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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남다른 그녀의 취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 6. 13. 16:25

남다른 그녀의 취미

- 여러분은 탁본을 아시나요?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여기 한 20대 여성이 있다. 겉으론 다른 20대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김수현 씨. 하지만 김수현 씨는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하얗고 뽀얀 피부를 포기하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그녀가 끝내 버리지 않았던 그것. 그것은 바로 그녀만의 취미인 탁본이다.



나무나 금석에 새겨져 있는 문자와 부조에 먹을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대어 글자를 종이에 찍어 내는 탁본. 뭔가 백발의 노교수가 연상되는 탁본에 20대의 그녀가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탁본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해서였어요. 새내기들을 위해 학회와 동아리를 소개하는 날이 있었는데, 여러 학회와 동아리들이 박람회처럼 각 강의실마다 자리 잡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었죠. 저는 무심코 여러 곳을 지나치다 한석봉의 글씨를 주제로 꾸며진 강의실에 들어갔어요. 칠판을 가득 메운 탁본 작품들과 책상에 올려져있는 도록을 보니 2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학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곳이 바로 그녀를 탁본의 세계로 인도(?)한 “금석문 연구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줍은 성격으로 쉽게 가입을 하지 못하던 그녀는 마침 친분이 있던 선배의 권유로 “금석문 연구회”에 가입한다.


“전 한국사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마침 제가 들어간 금석문 연구회는 모두 제가 공부하고 싶은 한국사학과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앞으로 제가 배우고 싶은 교수님께서 지도 교수님으로 계셨어요.”


하지만 캠퍼스의 낭만에 빠져 지내기에도 바쁜 새내기 대학생에게 빡빡한 학회의 일정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지금은 재미를 느끼기에 취미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취미라기보다는 의무 같은 느낌이었어요. 매주 주말마다 탁본을 위해 각지를 다닌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거기다 낯을 가리는 성격에 선배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했고요.”


그렇게 “유령 회원”으로 1학년을 마치려던 즈음, 그녀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금석문 연구회에서는 매년 다른 주제로 한 번씩 전람회를 열어요. 그해에는 12월에 수원 예술의 전당에서 전람회를 하게 되었는데요. 매번 학회 활동에 빠졌던 저였지만 그 땐 안 되겠다 싶어 전람회 준비하는 것을 열심히 도왔거든요. 전람회를 치루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고, 또 마음에 여유도 생겨 그 다음해부터는 열심히 하게 되었죠.”



금석에 새겨진 명필들의 글씨를 공부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가 점차 역사와 사회, 문화를 연구하는 기본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탁본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탁본은 쉽게 말해서 새겨진 글자에 먹을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대어 글자가 종이에 찍히게 하는 건데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을 고르게 칠하는 것이에요. 이게 보기에는 쉬어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아요. 이걸 잘못 칠하면 저희끼리 하는 말로 찍혔다 고 하는데요. 그런 부분이 있다면 탁본을 한 것의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져요. 말 그대로 찍혔다면 다시 한번 그 곳에 가서 탁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렇게 “찍혀서”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원명구·원몽린 묘표를 6번, 김종수 묘표를 3번이나 가야 했다고. 


“저는 단지 기술만 있다고 잘 된 탁본을 얻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탁본은 그걸 하는 사람의 정성과 예술적 감각에 따라 잘된 탁본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고 봐요. 글자와 그림의 문양이 명확하고 고른 먹색으로 된 좋은 탁본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거든요. 예술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해가는 것처럼, 저도 좋은 탁본을 얻기 위해서 같은 장소에 재차 들러 오랜 시간 탁본을 떠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힘들지만 결코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녀의 탁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탁본이 있다면 무엇일까?


“경기도 파주시에 가면 조영제 묘표가 있어요. 묘역의 위치를 자세히 몰라서 온 산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내려오던 중이었어요. 비구니 스님 한 분만 계시는 암자를 들르게 되었는데, 조영제의 후손이신 분을 잘 알고 계시던 분이었고, 묘역의 장소까지 알려주셔서 다행히 탁본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탁본을 하던 도중 비가 내려 모두 함께 돗자리를 뒤집어쓰고 황급히 마무리했는데, 그게 그해에 있었던 전람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어요. 정말 탁본을 하는 사람의 정성과 열정이 있어야 좋은 탁본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그 때 느꼈어요.”



매주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열성적으로 탁본을 하는 그녀. 그런 딸을 지켜보던 그녀의 부모님은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부모님은 정말 끔찍하게 싫어하셨어요. 야외에서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얼굴은 국토 대장정 다녀온 사람처럼 새까맣게 탔거든요. 거기다 탁본을 하는 장소에 모기들은 왜 그렇게 많고 또 독하던지, 탁본을 하러 갔다 오면 온 몸이 모기에 물려 울긋불긋 멍든 것처럼 보였어요.”


부모님의 반대에도 꿋꿋하게 탁본을 하러 다니던 그녀는, 심지어 모기에 물려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고.


“원래 모기에 잘 물리는 체질이에요. 탁본을 하는 곳이 야외고 숲과 가깝다보니 모기도 많고 또 물리면 무지 아파요. 군대 다녀온 남자 분들이 말하는 아디다스 모기라고 있잖아요. 그런 모기는 제가 모기에 안 물리려고 옷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가도, 옷 속을 뚫고 물어요. 그 날도 어김없이 제가 희생(?)하여 같이 간 친구들은 모기에 한방도 안 물렸는데요. 모기 물린 곳이 가렵다기보다는 아픈 거예요. 부은 게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고 아파서 결국 새벽에 응급실에 갔어요.”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에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탁본에 열심인 그녀에게 탁본은 대체 무엇일까?


“탁본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저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게 한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 저는 집에 있기만 좋아하고 게으름뱅이에 이기적이었거든요. 하지만 탁본을 한다고 매주 밖에 나가게 되고, 또 협동이 필요한 탁본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게 제가 공들여 탁본한 작품이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거예요. 그 때 느끼는 감정은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으로, 그것을 함께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교감으로, 그리고 그렇게 얻은 좋은 탁본을 보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로. 그것을 동력삼아 그녀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탁본을 한다.


“올해에는 8월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전람회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와서 저희가 노력하여 얻은 탁본도 보시고, 탁본의 매력을 함께 느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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