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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방바닥에 앉아 고민만 하는 당신에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13. 18:23

방바닥에 앉아 고민만 하는 당신에게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면서 꽤 오랜 시간 학교에 머무른 나. 후배들 눈에는 그런 내가 인생 선배로 보였는지 가끔은 조언을 구해오는 경우가 있다.

“휴학할까요? 휴학하면 어학연수 갈까요? 아니면 파트타임을 할까요?, 복수 전공으로 이것을 할까요? 저것을 할까요? 아니면 그냥 전공 심화를 할까요?, 노량진에 갈까요? 아니면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할까요?”

기실 나이와 학번이 앞서는 것 외에는 그다지 후배들과 비교해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지 못한 나로서는, 선배의 체면을 살리면서도 그들에게 일종의 “환각” 효과를 주기 위하여, 예의 헛소리를 조언이랍시고 던진다.

“음… 네가 가슴 뛰는 일을 해봐. 그게 뭔지는 네 가슴이 알고 있지 않을까?”라거나 “스펙의 노예가 아닌 너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봐” 따위의 말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폼을 잡는 나나 그런 나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 잠깐의 위안을 얻는 후배들이나 어떤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잘 나고는 싶지만, 이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떨치고 일어날 생각은 추호도 없고, 밥은 누군가 떠먹여 주기만을 바란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렇게 고민만 하는 청춘이 많은 탓인지, 그것을 이용한 책들로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러나 고민도, 자신만의 스토리도 결국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안재경 씨처럼 말이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으로 뜨거웠던 87년. 그 해에 태어난 안재경 씨가 사진을 시작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학생들이 모두 연예인처럼 예쁘고 잘 생겼다는 예술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떤 분야로 지원할까 고민하다 사진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진과에 가기 위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어요.”

“일단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한다.”는 안재경 씨는 사진에 대한 재능이 제법 있었는지 사진과에 합격하여 예쁜 여학생들로 가득한 예술 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한다.

“저는 제가 저걸 하고 싶다 생각이 들면 그걸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어떻게 보면 단순무식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면 앞뒤 재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안재경 씨의 인생관(?)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방송반 활동을 했어요. 그것도 왜 했냐면, 어린 마음에 학교 선배들이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래서 당장 지원했죠. 그리고 토끼장 관리도 했어요. 사실 저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눈과 코가 고생했어요. 하지만 동물이 좋은걸 어떡해요.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토끼장을 관리했죠.”



정말 사춘기 남학생다운 동기로 시작한 사진이었지만 사진을 찍을수록 사진이 좋아졌다는 안재경 씨.

“동기는 사실 좀 불순(?)했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 사진을 하면서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특히 흑백암실 실기 수업 때 느꼈던 흥분은 지금도 생생해요. 영화 속에서만 보던 암실의 빨간 조명 아래서, 마치 제가 그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게 사진을 인화했으니까요. 그런 흥분과 설렘이 계속 쌓이다가, 고1 겨울 방학 때 다짐했어요. 앞으로 평생 사진을 하겠다고요.”

예쁜 여학생이 아니라 사진에 관심을 쏟아붓게 된 안재경 씨는 고등학생 시절 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저희는 실기가 주가 되기 때문에 항상 큼지막한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다녔어요. 실기를 수업이 아니라 그냥 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무거운 걸 하루 종일 들고 다녔죠.”

그렇게 3년 동안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지금이야 워낙 DSLR을 많이 가지고 다녀서 좀 덜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제가 포트폴리오를 위해서 상반신 셀프 누드 촬영을 해야 했거든요. 스튜디오 빌리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으슥한 곳(?)에서 촬영했는데, 그걸 경비 아저씨가 보시고 경찰에 신고하신다고 하셔서 그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웃통은 벗은 상태로 도망간 적이 있었어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좀 경계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좀 있어 보이는 효과도 있었지만요.”



마치 아무도 모르는 명품 옷을 입고 자기만족을 하는 사람처럼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든다는 안재경 씨. 17살 때부터 평생 사진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답게, 사진에 대한 철학도 사뭇 진지하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사진을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느껴요. 사진 그거 자동 기능으로 놓고 찍으면 되지 않냐, 포토샵으로 보정하면 쉽지 않냐 등등. 거기다 사진을 기술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만약 그 사람들 말처럼 사진이 기술이라면 반복 숙달을 위해 많이 찍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겠죠. 하지만 저는 기술보다 중요한 게 사진을 보는 눈이라고 생각해요. 더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잡는 것도요. 그게 아니라 그저 기술만 있다면 그건 그냥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봐요. 10년 동안 사진을 찍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항상 사진과 관련된 책과 잡지, 그리고 작가들의 사진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접하며 알아가려고 노력중이에요. 또 사진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받고 있고요.”

고민이 생겨도 일단 움직이면서 고민한다는 안재경 씨. 확고한 자신만의 철학과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의 카메라는 지금 이 순간도 바삐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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