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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노래는 멀리멀리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28. 09:30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글 이은진 신나는문화학교 대표/ jini0501@gmail.com



87년 6월민주항쟁과, 87~88년 노동자 투쟁을 거치면서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과 '새벽'뿐 아니라 지역별로 민중문화운동 단체들과 전문노래단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만큼 활동의 공간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대중적 요구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지역의 노래운동 집단은 주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을 하면서 각기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산에서 창작된 <고백>(고승하 곡)과 <들어나봤나>(김봉철 곡), 안양 ‘새힘’에서 창작된 <달동네의 부푼 꿈>,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그리움>(이상 이건 곡) 등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또, 광주 노래패 '친구'와 ‘우리소리연구회’는 드물게 민요를 적극적으로 계승하면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었지요. 정세현과 박문옥, 김원중, 박종화 등 여러 창작자들을 배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전진가>, <반전 반핵가>, <내사랑 한반도> 등의 작곡가인 박치음을 비롯하여 지역의 창작자들이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몇몇 곡은 꽤 인기곡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노동자를 대상으로 활동 하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연합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된 ‘노래마을’도 있었습니다. ‘노래마을’은 대중가요 작곡가 출신인 백창우를 중심으로 84년에 <노래마을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낸 후, 성남에서 소규모로 활동을 하다가, 노찾사의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90년 이후 대중문화 공간으로 진입을 합니다.

초기에 노래마을은 백창우의 창작곡과 어린이들의 노래를 주로 불렀으나 범 민중민주운동 진영으로 진입을 하면서 윤민석의 <백두산>,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등을 레퍼토리로 삼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90년 초반에 민중가요의 인기곡이 된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들과 함께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치열한 현장의 정서가 담겨있진 않지만, 3화음의 안정감과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나름의 호소력과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수 정예의 운영방식이 성과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민중가요 전문 집단들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대학 내 민중가요의 흐름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날이 오면>,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잠들지 않는 남도>등 노래모임 ‘새벽’과, 안치환의 노래가 여전히 인기를 모았으며, ‘노찾사’의 활동을 계기로 대중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80년대에는 대학가에서 인기를 얻고, 검증된 노래들 중 일부가 노동자 조직으로 흘러들어가 불리곤 했는데, 89년부터는 노동가요가 대학가로 역류하는 현상이 벌어져서 대학 민중가요의 최고의 유행곡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가에서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결성된 후, 88년부터 ‘전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이 해마다 열려, 새로운 창작자들이 배출되었고 통일노래를 보급했습니다. 이를 통해 배출된 가수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김영남 씨가 있지요. 바로 그 즈음부터 대학가의 인기 창작자로 윤민석과 박종화가 떠오르는데, 윤민석은 팝발라드 세대의 화려한 선율과 안정된 화성, 격정적이면서도 비장하고, 또 그러면서도 진취적인 노래들을 창작해왔습니다. <반미출정가 1>, <어머니>, <전대협진군가>, <결전가>, <백두산>, <애국의 길>, <전사의 맹세1,2> 등의 놀라운 창작력으로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습니다. 또 박종화는 솔직하고 질박한 가사에서 풍기는 열정적 분위기로 호소력을 발휘하는 <지리산 2>, <바쳐야 한다>, <파랑새>, <투쟁의 한 길로>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까지 다양한 층위의 대중운동이 성장하면서 노래 역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합니다. 이러한 많은 민중가요들은 주로 전국단위의 대규모 집회와 문화 집회라고 불리던 대규모의 연합 공연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투쟁이 고조되던 시기라 행진곡 풍의 투쟁가요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불리긴 했지만 발라드풍의 서정가요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전국의 노래단체들은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약화되었다가 다시 90년대 후반에 들어 활발한 활동을 벌입니다. 물론 현재 노래단체로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개인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요.

이번에 소개할 노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 교사들의 투쟁과 아픔을 그린 김진경의 시에 윤민석이 곡을 붙인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입니다. 김진경은『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의 저자이죠. 윤민석은 자신의 모교인 한양대에서 89년에 있었던 전교조 결성대회에 참석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이 노래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전교조 노래 테이프를 통해 발표를 하였고, 이 후 노래마을 음반에 수록되어 노래마을의 주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으면서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려집니다.

윤민석은 운동진영에서 불리던 수많은 민중가요 뿐 아니라 ‘노래마을’ 출신의 가수 이정열이 부른 <그대 고운 내 사랑>과 같은 대중가요 작곡가로도, 또

, <헌법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 촛불 집회나 대규모 대중 집회에서 비운동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쉽고 재미도 있으면서 세태를 정확히 짚어내는 노래로 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 노래듣기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김진경 시, 윤민석 곡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어서 오게나 고통만이 아름다운 밤에
지금은 우리가 상처로 서로를 확인하는 때
지금은 흐르는 피로 하나 되는 때
벗이여 어서 오게나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
벗이여 어서 오게나 고통에 패인 주름살 그대로
우리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안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서로의 상처에 입 맞추느니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 건너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 음원 출처: 전교조 음반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1989) 중에서
* 우리가 함께 부른 수많은 민중가요를 창작한 작곡가 윤민석 씨가 현재 부인의 투병으로 매우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가 오랜 기간 우리에게 노래로 힘을 준 것처럼 우리도 그에게 힘이 되어줄 때입니다.

| 윤민석의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minseok.yoon.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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