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새 노래가 갑작스레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불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월항쟁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학생들은 그냥 이었고 시민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이나 정도였던 것 같다. 이나 두 곡 모두 축축 처지는 노래여서 함께 부를 만한 힘찬 행진곡 한 편이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사실 그 시기에 시민과 함께 할 가능성이 ..
영화로 보는 세상 : ‘우울한 시절’에 이런 영화 한편을… 비관하지 않고 평화와 희망을 노래한다 곽 영진(영화평론가) 이라크사태 이후 시리아, 북한 등지로 확전의 불길이 옮겨 붙을까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전 세계 반전의 물결이 지속되는 요즘. 미국의 장편 기록영화 의 한국 개봉은 폭력을 혐오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영화 팬들에게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은 지난 달 본 지면에 서술한 바바라 트렌트의 처럼 그 자체로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총기나 무기의 파괴성, 반사회성을 고발한 일종의 반전영화다. 지난 3월 23일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장에서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란 거친 멘트로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수상소감을 대신하며 전 세계에 선풍을 일으킨 마이클 무어 감독.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대..
촛불시위, 반전평화운동 그리고 반전반핵가 이영미 지난 겨울 촛불시위부터 시작하여 이라크전쟁 반대의 반전평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반미 열기는 놀라울 정도이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반미’란 매우 낯설고 섬뜩한 구호로 여겨졌다. 공산군을 막아준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곧 용공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반미적 색채의 단편 를 쓴 작가 남정현이 반공법으로 처벌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반미란 단어 자체는 우리에게 그다지 좋은 어감을 주지는 못한다. 촛불시위의 수많은 대중들은 실제로 반미를 외치고 있으면서도(그 반미의 수준이 ‘미국은 사고에 대해 공정하게 처리하라’ 정도에서부터 ‘미군 철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할지라도 어쨌든 반미는 반미였다), 언론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