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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900만 명의 전태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11. 16. 10:45

900만 명의 전태일

글·송경동

5미터 포크레인 다리 위에서 이 글을 쓴다. 빨리 마쳐야 한다. 오늘 내로 강제 진압하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것도 다행이다. 그러니까 그제 자정 무렵 기륭전자 비정규직 김소연 동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낮은 목소리. "낌새가 이상해요. 내일 새벽에 들어올 것 같아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1880일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출근투쟁과 천막농성을 해온 사람들이기에 감이 틀린 적이 없었다. 아쉬운 술자리를 중단하고, 구로동으로 향했다. 쉬지 않고 문자를 날리며. 그렇게 보낸 문자가 늘 수백 통이다. "[긴급] 기륭농성장 내일 새벽 침탈위협. 가능한 분들 함께 해주시면. 늦은 밤 미안합니다."

벌써 두 동의 농성천막은 먼저 와 잠든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누군가의 차 안에서 웅크려 뜬 눈으로 맞는 새벽 내내 한 둘씩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50여 명. 그런데, 조용했다. 구청 직원들이 십 수 명 나와 있는 것으로 보면 판단이 틀리진 않았는데 왜, 이러지. 떼를 써 오늘은 컵라면이 아닌 끓인 라면을 달라했다. 후루룩, 아 맛있다.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잠시 보내고 한숨 자려고 누우려는데 저만큼에 보기에도 형사라고 써진 치들이 서넛 얼쩡거리고 있다. 순간, "당했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고작 네 명. 아니나 다를까 공장 정문 안에서 용역들이 나오고, 저 쪽 길 끝에서 우웅거리며 커다란 포크레인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포크레인 위에서 쓰는 글

그렇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크레인 위로 올라 올 수밖에 없었다. 물리력이 안 될 때 남은 건 생의 결의, 우리가 배웠던 전태일의 그 의지와 용기뿐이었다. 2008년 투쟁 1000일에 즈음해 96일에 이르는 단식으로 이미 산 목숨이 아닌 김소연 씨와 함께였다. 연행하겠다고, 그래 연행해라. 그렇게 너희가 작년 용산에서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 제2의 용산을 만들 자신이 있으면 올라와라. 그렇게 올라와 하룻밤을 포크레인 위에서 지내고 아침, 이 글을 쓰고 있다. 40년 전 청계시장 복판에서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의 몸을 태우고 간 22살 청년 전태일은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의미일까를 새겨보는 글이다. 아마 포크레인 다리 맨 끝에서 쓰는 글은 이 글이 처음일 것이다.

기륭전자여성비정규직들은 대부분 파견직 여성들로, 2005년 파업 당시 월 급여 641,850원, 그러니까 당시 법정임금보다 10원 많이 받던 이들이다. 상여금은 정규직 700%, 직접고용비정규직 400%, 파견직은 0%였다. 일하던 중 잡담을 했다고 다음날 문자에 계약해지라고 뜨면 그것이 다였다. 현행법상 일상적인 생산라인에는 파견직 노동자를 쓰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회사는 몇 년간에 걸쳐 불법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해 임금을 착취했다. 더 이상 못 참고 파견직 기륭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자 회사는 전원을 계약해지해 버렸다. 그리곤 장장 6년. 어떤 일로도 이들의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구속과 벌금과 손배가압류와 무지막지한 용역깡패들의 폭력이었다. 200여 명의 파견직 여성노동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가야 했다.

사측은 결정적인 순간들마다 우리는 풀고 싶지만 윗선에서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총이라 했고, 국정원이라 했고, 집권 여당이라고 했다. 남은 조합원들이라야 30여 명, 2008년 마지막 교섭 당시 월급여 80만원 정도를 받는 정규직화 요구였다. 그런데, 왜.

