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기념관 (41)
함께쓰는 민주주의
국립3·15묘지와 3·15의거 기념관 March 15 National Cemetery 정 호 기(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4월혁명, 4·19혁명 그리고 3·15의거 4월혁명은 한국전쟁 이후,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건이었다. 4월혁명의 시간적·공간적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는 이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1960년 3월과 4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항의하는 집회 및 시위와 정권이 붕괴된 후 계속된 정치·사회적 변화를 지칭한다. 이를 사건으로 국한해 보면, 1960년 2월 28일부터 4월 27일까지 전국에서 비연속적으로 전개된 일련의 집회와 시위들을 말한다. 그 동안 4월혁명보다는 2·28학생의거,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었고,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4·..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의 의의와 역사성 정호기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국의 민주화운동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한반도의 통일과 민주주의 실현이 핵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는 형태를 보이자. 적어도 남한 내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문제가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화두가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이론적·사상적 논쟁과 갈등으로 표출되었고, ‘어떻게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를 추구하고 앞당길 것인가’ 라는 사회운동론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방법들과 논의들이 제시 및 이루어져왔고, 국가와 지배권력이 대한 민중들의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항거행위가 있어왔다.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은 항거행위의..
미국 국립기록관리청과 포드 · 카터 대통령기록관 이상민 (정부기록보존소 전문위원) 미국에서 공공 역사기록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수도 워싱턴DC에 국립기록보존소(National Archives)가 설립된 후이다. 국립기록보존소는 그때까지 각 부처에 방치되어 있던 연방기록을 수집하여 수도 워싱톤DC에 건립된 국립기록보존소 건물(현재 Archives I)에 보존하기 시작했다. 1945년에는 최초의 연방기록물센터(Federal Records Center)가 설립되었다. 연방기록물센터는 연방정부의 비활용 기록물을 초기 단계에서 폐기하는 역할과 영구보존 연방기록을 국립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 Records Administration)으로 이관하는 중간 수집 거점으로서 설..
기념관이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바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대개 기념관은 여러 자료들을 동원하여 그 기억을 만들어주지만, 자료만으로는 역사적 상상력을 증폭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료란 과거의 기억이고 증언이지만, 그것으로 역사적 체험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그 역사를 직접 살아보지 않은 후대들에게 기억을 살려내면서 역사적 인식으로 전환하기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후손들은 역사적 체험이 아닌 자료로 역사를 그려가야 하는데, 그 자체가 매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역사란 정확한 기록과 자료를 통해 가능하다지만, 그래서라도 여전히 기념관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역사적 체험에 준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기념관이 처한 난관인 것이다.그런 ..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위한 성찰과 토론 기념관 연재를 마치며 2003년 2월부터 한국에 있는 주요 기념공간들과 기념관들에 대한 글을 『희망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부터는 해외로 시야를 넓혀 아시아, 유럽, 미국, 남미 등에 있는 주요 기념관, 박물관 혹은 기념공간들을 살펴보았다. 이 연재의 목적은 국가 폭력, 식민지의 경험, 전쟁, 독재 혹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투쟁, 인권 등을 주제로 조성된 기념공간과 기념시설들을 우리의 현재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시민적 관심과 애정 속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의 첫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고자 한 것이었다. 이번 연재는 일관된 틀이 유지되지 못했고 계획했던 모든 기념시설들을 다루지 못해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현재 추진하고자 ..
우리의 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관 돌이켜 보면 지난 20세기 우리의 100년은 세계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기에 온갖 격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던 혼란 속에서 굳건히도 우리 것의, 우리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조선의 멸망과 식민통치 36년, 해방과 분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한국전쟁, 혁명과 쿠데타, 독재와 항쟁……. 특히 분단구조에서 단기간에 이루어낸 압축성장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큰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핵심이었던 민(民)이 역사와 사회의 대상에서 진정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960년 4·19혁명과 1970년 전태일의 분신, ..
이야기 형식으로 기억을 들려주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독일 영화 한 편이 최근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9월에 개봉하여 개봉 5주 만에 독일에서 341만여 명이 관람한 이라는 영화는 히틀러의 쉰여섯 번째 생일인 1945년 4월 20일부터 열흘 뒤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그가 자살하기까지의 마지막 삶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독재자로서의 히틀러 모습보다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데 있다. 왜소하고 측은한 이 독재자의 모습은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역사적인 과오를 감정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로 비춰지고 있다.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들인 국가민주당(NPD)과 독일국민연합(DVU)이 지방의회에서 약진하며 기세를 올리는..
파리 죠루즈 퐁피두센터 프랭크 맥코트 가족은, “자유의 여신상에 헬로’라고 인사하는 대신에, ‘굿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뉴욕 항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부루클린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이제 겨우 네 살, 그의 부모는 아이리쉬 이민세대였다. 대공황이 휩쓸던 1930년대, 뉴욕 슬럼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아일랜드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월이 흐른다. 갖은 고초 끝에 청년으로 성장한 프랭크는 풍운의 꿈을 안고 다시 뉴욕 행 증기선 호의 갑판 위에 서 있다. 드디어 희망의 횃불을 높이 쳐든 자유의 여신상이 점점 가까워온다. 이 이야기는 가난한 아이리쉬 가톨릭이었던 작가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의 자전적 성장 소설로, 1997년 퓰리처 문학상을 수상한 ‘안젤라의 재(Angela’s ..
엘리스 아일랜드 이민사 박물관 유목의 세월을 기억하는 방 프랭크 맥코트 가족은, “자유의 여신상에 헬로’라고 인사하는 대신에, ‘굿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뉴욕 항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부루클린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이제 겨우 네 살, 그의 부모는 아이리쉬 이민세대였다. 대공황이 휩쓸던 1930년대, 뉴욕 슬럼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아일랜드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월이 흐른다. 갖은 고초 끝에 청년으로 성장한 프랭크는 풍운의 꿈을 안고 다시 뉴욕 행 증기선 호의 갑판 위에 서 있다. 드디어 희망의 횃불을 높이 쳐든 자유의 여신상이 점점 가까워온다. 이 이야기는 가난한 아이리쉬 가톨릭이었던 작가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의 자전적 성장 소설로, 1997년 퓰리처 문학상을 수상..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 더 이상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한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홀로코스트는 살아남은 자들을 구속하는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기억이다. 그것이 남긴 수많은 슬픔과 상처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항상 망각을 동반하는 선택적 작업이다. 망각 또한 기억의 한 형태인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망각되는가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미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의 문맥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으로 남은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이면서 현재이자 동시에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