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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박물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26. 11:33

우리동네 박물관

글 김태현/ 독립 큐레이터 with_che@hanmail.net





‘우리동네 박물관’은 경북 영천시 가상리 마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역사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1970년대 지어진 낡은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서 개관했습니다.



마을의 귀환과 천 개의 마을

요즘 여기저기에서 ‘마을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박원순 시장은 앞으로 5년간 서울에 ‘이웃과 함께 하는 행복한 마을’ 천 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중순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2012 서울사진축제의 일환으로 ‘천개의 기억, 천개의 마을 – 마을공동체와 사진아카이브’라는 전시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점점 무너져 가는 우리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 우리의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듯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팍팍하고 삭막한 풍경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급격한 근대화 과정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사람들을 도시로 내몰면서 서울은 차츰 비대해져 갔고, 이와 함께 농촌에는 빈집만 늘어났습니다. 서울 산등성이에 판잣집이 들어서는 속도만큼 시골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빠르게 확산되어 갔습니다. 아름답던 난지도는 어느새 냄새나는 쓰레기 산이 되어버렸고, 가족을 이끌고 도시로 떠나버린 이장님 집은 차츰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비슷한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 산과 폐가(廢家)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자리 잡을 틈이 없었습니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마을회관은 그 시간의 흐름만큼 낡고 위험해져서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마을의 대표적인 폐가였습니다. 이곳에 안전진단을 하고 보강기둥을 세운 후 본격적으로 박물관 리모델링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왼쪽 사진은 마을회관 철거 작업 중인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안전 보강기둥 공사와 벽면 도색작업을 마친 후의 모습입니다.



새마을 운동에서 커뮤니티 디자인까지

공동체의 붕괴가 점차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또한 오랫동안 시도되어 왔습니다. 가장 오래된 노력 중의 하나는 아마도 ‘새마을 운동’일지도 모릅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라는 ‘새마을 노래’ 2절 가사가 말하듯이 새마을 운동은 농촌을 사람이 사는 멋진 공간으로 개조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집과 도로의 모양은 바꾸었을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참 펼쳐지던 시기가 ‘유신 헌법’ 아래 자행된 공포정치의 시대와 겹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던 ‘화산동부국민학교’ 1966년 졸업사진. 이 학교는 한 때 학생이 800여명이 다닐 정도로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학교는 분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교가 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사라졌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마을의 중요한 역사 공간입니다. 지금 이곳은 경북 유일의 1종미술관인 ‘시안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주로 ‘도시 미관 사업’ 혹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 등의 이름으로 이러한 노력이 진행되었습니다. 삭막한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던 ‘도시 미관 사업’의 대표적인 사업은 판자촌 철거와 재개발이었습니다. 토건족과 결합해 진행한 이 사업은 깡패들을 동원하여 달동네 사람들의 공동체를 폭력적으로 해체하는 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해체하고 보금자리를 파괴한 후 들어 선 아파트는 그 높이와 규모의 위용만큼이나 서글퍼 보입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난지도 공원’과 ‘선유도 공원’,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청계천’일 겁니다. 일반적으로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슬럼화된 지역에 다시 사람의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시작합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해감에 따라 서서히 몰락해 가고 폐허화 되어 가는 서구의 오래된 공업지대, 영국의 쉐필드 철강산업지대나 스페인의 포블레노우 공업지대 등에서 활발히 진행된 사업입니다. 서울에서는 쓰레기 섬(난지도)과 폐쇄된 정수장(선유도)을 환경 친화적인 공원으로 탈바꿈한 사업이 가장 좋은 예 입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경우 그 일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했고 공사의 과정도 환경친화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가상리 마을에는 약 100여 호의 집들이 있습니다. 이 집들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이 되는데, 1970년대 지어진 낡은 기와집과 요즘 새로 지은 현대적인 집,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입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에서는 마을의 집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장주원



비슷한 시기 농촌에는 ‘마을 가꾸기 사업’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 혹은 ‘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업들은 농촌의 공동화 현상을 막고 무너져 가는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은 부족한 예산과 짧은 사업 기간, 가시적인 결과물을 중시하는 관공서 사업의 관례 등의 이유 때문에 성공한 사례를 만들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관공서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사업 진행은 공동체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주민을 사업에서 소외 시키는 결과를 낳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농촌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순수 미술작품만 남고, ‘커뮤니티 디자인’ 사업이 끝나면 디자인 간판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의 얼굴엔 그 사람이 살아 온 역사가 묻어 있고, 그러한 얼굴들이 모여 지금 우리 역사의 얼굴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상리에는 약 2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과 모습이 가상리의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장주원