그건 기륭전자비정규직들의 문제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구로디지털산업단지 내 90%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이런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이었다. 사회적으로는 900만에 이르는 사람이 이런 처지였다. 당시만 해도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들이, KTX여승무원들이, 코스콤 비정규노동자들이 300일째, 400일째, 800일째 싸우고 있었다. 당연히 기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이렇게 구로동 어느 골목에서 포크레인 위에 올라와 밤을 새고 있을 때 양재동 현대기아 본사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동희오토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100% 비정규직 공장. 공장 부지와 시설 설비와 업무 관장을 모두 현대기아차에서 하고, 그 수익 또한 현대기아차가 최대 주주로 대부분을 가져가지만, 이들은 현대기아차 소속 노동자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희오토 소속 노동자들도 아니다. 동희오토는 다시 라인 별로 17개의 재하청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을 관리했다. 결과는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들 임금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노동이었다. 24시간 맞교대의 살인적인 노동이었다.

과거의 노예는 주인이라도 분명했지만 현대판 노예들은 3개월짜리, 6개월짜리, 길어야 2년 미만으로 그 주인마저 불분명한 유령노동자들이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펀드나, 기계나 자동화보다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해내는 착취의 도구에 다름 아니게 되었다. 인격이라고, 그런 낭만적인 것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굴리고 굴려도 나오는 것은 착취와 모멸의 수레바퀴뿐이다. 386들이 정권도 잡았었다는 데, 전태일의 친구들이 사회 주도층들이 되기도 했다는데, 민주주의도 많이 신장되었다고 하는데, 세상도 많이 살기 좋아졌다는데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왜 이렇지.

900만 전태일을 만나다

그래서일까. 전태일 40주기가 되었다고, 이런저런 기념과 추모와 계승 사업들을 통해 죽은 전태일을 현재에 살아나게 하려는 사업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도 심드렁했다. 돌려 말하자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너무 사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 청계천의 전태일이 죽었던가. 그 저임금과 모멸과 차별과 착취가 죽었던가. 전태일은 살아 있다. 한 두 명으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900만 명의 비정규직노동자들로 이 땅에 온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개차반 농민으로, 도시빈민들로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진정으로 전태일을 만나고자 한다면 굳이 먼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가는 전태일을 다시 만나보려 애쓸 필요도 없다.

오늘이라도 혜화경찰서와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외치며 2인용 천막 하나 치지 못하고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전태일을 찾아가보면 된다. 인천 부평 지엠대우공장 담벼락에서 햇빛을 못 받은 식물들처럼 젊은 나이에 말라죽어가는 지엠대우 청년 비정규직들을 찾아가면 된다. 해고는 죽음이다를 외치며 2008년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목숨을 건 투쟁을 할 때, 무슨 죄라도 지은 양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우선 해고당한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 그들의 눈물을 만나면 된다. 최소한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목 놓아 외치며 전태일 40주기 기념 노동자대회에 맞춰 전국을 순회하며 올라오고 있는 특수고용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행진 대열을 찾으면 된다. 그들이 오늘의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역사 속에 있지 않고 오늘에 있는 것 아닐까. 전태일이 못다 굴리고 간 굴레의 수레바퀴를 오늘 지금 돌리고 있는 전태일의 친구들에게서 왜 전태일을 찾지 않는가. 김남주의 시에 있었던가.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그런 의미에서 미안하지만 우리 시대의 전태일 정신은 죽어 있다. 무슨 기념 재단이 선다고 전태일이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900만 명의 이웃들이 비정규직 목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슬픈 일은 이런 현실을 넘으려는 진정성 있는 열망들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는 절규가 없다는 것이다. 함께 손 맞잡고 가자는 연대의 정신들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희생과 헌신이라는 가장 고매한 인간적 실천이 경제적 논리로만 재단당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착취와 야만의 세계화가 어쩔 수 없는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아마도 전태일의 전국민화, 세계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린 전태일을 알리는 일보다 지금 다시 잘 보이지 않는 전태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40년이 지났건만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다. 그것도 피터지게 싸워야만 간신히 쟁취되는 권리다. 건설자본과 일부 토지주들의 이해만을 위해 전국 800여 곳의 공동체가 재개발-재건축-뉴타운의 미명하에 파헤쳐지고, 자연의 강마저 한 줄로 줄세워진다. 모든 것은 자본의 이윤만을 위한 도구와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상품화는 도를 넘어 탄생부터 죽음까지 이제 우리 모두는 생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가치만을 쉴 새 없이 뽑아대는 묶인 누에꼬치와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때 우리에겐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 그가 생전에 남겼던 이야기들이 메아리처럼 귀속을 맴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글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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