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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짜>의 스토리 작가, 김세영 본문

민주화운동이야기/내가 만난 70년대

영화 <타짜>의 스토리 작가, 김세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3:00

  만화는 두 다리를 건너 세상과 만난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 최근 최동훈 감독에 의해 국민만화에서 국민영화로 발돋움한 <타짜>의 창조주도 그래서 둘이다. 일명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허영만 화백과 스토리 작가 김세영이 그들이다. ‘신문에 연재를 한 작품하면 그 직후에는 철천지 원수’라는 부박한 한국 만화판에서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7년을 동고동락한 허영만과 김세영의 호흡은 경이롭다. 그들은 <카멜레온의 시>, <오! 한강>, <벽>, <사랑해>, <타짜>라는 당대의 역작을 연이어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세간은 허영만에게만 눈길을 줬기에 김세영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죽하면 유일하게 김세영의 프로필을 기록한 부천만화정보센터의 데이터베이스 만화규장각에도 그는 1998년에 데뷔한 여자 스토리 작가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8척 장신에 잘 기른 수염과 머리, 배철수와 흡사한 음성의 김세영을 처음 마주하면 ‘도사, 신선’이라는 단어가 입 안에서 절로 맴돈다.

딸 김연우가 수능시험을 치던 날, “시험은 연우가 치는데 내가 긴장할 게 있나. 그리고 세상사는 원래 새옹지마”라고 태연자약하던 김세영과 그의 집에서 만났다.

 

허영만의 그림과 김세영의 이야기

풍모 뿐 아니라 김세영의 삶은 고대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신춘문예 본선에 나갔던 젊은 시절의 시작 실력, 술에 취하면 가끔 기타를 들고 들려주는 자작곡, 아마추어 5단 실력의 바둑, 엄청난 독서광, 웬만한 영화감독을 능가하는 영화광의 기질과 소장 DVD가 ‘이 시대의 스토리 작가’를 만들어낸 기틀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한량에 가까운 그의 태도는 1973년 친구들에 이끌려 스토리 작가를 시작하고, 이듬해 장은주 만화가의 순정만화 <새로운 노래>로 데뷔했던 그 옛날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김세영은 ‘스토리 작가’라는 단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마치 초기 이야기 설정만 하고 만화가에게 모두 맡긴 후 대사만 쓰는 뉘앙스를 준다. 영화도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도 드라마 작가라고 하지, 드라마 스토리 작가라는 단어는 없다. 독자들에게 오해만 초래하는 만화계의 관행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가까운 일본은 이 문제가 명확히 구분되어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은 지 오래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글·그림’이라는 이름을 만화가가 독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만화의 창조적인 영역을 부당하게 산정하는 관례다. 많은 만화 관련 기자나 평론가조차도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작품을 평가하는 현실도 그러하다.

만화의 과정이 둘로 나뉘듯, 만화 스토리 작가도 두 부류로 나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듯 글만 쓰는 유형의 스토리 작가 그리고 그림을 알고 콘티까지 그려주는 스토리 작가. 김세영은 후자다. “한국만화 중 대다수의 히트작은 콘티를 그릴 줄 아는 스토리 작가와 좋은 그림체의 만화가가 작업한 작품들”이라고 김세영은 이야기한다. 이러한 차이는 연출력의 영역으로 번진다. 콘티는 연출에 속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타짜>의 이야기와 캐릭터, 목소리는 온전히 김세영의 창조물이다. <타짜>를 제작한 싸이더스 FNH 차승재 대표는 이러한 사정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영화로 따지자면 허영만 선생님이 배우, 김세영 선생님은 감독인 셈이군요.” 허영만의 그림이 없다면 김세영의 이야기는 형상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세영의 이야기가 구축되지 않으면 허영만의 그림도 무망할 따름이다. 만화란 이야기와 인물이 만들어져야 그림이 따라붙는 산물이다.