소박한 일상이 역사가 된 ‘우리동네 박물관’

오늘 소개할 ‘우리동네 박물관’은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사업이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재원을 마련해 진행한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모두 45개 팀이 참여해서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일대의 시골마을에서 펼쳐진 ‘공공미술사업’입니다. 지금 이 마을에는 ‘우리동네 박물관’ 뿐만 아니라 ‘알록달록 만물상(아트숍)’, ‘바람의 카페(무인 다방)’, ‘빈집 갤러리(건축 작품)’ 등 45개 작품들이 설치되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 오고 있는 시골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에서는 마을 들판 곳곳에 남아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에서 부터 6.25한국전쟁 참전용사 할아버지의 역사 증언뿐만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사납게 짖어대는 진돗개와 부인회장님 댁 옆집 마당에서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 해피와 나비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사진첩은 개인적인 역사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첩 사진들이 모이면 어느 마을의, 어느 도시의, 어느 나라의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에서는 사진첩 사진들을 통해 가상리 마을 사람들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의 가장 왼쪽은 가상리 마을 사람들의 ‘탄생과 성장’을, 가운데 사진은 ‘결혼과 가족 구성’을, 오른쪽 사진은 마을에서 거행된 ‘마지막 전통 장례식’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들입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의 내용은 대부분 마을 주민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전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주민, 삶, 생활’ 공간은 마을 주민들의 사진첩에서 골라 낸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상리에서 벌어 졌던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 학창시절, 결혼, 회갑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사진첩은 마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사료였습니다. 나라의 역사가 기록관이나 역사관에 정리되어 있듯이 개인의 역사는 사진첩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첩은 개인의 삶이 담겨 있는 시각적인 역사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사진첩 사진이 펼쳐지는 맞은편에는 지금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물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 온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가상리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가상리 주민의 인물 사진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팀은 마을 중심에 있는 방앗간 앞에 간이 촬영소를 차려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은 각자 개성 있는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그 모습이 재미있어 마을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방앗간 앞 간이 사진 촬영소는 박물관 기획팀과 마을 주민이 함께 만들어 내는 행복한 퍼포먼스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우리동네 박물관’의 중심 존인 ‘주민, 삶, 생활’ 공간입니다. 왼쪽 벽면엔 마을 주민들의 사진첩으로 구성한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오른쪽 벽면엔 지금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인물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마을 주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자신들의 지난 시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또 흐르고 흐르면 이 인물사진들도 마을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중간 통로에는 마을 주민들이 쓰던 농기구가 마을 역사의 사료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은 마을의 역사 이야기

‘우리동네 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작은 시골마을에 들어 선 생활사 박물관입니다. 이 마을은 집도 100호 정도 밖에 안 되고 마을 주민 인구도 적은 곳입니다. 이곳 주민들의 삶은 아침에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에 오는 소박한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계의 초침을 따라 삶을 이어가는 도시인들과 달리 햇살의 밝기에 맞춰 삶을 살아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왔던 역사는 왕조나 국가 단위의 역사였습니다. 학교 역사 교과서도 고려, 조선과 같은 국가의 왕조 역사를 기술하고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시도 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책에서 배우고 박물관에서 보아 온 역사는 너무 거대한 역사라서 마치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는 무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의 마지막 영역인 ‘산, 들, 그리고 바람’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가상리 마을의 모든 산과 들, 저수지, 꽃, 개와 고양이, 닭, 소와 같은 가축들, 그리고 들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삶이 만들어 온 것입니다. 수많은 개인들의 역사의 총합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온 역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가상리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이 모여 마을 공동체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또 다른 수많은 마을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역사 없이 거대한 우리 역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에서는 기존의 역사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다루지 못해왔던 작은 마을의 소소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일 오후 경로회관에 모여 민화투를 즐기는 할머니들과 하루 네 번 밖에 없는 버스를 툭하면 놓치는 윗마을 아주머니, 두 평 남짓한 작은 담배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 6.25한국전쟁 참전용사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청년회장님 댁의 귀여운 강아지 진풍이, 일성정(日省亭) 옆집의 풍산견, 정미소 앞집의 누렁소, 누렇게 익어 가는 들판의 나락, 마을의 앞산과 뒷산, 그리고 그곳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도 이곳 ‘우리동네 박물관’에서는 모두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이 영상은 ‘가상리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경로회관 노래잔치’, 그리고 ‘6.25참전 할아버지의 역사 증언’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 장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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