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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이야기] 가난․공동체․생명, 천주교도시빈민회 신만수 씨를 따라간 해남 여름들살이 본문

희망이야기/그곳에 희망이 있다

[공동체 이야기] 가난․공동체․생명, 천주교도시빈민회 신만수 씨를 따라간 해남 여름들살이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28. 09:30

가난․공동체․생명, 천주교도시빈민회 신만수 씨를 따라간 해남 여름들살이

글 정영심 zeromind96@naver.com



가슴 뭉클한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8월 18일 해남에서 ‘천주교 도시빈민회 여름들살이’가 열렸다. 우리 삶 속에 제정구 선생님의 일대기가 늘 부채의식처럼 남아 더불어 잘 살아야함을 독려 할 때, 늘 떠올리는 ‘천주교도시빈민회(천도빈)’. 도시 빈민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정구 선생님의 삶을 다시 한 번 이번 들살이에서 볼 수 있었다.

가난․공동체․생명은 천도빈의 모토다. 들살이에 함께 입고 있던 티셔츠에 집, 밥, 평화(비둘기)가 그려져 있었다. 집, 밥, 평화, 그것은 천도빈이 이 시대에 말하는 절실한 외침으로 보였다.

절실한 천도빈의 외침. 집 밥 평화,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다.



천도빈 여름들살이는 멀고 먼 땅끝 해남에 사는 심강구 회원의 집에서 열렸다. 여름 들살이에 초대해주신 신만수 씨는 현재 천도빈 회장을 맡고 있다. 신만수 회장은 1995년 30대에 도시빈민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빈민 운동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현재도 처음 활동을 시작한 행당동 지역의 지역자활센터에서 일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30대 행당동 천도빈 활동 시절 만난 나인경 씨와 가정을 꾸렸고 1남 1녀를 두었다. 그의 아내 나인경 씨는 천도빈 활동가로 지금도 공부방 활동을 하고 있다.

해남 달마산 아래에서 천도빈 여름들살이가 있었다.



철거와 도시화로 공부방에 모인 아이들이 헤어질 무렵 내뱉는 ‘이모! 함께 살면 안돼요?’라는 말을 끊어내지 못하고 그룹홈으로 사는 회원들도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살다보니 친모녀 같았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관계들이 드러나면서 나는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참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에 많이 미안해졌다. 오래전 내가 만든 공부방에 아이들을 두고 귀농한 경력이 있어 아픈 기억과 미안한 마음이 오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살게 된 어린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들살이에 함께 왔다. 이들이 다시 천도빈의 정신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희망이 보여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했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서 ‘가난․공동체․생명’을 가슴에 새기며 활동한다는 회원들의 얼굴은 환한 아침 햇살과 같았다.

가난 공동체 생명의 정신으로 사는 공동체 ‘천도빈’



들살이에 함께 한 박재천 회원의 짧은 강의가 있었다. 가난․공동체․생명에 대한 회원들 간의 되새김은 처음 듣는 내겐 놀라운 가르침이었다. ‘가난은 형태가 아니라 구조이다. 천도빈은 정신이다.’ 라는 말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진실로 그렇다. 세계적으로 가난과 정치를 분리해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삶 속에서 회원들이 천도빈의 정신으로 가난한 이와 당당하고 검소하게 살겠다는 다짐. 그것이 삶에 녹아 현재를 밝힌다면 더 큰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도빈 회원 중에는 그룹홈으로 시작해 대안의 삶을 모색하고 함께 모여 사는 회원들도 있다고 한다.

생활나눔 시간. 중앙에 손을 들고 있는 신만수 회장이 보인다.



철거촌의 삶을 영상으로 담아 세상에 알리고 그 삶이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삶임을 알렸던 독립영화 <상계동 올림픽>의 김동원 감독도 이번 들살이에 함께 했다. 천도빈의 활동은 이렇게 다양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회원들의 삶의 형태와 사는 곳은 달라도 정신은 하나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황태 해장국에 어젯밤에 먹었던 맛난 닭죽이었다.



현대는 너무도 가난한 이가 많음이 사실이다. 물질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정신적으로 가난한 이가 더욱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신만수 씨는 가난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를 좇아 삶을 가치 있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 방법이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일이라고 했다. 명쾌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이든 현실적이든 검소하고 소박한 삶은 당당함을 주는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들살이 프로그램 중 생활나누기 시간이 있었다. 나눔 중엔 지금 천도빈의 회원이 늘고 있지 않음을 아쉬워하는 회원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너무도 충분한 공동체였다. 공동체 식구들이 늘어날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천도빈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정신적 회원이며 보이지 않는 구성원이다. 천도빈 회원들의 건강한 삶이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는 마중물이 될 테니 말이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가족 사진



들살이를 마치고 헤어질 때, 집까지 내어준 심강구 회원은 자신이 지은 농산물을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이 하나이며 가족임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스했다. 가난한 이와 함께 살아 소박하고 당당한 그들이 있다. 진정 그곳에 희망이 있다. 먼 땅 끝 해남을 다녀왔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마치 시원한 우물이 있는 친정을 다녀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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