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동지 본문
대중가요권에서도 히트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민중가요권에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히트곡이 나온다.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때 갑자기 부상한 인기곡 <동지>도 그러하다. 지난 달 6월시민항쟁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노래를 필요로 했지만, 창작자들이 그렇게 빠르게 새로운 경향의 노래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대투쟁이라는 경험이 노래화되어 신작(新作)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가을 <파업가>와 <노동조합가>부터였으니, 결국 1987년 여름부터 무려 1년 동안이나 노래의 수요공급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었던 셈이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상황에서, 그 이전의 노래 몇 곡이 새롭게 조명되어 인기곡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 <늙은 군인의 노래>를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 개사한 것과 <동지>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인기곡
이미 1980년대 민중가요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노동자에게까지 인기를 얻은 것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고,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이 불러 합법음반으로까지 나온 <늙은 군인의 노래>도 합법적으로 유통되면서 확보된 대중성이 있었으므로 인기를 얻을 법했다. 가장 예측하기 힘들었던 노래가 바로 <동지>였다. 1987년 초에 노래모임 새벽에서 노래테이프 11집을 내놓을 때 이 곡을 제창으로 불러 실었으나 그때만 해도 이 노래가 몇 달 뒤 그렇게 높은 인기를 구가할 줄은 전혀 몰랐다. 도대체 이 노래는 어떤 이유에서 인기 급부상의 영광을 얻었을까?
‘행진곡이 필요했으니까’ 혹은 ‘행진곡이면서도 비장미가 있으니까’라는 설명은 이유로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왜냐하면 1980년대 초중반 민중가요에는 종류의 수많은 행진곡이 있었고, 그 중 태반은 단조의 비장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예컨대 <전진가>, <선봉에 서서>, <전진하는 새벽>, <선봉에서>, <민족해방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인기곡들을 제치고 하필 1986년 말 1987년 초 즈음에 유행하기 시작한 <동지>가 선택되었단 말인가?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노동자대투쟁은 일부의 선진적 노동자가 아닌 그야말로 노동자 대중들이 투쟁의 주체로 서게 된 사건이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노동운동의 동지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친구’가 아닌 ‘동지’란 새로운 말은 자신의 달라진 삶과 인간관계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 저린 ‘동지’
이름만으로도 가슴 저린 ‘동지’
둘째, 이 노래는 동지애를 노래한 당시 몇 안 되는 작품으로 매우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운동이념이나 조직의 진로 등에 대한 고민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던 그 즈음에, 이들을 묶어주는 가장 중요한 생각은 바로 동지애였고, 또한 격렬한 시위와 경찰․구사대 등과의 무력적 충돌이 늘 벌어지는 때에 이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동지애였다.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 노래가 가장 빛을 발할 때에는 가두투쟁에서 전경이 막 진격을 해 올 때라는 것이다. 착착 발소리를 내며 진압을 시작하는 전경을 볼 때 순간 겁이 더럭 나고 도망갈까 말까 망설임이 생길 때 이 노래는 시위대에게 비장한 단결의 결의를 하게 만들면서 자신보다 옆의 ‘동지’를 배려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고 술회했다.
셋째, 이 시기의 다른 행진곡들이 1980년대 초중반 학생운동의 감수성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 노래는 조금 다른 느낌의 노래였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선봉 혹은 전위에 서 있는 선각자라는 태도로 운동에 접근하게 되고 그래서 역사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선봉에 서서>, <전진하는 새벽>, <선봉에서> 같은 노래는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1987년 이후에는 운동이 대중화되었고, 싸움을 선봉에 선 소수가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 모두가 하는 것이 되었다.
대중투쟁의 중심에 선 노래
<동지>는 이러한 대중투쟁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흥미롭게도 1980년대 초중반 노래 중 선진활동가 감수성이 아니라 대중투쟁의 감수성을 지닌 노래들은 광주․전남지역에서 나온 작품이 많다. 광주는 일찌감치 1980년에 대중투쟁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 ‘동지’도 광주․전남지역에서부터 유포된 노래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이후 이 노래는 계층과 시대를 뛰어넘어 광범위하게 불리는 민중가요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렇게 노래에 역사가 쌓이자, 1990년대 초반, 노래패 꽃다지에서는 그간 이 노래 속에 쌓인 감회를 포함시켜 규모가 큰 합창곡으로 편곡․변주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글_이영미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2003년 07월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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