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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우리텃밭 제철꾸러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10. 18. 13:52

얼굴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우리텃밭 제철꾸러미

 

글·양지연 yangjikdemo.or.kr

 

# 현관 앞에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이번엔 뭐가 들었을까. 얼굴엔 벌써 웃음이 한가득 번진다. 조심조심 상자를 열어 보면 깨알 같은 글씨의 편지 한 장이 먼저 눈에 띤다. 두부 한 모, 신문지에 곱게 싼 파 한 단, 빨간 고추 초록 고추, 갓 담근 오이김치 한 봉지, 이름 모를 나물 한 움큼, 찰보리쌀 조금, 청포도......보기만 해도 입가에 침이 돈다. 친정 엄마가 정성껏 싸주신 듯 깔끔하고 싱싱한 반찬거리들을 받아보는 행복이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이면 현관문을 두드린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리텃밭 제철꾸러미 사업이다. 여성농민들이 텃밭에서 농사지은 제철 농산물을 매주 도시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주는 사업이다. 2008년 하반기에 시작되어 올해로 2년이 된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그래도 전국에서 꾸러미를 받고 있는 회원이 이제 700여 명이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 토종씨앗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옛날에는 다들 집에서 씨를 받아 보관했다가 때맞춰 심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종자회사에서 육종한 씨앗, 대량생산에 필요한 씨앗을 사다 심어요. 그런 씨앗들은 필연적으로 비료, 농약을 많이 써야 되고 그러다 보니 먹는 게 안전하지 못하죠. 조사를 해 보니 우리의 토종씨앗들이 아주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더라고요. 하지만 토종씨앗을 지킨다는 게 생산자들의 노력만으로는 어렵죠. 생산을 했는데 먹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사업이 지속되려면 경제적인 보장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사업을 구상하게 된 거죠."

 



우리텃밭 윤정원 사무장의 말이다. 우리텃밭은 대량 생산이 아닌 텃밭에서 자기 가족들이 먹던 것을 농사짓던 데에다 조금씩 더, 다양한 종류를, 제철에 나오는 것을 중심으로 농사짓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연히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약과 비료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50년 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재미있게 농사짓는 건 처음

강원도 횡성, 홍천, 경북 상주 봉강, 안동 금소, 전남 순천, 전북 김제, 제주 등 전국에 7개의 생산자 공동체가 있고 생산자 회원은 70여 명 정도이다. 생산지에서는 생산자 회원들이 공동체를 만들어서 꾸러미 공동체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생산지의 시간은 매주 화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소비자들에게 보낼 꾸러미를 싸는 날이기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9가지 품목 정도를 보내는 데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꾸러미 개수에 맞게 양도 적정하게 맞추고 포장도 신경 써야 한다. 생산지 소식과 물품에 대한 소개 편지를 쓰고 택배 차량에 꾸러미를 싣고 나서야 한 숨을 돌린다.

"그 전에는 농사를 지어도 이게 내 농사라는 느낌이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제철꾸러미를 하면서 내가 농사지은 걸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맛있다, 어떻게 요리하는 거냐 등등 반응들이 오기 때문에 농사 짓는 게 재미있고 즐겁대요. 50년 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재미있게 농사짓는 건 처음이라고 하신 분도 계세요. 게다가 오로지 자신의 몫이 되는 얼마간의 소득도 생기구요."

매해 짓는 농사에 제철꾸러미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싸서 보내야 하니 힘들만도 한데 여성농민들은 함께 반찬거리를 준비하고 꾸러미를 싸며 더 끈끈한 정을 쌓아 간다고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했는지 알고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소비자들은 주는 대로 먹는다는 게 원칙이다. 매주 어떤 농산물이 올지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재미도 있을 법하다. 회원이 되면 우리 먹을거리 교육을 받고 생산지에도 한 번은 가봐야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알고 먹는다는 점을 가장 만족해하세요. 주는 대로 먹기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나물, 장아찌 등 모르는 음식을 알아가는 과정의 어려움도 있기는 하죠. 또 그동안의 먹던 식단, 식사 습관을 바꿔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요. 현대적인 먹을거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에요. 하지만 외식이 줄고 시장가는 일이 줄었다고 해요. 월10만원을 내는 게 처음에는 큰 돈 같았지만 막상 해보니 평소 식료품 구입에 드는 비용에 큰 차이는 없다는 반응이구요. 여성 농민들께 도움이 된다니 더 좋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우리텃밭은 이렇게 단순한 농산물 직거래가 아니라 서로 함께 농업을 생각하는, 생산하는 공동체, 소비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보자는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토종씨앗을 지키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제철 먹을거리, 텃밭 규모의 농사를 통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약과 비료사용을 줄여 나가는 친환경 먹을거리, 여성 농민들에 의해 계승되는 전통 농가공으로 만들어진 전통 먹을거리, 우리 땅에서 우리 기후와 토양에 적응한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토종 먹을거리를 지켜나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어쩌면 매주 수요일 집으로 배달되는 꾸러미 속에 들어있는 건 우리에게 남은 농업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미흡한 점들도 있다. 택배를 이용한 거래가 문제다. 배송 사고가 나기도 하고, 하루가 지나면서 음식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배송에 사용되는 스티로폼, 아이스 팩 등이 아깝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생산자 공동체와 소비자 공동체가 서로 묶여 좀 더 촘촘한 관계가 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직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멀죠. 서로 체험과 교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미흡해요. 꾸러미를 받고 있는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 지형적인 특성들을 알면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겠죠. 소비자 회원들이 자신이 받는 꾸러미 생산지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겨 줬음 좋겠어요."

 



제철꾸러미 사업 이전에도 팔당생명살림의 유기농 채소 바구니 등 이와 비슷한 다양한 사례들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텃밭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곳에서 이런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행복한 교류가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윤정원 사무장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http://cafe.daum.net/jangbaguni 에서 우리텃밭 제철꾸러미에 대한 안내를 볼 수 있고 회원 가입 신청도 할 수 있다.

글 양지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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