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촛불시위, 반전평화운동 그리고 반전반핵가 이영미 지난 겨울 촛불시위부터 시작하여 이라크전쟁 반대의 반전평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반미 열기는 놀라울 정도이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반미’란 매우 낯설고 섬뜩한 구호로 여겨졌다. 공산군을 막아준 미국을 반대하는 것은 곧 용공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반미적 색채의 단편 를 쓴 작가 남정현이 반공법으로 처벌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반미란 단어 자체는 우리에게 그다지 좋은 어감을 주지는 못한다. 촛불시위의 수많은 대중들은 실제로 반미를 외치고 있으면서도(그 반미의 수준이 ‘미국은 사고에 대해 공정하게 처리하라’ 정도에서부터 ‘미군 철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할지라도 어쨌든 반미는 반미였다), 언론 인터뷰..
1945년 8월, 계훈제는 평안남도 강동군 승호리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었다. 돌산의 암반에 구멍을 내고 다이너마이트를 넣어 폭파한 다음, 폭파된 석회석을 작은 트럭에 실어 분쇄공장으로 나르는 일이었다. 벌써 1년이나 강제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동의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불성실하게 일을 해왔다. 허리를 구부리고서도 쉴새없이 감시자에게 눈을 힐끔거렸다. 노동의 희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된 노역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령을 피웠고, 남보다 보리밥 한 덩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썼다. 계훈제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조금씩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항을 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법인데…. 독립운동은커녕 강제노역장에서 하루하루를..
겨레의 땅을 딛고선 흰 고무신 - 계훈제 1 1921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 갓난아기의 운명은 그가 조선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는 평안북도 선천군 부황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앞으로 펼쳐질 갓난아기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갓난아기가 태어난 역사적 조건은 험난한 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베를린 옆에 있는 작은 도시 포츠담에 간 적이 있었다. 관광안내서를 손에 쥐고 걷고 걸어 찾아간 곳은 세실리안호프 궁전이었다. 세실리안호프 궁전은 궁전이라기보다는 아담한 별장처럼 보였다. 궁전이 주는 위압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아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나..
씨네마 에세이 : 영화 속에 그려진 미국, 반미 그리고 전쟁 미래의 승리는 더 잔인한 자의 것인가? 곽영진 (영화평론가) 지금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위기의 진원지로서 초미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는 뉴스거리는 이라크 위기와 북한 핵 문제이다. 역사상 고대 로마와 중세의 몽고․사라센 제국이 지녔던 위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전 세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 그러나 너무 강하면 휘거나 부러지는 게 세상의 법칙이라던가. 이 나라의 일방주의는 월남전 이래 최대의 반전 운동과 ‘춥고 배고픈 작은 나라’인 북한의 거센 도전을 맞아 궁지에 몰리고 있다. 9․11 사태 당시 뜻밖에도 반(反)테러를 천명함으로써 아랍 정서에 배치되는 ‘친미적’ 제스처를 취한 북한이었건만…. 정세는 급변하여 이제 미국은 ..
노동해방의 바윗물 김금수(金錦守) 2 『발이 저리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 정보부 사람들이 한 말이었다. 「한국노총」에 들어가는 골칫거리를 놓고 『밥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운을 떠봤더니, 되묻던 말이었다. 그때에 마흔 줄에 접어든 김금수가 한 대답이 이러하였다. 『발만 저린 게 아니라 온몸이 다 저리다. 당신들이 하는 살인적 고문 앞에서 발 안저릴 사람이 있겠느냐?』 수많은 선배와 동무와 후배들이 죽어나오고 병신 되어 나오는 정보부 수사관들 앞에서 그런 당찬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철같은 믿음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암장」때 읽었던 레닌의 말이 그 믿음의 뿌리였다. 『인민해방투쟁은 기본계급을 그 밑뿌리로 한 대중토대가 있어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의 집단인 어용노동..
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2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학년에 편입한 일본육사를 3등으로 졸업한 황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곧 박정희(朴正熙)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해 11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동아일보 권오기(權五琦), 조선일보 김인호(金寅昊) 기자와 함께였는데, 이승만(李承晩)정권 때의 부패 타락한 기자는 배제한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의 느낌을 『역정(歷程)』에서 읽어본다. 특파원들의 도움을 받는 다른 신문․통신사들과는 달리 단기필마로 고군분투하던 합동통신 리영희 기자가 보고 들은 박정희․케네디 회담의 내용은 참혹한 것이었다. 회담의 정치적 효과를 정책적으로 과장해서 브리핑한 백악관 공보비서 ..
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1 글씨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삐뚤빼뚤 그러나 꾹꾹 힘주어 눌러 쓴 리영희(李泳禧)선생의 엽서를 받은 것은 작년 5월이었다. 많이 모자라는 소설명색 ‘꿈’을 보내드렸던 것인데, 풍타낭타(風打浪打) 떠돌아 다니느라 선생이 풍 맞으신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 중생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큰일났구나.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사상의 길라잡이가 쓰러지시다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싹쓸바람 몰려오던 저 조선조말 그 시절처럼 다시 미일중러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이 땅의 중생들은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인가. 뉘 있어 사상의 죽비(竹篦)를 내려칠 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보는 통찰력이 없습니다. 여중생 학살문제만 해도 모두들 행정협정 개정문..
조한알 장일순 2 흑백이 없는 세상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이데올로기싸움이 막을 내리면서 이드거니 미루어 짐작하고 내다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 남은 것은 오로지 경제가치 뿐. 돈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자본만능의 막세상에 사람들은 허둥지둥하며 막대 잃은 장님처럼 갈 곳을 모른다. 갈 곳이 없다. 「컴퓨터」와 「디엔에이」로 상징되는 선천문명의 대마루판 앞에서 꿈도 없고 환상도 없으니, 가보고 싶은 곳 또한 없는 것이다. 왜 사는가? 튼튼한 몸으로 오래오래 보람차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골칫거리가 있다. 생때같은 몸뚱이로 오래오래 흐뭇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 모두의 바램이지만 이것..
조한알 장일순(張壹淳) 1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곤드레만드레한 새벽 몰록 잠이 깨었을 때처럼 목타는 안타까움으로 풀잎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떠올립니다. 이 살터 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오면서 눈앞은 또 부옇게 흐려옵니다. 저만큼 별이 보입니다.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린 사회주의국가들의 좌절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전제로 한 사회주의사상의 끝장으로 볼 수 없듯이, 민주주의 건설의 역사는 아직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꿈을 이뤄내고자 하는 아아라한 길에서 안달할 것은 없겠지요. 사람이라는 이름의 중생은 궁극적으로 존재입니다. 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을 꿈꿀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