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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어느 20대의 자취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12. 17:45

어느 20대의 자취기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나는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시골 출신이다. 어렸을 적부터 “옛말에 이르기를,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고, 자고로 남자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스무 살이 되던 해 풍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와 수도권 과밀화에 일조를 했다.

전철 타는 것이 재밌어 하릴 없이 2호선으로 한 바퀴를 돈다거나, 서울 사람들이 쓴다는 ‘~했니?’를 터득한 결과, 아버지로부터 “너는 서울 가더니 서울 사람 다 됐다.”라는 호평(?)을 받은 것 등이 지방에서 처음 올라와 친형과 함께 자취를 갓 시작했던 스무 살의 기억이다.

스무 살에 시작된 자취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그동안 자취를 하면서 능력 있는 여성을 만나 완벽한 외조를 하기 위한 밥, 빨래, 청소, 기타 생활 노하우를 터득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대신 건강을 잃었다.

그렇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어르신들 말씀은 옳다는 것이 필자의 자취 몇 년이 남긴 교훈이다.

매년, 매달, 매일 많은 젊은이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누군가는 하숙을 또 어떤 이는 자취를 시작한다. 상경한지 7년, 자취는 6년째에 접어든다는 강한나 씨도 바로 그 중에 한 명이다.



강한나 씨는 포항이 고향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득이하게 가족과 헤어져 홀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포항은 제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에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혼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하지만 딸이 홀로 타지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숙을 하게 되었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 21살이 되던 해부터 자취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침 서울에 올라와서 생활하던 초등학교 동창과 함께 자취를 시작한 강한나 씨. 학교 근처에서 시작한 강한나 씨의 자취는 이후 6번의 이사를 거쳤다.

“자취 6년 동안 매년 이사를 했어요. 22살이 되던 해에는 제 동생이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친구와 헤어지고 동생과 자취를 했고요. 그러다 제가 휴학을 하면서 23살 때는 동생 학교 근처로 방을 옮겼어요. 그런데 옮긴 집이 너무 비좁다보니 또 그 다음해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25살 때도 또 이사를 했죠. 그러다 졸업을 하고 일을 하는데 동생과 살던 집이 일터와는 너무 멀었어요. 그래서 각자 사는 것이 편할 것 같아 26살 때부터는 혼자 살기 시작했죠.”

이미 이사에는 전문가가 되어 있던 강한나 씨는 꼼꼼하게 자취할 곳을 물색했다고 한다.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이사에 이골이 나 있었어요. 그래서 집값이 싸면서 동네가 조용하고 관리하기 좋은 집이 어디 있을까 알아보다가 신림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죠.”

매년 이사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집구하는 일만큼은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집을 구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집 자체부터 주변 환경까지, 고려해야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강한나 씨는 이사하는데 유용한 정보들을 모은 비기(?)를 만들었다고.

“매년 이사를 하면서 놓쳤던 부분이나 이건 정말 필요하겠다 싶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주위에 집을 구한다는 친구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조언을 해줘요.”

아래의 항목들이 바로 강한나 씨가 체득한 것들이라고.

- 변기나 싱크대, 세면대의 물이 잘 나오는가?(수압을 꼭 확인해야 해요.)
- 보일러가 잘 돌아가는가?
- 겨울에 결로현상이 없는가?(벽지에 곰팡이가 있으면 곤란해요.)
- 도배, 장판 상태는 어떤가?(상태가 안 좋으면 집주인과 상의해 이사하기 전에 교체해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 관리비가 한 달에 얼마정도 나오는가?(이건 집주인보다 전에 살던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야 해요.)
- 주위 편의시설은 어떤가?(마트, 시장, 놀이터, 파출소, 교통시설, 도서관, 체육센터 등이 있는지와 있다면 그 시설은 어떤가를 확인해보세요.)
- 집 주변 환경이 어떠한가?(지하철 인근의 유흥가나 먹자골목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살게 되면 혼란스럽고 더럽기 때문에,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요.)
- 집주인 성향은 어떤가?(제가 21살에 처음으로 자취한 집의 집주인은 굉장히 까다롭고 수리하는데 비협조적인 사람이었어요. 돈거래를 하는 사이니만큼 인품을 확인하셔야 해요.)
- 전 세입자가 공과금을 모두 지불했는가?(의외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 보증금이나 월세 거래는 현금보다 계좌이체로 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어요.
- 방을 보러 갔을 때,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가구나 짐을 마음속으로 배치해보면서 이사 후에 어떻게 꾸미고 살지 그려보는 편이 좋아요.(이사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짐이 다 안 들어가서 낭패를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돈 주고 산 것들인데 버리면 아깝잖아요.)
- 구하는 방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것이 있는가?(저는 지금 세탁기나 냉장고, 에어컨, 주방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살고 있고 구할 때부터 이 조건에 맞는 방을 보러 다녔어요. 방을 구하러 다닐 때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방을 보러 다녀야해요.)


