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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하얀 가운을 입은 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10. 12:50

하얀 가운을 입은 그

- 영양사 채동근 씨의 이야기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성별에 따른 직업의 구분이 조금씩 무의미해져가는 요즘. 전통적으로 남성, 혹은 여성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곳에서, 그 편견과 의구심에 당당히 맞서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직업을 택하는 젊은이들.

그 중의 한명이 바로 채동근 씨다.



현재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채동근 씨. 그의 직업은 영양사다.

“사람들은 영양사하면 여자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예쁘장하게 생기지도 않은 남자가 영양사 가운을 입고 구내식당에서 일하고 있으니, 처음에는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그리고 취업 과정에서, 학교에 진학할 때도, 그는 언제나 “왜?” 라는 세상의 질문을 받아왔다고 한다.

“어디 가서 영양사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 반응은 대개 비슷해요. 남자가 무슨 영양사를 하냐는 반응이죠. 대학에 갈 때도 그랬어요. 제가 식품영양학과에 가고 싶다고 하자 다들 의아해했죠. 왜 여자들만 가는 과를 가느냐는 일반적인 반응부터, 심지어는 일부러 여자 많으니까 가는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다른 남학생들처럼 저 무슨 학과 다녀요 하면 돌아오는 반응과는 좀 달랐죠.”

하지만 그런 주위의 반응에도 그는 기죽는 법이 없었다고.

“제가 영양사가 되려고, 식품영양학에 다닙니다. 라고 남들에게 말하면, 다른 남학생이 예를 들어, 전 전기과 다녀요 라고 할 때 돌아오는 무덤덤한 반응은 한 번도 없었어요. 꼭 한마디씩 했었는데요. 그래도 저는 한 번도 후회하거나 기죽는 법이 없었어요. 남자가 무슨 이라는 소리에도 당당하게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지금 공부하는 것을 말하고, 또 열심히 하니까, 처음에 그런 소리를 했던 사람들도 절 제대로 바라봐주었죠.”



정작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면서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주변의 시선이 아니었다고 한다.

“보통 남학생보다는 여학생들이 더 내신관리에 신경 쓰잖아요. 여대는 무슨 고등학교 내신 관리 하듯이 공부한다는 소리도 들었고요. 과 특성상 여학생이 아주 많아서 학점 관리에 힘들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군 입대 전은 할 말 없지만, 군대 갔다 와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자 주의로 매달려도, 꼭 1~2점 차이로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매사에 긍정으로 생각하는 성격답게, 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노력 했다고.

“학점이야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 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또 말이 식품영양학과지 군대 가기 전에는 놀다보니, 어디 가서 누가 뭐 물어보면 대답도 못하고 그랬는데, 복학하고 나서는 음식이나 주변 식품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서 생활이 좀 안전해졌다는 느낌이랄까요? 요즘 같은 때에는 저 음식은 주의해야하고, 저건 꼭 끓여 먹어야 하고… 주부9단 여사님들 정도의 지식을 쌓았다는 느낌이 들고는 해요.”



사실 그의 원래 꿈은 조리사였다고 한다.

“요리가 굉장히 하고 싶었어요.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죠. 그래서 대학에 갈 때는 조리학과로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꿈을 가지고 있던 그가 영양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원서를 쓸 때 어머니께서 식품영양학을 권하셨어요. 저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리사는 오히려 여자가 드문 영역일 정도로 남자 조리사들이 많지만, 영양사는 그렇지가 못하잖아요. 내가 뭔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느낌, 그리고 맛에 앞서서 이 음식이 사람의 몸에 어떻게 유익한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식품영양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죠.”

하지만 요리에 대한 그의 꿈은 정작 엉뚱한 곳에서 본의 아니게 이루어졌다고.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는 게 식품영양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다 음식을 잘하는 줄 알아요. 요리를 배우는 학과는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군대를 취사병으로 갔어요. 우스갯소리가 있잖아요. 군대에서 음대 출신 나와 해서 피아노 옮기게 한다는 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식품영양학과 나왔다고, 거의 자동으로 취사병이 되었어요.”

군필자 선배들로부터 “군대에 가면 넌 무조건 취사병이다.”며, 특기병으로의 입대를 권유받았다는 채동근 씨. 그러나 그냥 입대 한 그는 정말 취사병이 되었다.

“군대에서 밥 하는 거 보신 적 있으세요? 제가 또 복무한 곳이 훈련소에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식재료로 매일, 아니 매끼 식사를 만들어야 했어요. 거기다 단체 급식이다 보니 항시 조리하는 곳을 닦고 또 닦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좌우명으로 인생을 산다는 그답게, 그 때의 기억들도 모두 배움이 기회였다고.

“저는 나중에 단체급식이나 외식업을 경영하고 싶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어마어마한 인원의 급식을 담당하면서 알게 모르게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회사에 취업할 때도 취사병 출신이라고 하니 무척 반기는 분위기였고요.”



그와 함께 40명의 과 정원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는 남자 동기들. 그 중에서도 몇은 결국 다른 과로 전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를 계속하며, 이제는 당당하게 한 명의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저처럼 영양사를 하고자 한다면, 세상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여자가 아주 많은 과에서 학점 관리에 힘들 거예요. 거기다 남자가 드문 곳에서 일해야 하기에 일하는 분위기나 그런 것들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또 일일이 마음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당당하고 열심히 하면, 사람들은 이해하고 인정해주거든요. 저는 희소성에만 초점을 맞춘 남자 영양사가 아니라, 전문성이 있는 영양사로 인식되고 싶어요. 그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제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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