1953년생 김세영과 1947년생 허영만이 처음 조우한 것은 허영만의 화실에 있던 만화가 조운학을 통해서였다. “김세영보다 더 게으른 스토리 작가 때문에 고생했던” 허영만과 “이번 이야기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다 .”는 김세영은 <카멜레온의 시>로 한국 만화계의 황금 콤비의 첫발을 내딛었다. 삶을 포착하는 탁월한 그림실력을 가졌고 선천적으로 꼼꼼하며 자기관리에 탁월한 허영만과 “평생 노는 게 소원”이지만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반드시 끝내는 뚝심, 소주를 마시면서 이틀 동안 들은 취재로 <타짜>의 전체 이야기를 엮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 근대 지식인을 연상시키는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김세영의 결합은 어쩌면 운명이었을 지 모른다. 그래서 허영만은 한 작품 끝날 때마다 억만금을 줘도 다시는 너랑 하지 않겠다고 화내며 돌아섰다가도 김세영에게 매번 다시 발길을 돌렸고, 그가 화를 내면 무심한 얼굴로 멀뚱히 바라보던 김세영은 허영만과 무려 17년을 동고동락했다.

<카멜레온의 시>, <오! 한강>, <타짜>

“책을 많이 읽으면, 누구나 내가 쓴 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게 내게는 출발이었다”고 김세영은 말한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욕심보다는 자신의 안을 바라보려고 시작된 김세영의 이야기는 기묘하게도 만화라는 가장 대중과 밀접한 예술 세계를 통해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권투를 하면서도 로트레아몽을 읊조리고, 세계 경영을 꿈꾸면서도 보들레르를 그리워하는 우수어린 주인공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600여 권, 6만 여 쪽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김세영이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카멜레온의 시>, <오! 한강>, <벽>, <타짜>, <사랑해>. 한 편을 집요하게 묻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해>. “내 자신의 삶이 그대로 투영됐고, <사랑해>를 하면서 옛 일을 떠올리는 과정 자체가 아주 즐거웠다”고 김세영은 말한다. 화가 앙리 미쇼의 격언을 비롯해 수많은 경구들과 사랑고백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찬탄하게 했던 <사랑해>의 이야기를 작업한 실제 과정도 인상적이다.

“초반에는 젊은 시절 읽었던 책들을 뒤적이는 재미가 있었다. 기억나는 대로 서가를 뒤지는. 반대로 나중에는 밑천이 떨어져서 좋은 경구를 발견하면 그걸 발판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써 내기도 했다”고 한다.
김세영이 궁금하다면 <사랑해>의 책장을 펼쳐라. 그 곳에는 김세영이 군을 제대하고 20대를 한량으로 보낸 청년기, 나이 차가 많은 아내와의 연애와 사랑, 딸을 낳고 가장으로서의 느꼈던 기쁨과 책임감이 곳간의 밀알처럼 빼곡히 쌓여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스포츠투데이」에 <갬블>을 연재중인 김세영은 이야기에 관한 한 지독히 엄격하다.
“연재의 속성도 작용하지만 이야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열독률이 떨어지면 대부분 폭력이나 섹스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출판사나 신문사의 요구도 그렇지만 그게 반복되면 처음 생각했던 방향의 이야기와 점점 멀어진다.”고 그는 단언한다. “폭력이나 섹스가 나쁘다기 보다는 이야기의 방향을 훼손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쓰이는 방법이 독”이라는 설명.



바둑만화를 꿈꾸다

김세영은 체질상 한번 했던 소재나 이야기를 다시 하는 작업을 싫어한다. 이야기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도 경계한다. 예를 들어 카지노를 다룬 <타짜> 4부는 원래 그가 잘 알고 있는 바둑을 소재로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이를 반대했고, 내부 투표 끝에 카지노 이야기로 낙찰됐다. 물론 카지노 자체를 다루려는 김세영의 꿈도 <타짜>시리즈처럼 도박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공들였던 바둑만화 <살라망드르>도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사에서 열독률을 근거로 폭력과 섹스의 요소를 요구하는 바람에 초기에는 바둑 중심의 인물 이야기였다가 나중에는 승부와 도박의 세계로 기울어졌다”고 한다.
김세영은 오랫동안 승부에 매몰되지 않는 바둑만화를 꿈꿨다. <갬블>의 연재를 마치면 그는 그토록 염원했던 바둑만화에 도전할 지도 모른다. “190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대극이다. 바둑이라는 세계를 통해 사회상과 인물을 짚어낼 생각이다. 승부도 승부지만 바둑 자체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포부에 한 명의 독자로서 내심 기대를 건다.

 

김수경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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