위의 항목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부지런함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살 집이기 때문에 한 겨울에도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는 그녀는 이사를 계속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집을 구할 때마다 왜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집에 집착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어렸을 때는 그게 이해가 안 갔거든요. 그런데 집을 구하려고 고생할 때마다 내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을 느껴요.”

그렇게 집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강한나 씨는, 집은 사람들 생활에 중요한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집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생활을 하려면 자기 집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집을 구하려고 다니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생활하고 있는데 비해, 어떤 곳에서는 멀쩡한 집인데 주인 없이 텅 빈 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저는 부동산이나 토지에 대해서 투자 목적으로 사고파는 것을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집만큼은 정부가 관리하고 배분했으면 좋겠고요.”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던 것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가 하는 일이 집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인지, 평소에도 그 쪽으로 책이나 방송을 자주 보게 되요. 그런데 어떤 날은 무심코 인터넷을 하다가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을 다룬 글을 보게 됐는데, 그 때 한창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힘들 때였거든요. 한국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집을 구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드는데, 국민의 80%이상이 공공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정부는 공공주택 시장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국민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이 너무 부러웠어요.”



자취생들이 공통으로 느끼게 되는 “결식·편식·잦은 외식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에는 어떻게 대처할까?

“저도 처음에는 먹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아서 몸 상태가 안 좋았어요. 거기다 저는 아토피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내공이 쌓이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식단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요. 다행(?)인 점은 제가 일을 하다 보니 평일 점심과 저녁은 직장에서 먹는다는 거죠. 다만 평일 아침에는 항상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를 챙겨 먹고요. 주말에는 혼자라도 꼭 밥을 챙겨먹어요.”

동네 어떤 마트에서 장을 봐야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지도 꿰고 있다는 강한나 씨. 집안일의 고수가 되었다는 그녀지만 자취를 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장은 떨이로 사거나 대량으로 사고, 또 자취에 들어가는 비용을 한 번에 내는 등의 방법으로 생활비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비용이 있어요. 집세랑 교통비, 관리비 같이, 살면서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이 60만 원 정도예요. 거기다 식비같이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한 달에 100만원은 넘는다고 봐야죠. 그게 제가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가장 부담이 큰 부분이에요. 또 갑자기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도 자취를 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점이에요.”

하지만 자취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자취를 힘들게 하는 것이 따로 있다고 한다.

“보통 혼자 살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항상 주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요. 대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슬플 때가 많아요. 앞으로는 저희 네 식구가 함께 살 일이 없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자취를 하고 얼마 안 됐을 때는 부모님이 서울 올라오셨다 내려가시면 서로 울고 그랬어요. 지금도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가 엄마랑 영화를 보러 갔다거나 가족들이랑 외식을 했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부러워요.”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외로움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한다는 강한나 씨. 특히 라디오와 음악이 가장 좋다고 한다.

“외로움을 안 느끼려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거나 다른데서 자취하는 동생을 만나 같이 밥을 먹기도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혼자잖아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집에 있으면 항상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놓는 습관이 생겼어요. 아마 집에 인기척이 없으면 공허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자취를 하면서 어른이 되었다는 강한나 씨. 그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자취는 혼자 집을 정리하고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전 자취를 하면서 스스로 철이 들었고,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잘 몰랐던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그거에요. 그 전에는 부모님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저를 많이 사랑하고 아끼신다는 것을 알아요. 또 제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도요. 아마 자취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이가 더 들어서야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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