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이야기/내가 만난 70년대 (19)
함께쓰는 민주주의
30주기에 다시 바라보는 인혁당의 진실 인혁당 사건은 우리의 굴곡 많은 현대사, 특히 독재권력 시기의 대표적인 비극적 사건 중 하나이다. 1975년 4월 9일,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지 불과 20여 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흐느낄, 당사자에게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처절한 한과 치 떨리는 분노를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무거운 짐을 새겨 놓은 이 처참한 사건이 발생한 지도 올해로 벌써 만 30년이 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형수 8명을 포함한 관련자..
보도통제를 뚫고 유신 이후 5.18까지를 알린 THE FACT SHEET 1972년 ‘10월유신’ 이후 1980년 5·18민중항쟁까지 격동기 한국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팩트 시트(FACT SHEET)라는 보고서가 있다. 이것은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인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독일, 캐나다, 프랑스, 벨기에, 호주, 미국, 일본 등 너무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여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만들었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이다. 슈라이스 부부(Sue and Randy Rice), 루이스 모리스(Louise Morris), 문동환 목사 부부를 포함한 여러 명의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팩트 시트를 작..
학생들의 행복이 참교육의 출발이라는 믿음을 실천하는 윤지희 얼마 전 부장검사 아들의 시험 답안지를 담임 선생님이 대신 작성해주고 현직 교사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위장 전입시킨 사례들이 드러나 우리 교육의 현장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다시금 느끼게 했다. 교육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허다한 교육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교육정책들이 입안되고 실행되고 폐기되는 부침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다른 부문과 달리 교육부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교육문제에 관한 한 백약이 무효라는 자조 섞인 우려가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떠도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교육운동을 해 온 윤지희 ‘교육과 시민사회’ 공동대표를 만나 우리 사회의 바람직..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동일방직 사건 “2월 21일 05시 30분, 출근하는 조합원들이 회사의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노동조합 사무실안에서는 때려 부수는 소리와 함께 여자 조합원들의 비명소리가 고요의 새벽하늘을 뒤흔들었다. 40여 개의 투표함은 몽둥이로 모조리 때려 부서졌고 노동조합 사무실의 모든 기물은 전부 파괴되었으며 회사 측 조정을 받은 5~6명의 남자들은 미리 준비한 방화수통에 똥을 담아 가지고 와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선거하러 들어오는 여자 조합원들에게 닥치는 대로 얼굴에 문대고 똥을 쳐 발랐다.(중략) 그리고 금남의 지역인 여자 기숙사까지 쫓아가 그 짓들을 하구도 직성이 안 풀렸던지 똥을 담았던 방화수통을 오 모 양의 머리에 뒤집어씌운 것을 보고 “경찰 아저씨 도와주세요.”하니 구경만 ..
밤송이처럼 솟아오른 짧은 머리와 아직도 노란기가 가시지 않은 핼쑥한 얼굴 그리고 푸른 핏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마른 손이 2004년 12월에 국보법 폐지를 위해 단식농성한 분들을 필자가 만났을 때 처음으로 마주친 것들이었다. 한순간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가슴 한켠에서 울컥하는 묘한 떨림이 일었다. 내가 그 분들을 만나기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이미 없어졌어야 할 법에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된다는 것에 다들 어처구니 없어 했다. 참여민주정부가 들어섰다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일천한 정치적 상황이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국보법 폐지 투쟁에 함께했다. 그들은 같은 공..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기념시설들에 대한 연재를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정리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역사적 경험과 문화 그리고 현재의 여러 조건의 차이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평가하고 기억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 과거의 사건과 경험을 회상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기억들을 가진 주체들이나 집단들의 끊임없는 기억투쟁을 통해 선별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과 워싱턴 홀로코스트박물관 히로시마와 워싱턴에는 평화기념자료관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라고 하는 과거의 극단적인 폭력의 기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측이나 관람객들도 정치선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도 정치선전은 없는 것처..
우리 안의 공포와 패배의식을 치유하는 역사학자 [이이화] 가끔 역사의 ‘간계’와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기존의 사회적인 문제는 새로 등장하는 사회적 문제에 가려져 이미 낡은 문제나 해결된 문제처럼 치부한다. 동성애, 장애인, 소비자, 외국인 노동자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또다른 노동자 문제나 농민들의 문제는 자신들을 자극시켜줄 문제가 아니어서 외면하거나 이미 해결된 문제로 착각한다. 망각된 사람들은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며 지독히 외로운 삶을 버티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학살당한 민간인들도 망각된 문제 중 하나이다. 그 오래고 낡은 자리에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이 있었다. 어떤 연유로 자신이 죽는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죽어간 민간인 100만 명. 그들 중 대부분은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
YWCA 위장 결혼식 사건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 며칠 전 필자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필자와 동료들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담소의 주제는 ‘결혼’이었다. 담소를 나누던 중 위장결혼이라도 해서 부모님의 성화로부터 벗어나자는 농담이 나왔는데, 그 농담을 들은 한 동료가 예전에 집회할 때 결혼식을 가짜로 꾸며서 한 적도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자연스레 화제는 그 집회 이야기로 옮겨졌 다. 그 집회는 소위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알려진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였다. 필자는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었고, 사료관에 관련된 기록물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우선 기록물을 소개하기에 앞서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에 대해서 짤막하..
만화는 두 다리를 건너 세상과 만난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 최근 최동훈 감독에 의해 국민만화에서 국민영화로 발돋움한 의 창조주도 그래서 둘이다. 일명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허영만 화백과 스토리 작가 김세영이 그들이다. ‘신문에 연재를 한 작품하면 그 직후에는 철천지 원수’라는 부박한 한국 만화판에서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7년을 동고동락한 허영만과 김세영의 호흡은 경이롭다. 그들은 , , , , 라는 당대의 역작을 연이어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세간은 허영만에게만 눈길을 줬기에 김세영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죽하면 유일하게 김세영의 프로필을 기록한 부천만화정보센터의 데이터베이스 만화규장각에도 그는 1998년에 데뷔한 여자 스토리 작가로 잘못 기록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