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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조한알 장일순(張壹淳) 1 본문

인물/열사 이야기

조한알 장일순(張壹淳) 1

기념사업회 2002. 9. 1. 17:09

조한알 장일순(張壹淳) 1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곤드레만드레한 새벽 몰록 잠이 깨었을 때처럼 목타는 안타까움으로 풀잎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떠올립니다. 이 살터 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오면서 눈앞은 또 부옇게 흐려옵니다.

저만큼 별이 보입니다.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린 사회주의국가들의 좌절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전제로 한 사회주의사상의 끝장으로 볼 수 없듯이, 민주주의 건설의 역사는 아직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꿈을 이뤄내고자 하는 아아라한 길에서 안달할 것은 없겠지요. 사람이라는 이름의 중생은 궁극적으로 존재입니다. 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을 꿈꿀 수밖에 없는 신령한 생명체이므로 만물의 영장이 되는 것입니다. 언뜻 뒷걸음질 치는 것 같고 먼 길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며 마침내는 그러므로 사람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끼고 돌아가고 산을 만나면 두 팔로 보듬어 안고 함께 가며, 가시철망 시멘콘크리트를 만나면 땅 속 깊이 슴배이어 마침내는 이윽고 콸콸 촤르르 흘러 난바다로 합수쳐나가는 물처럼, 그렇게 시나브로 가야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진보가 있으면 반동이 있다는 것은 역사발전의 필연인 것인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비롯한 것에 지나지 않는 민주화시대가 보수회귀의 맞바람을 맞게 되는 것은 반드시 겪어야 될 통과제의가 되겠습니다만,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화를 위하여 몸을 던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일제시대와 자유당독재시절까지는 아직 덮어두더라도 군사깡패독재의 칼날 위를 맨발로 건너온 이들이 있습니다. 역사의 강물 속으로 꽃잎처럼 떨어져간 이들도 있고 나이갓수가 차 이뉘를 떠난 이들도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묵묵히 움직이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한 자루 횃불이 되어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었고 또 열어가고 있는 역사의 길라잡이들입니다. 횃불을 든 사람들은 찾아나서는 까닭이 참으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다운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이들의 북돋움과 가르침을 바랍니다.

 

선생님 가시고

선생님 거니시던 뜨락 뒤편의

대순에 앉아 비춰지는 가슴들어

하늘을 본다

밤 어두워 하늘 보이지 않는데

불빛에 비친 나뭇잎새 참 푸르구나

선생님 가신 자리 남겨진 나뭇잎새

시리도록 푸르구나

(………)

一微塵中 含十方이라

一粟子속에도 온 세상 다 들어있음이니

선생님 가시고

빈 뜨락에 앉아

이 밤 선생님 이야기 새로이 듣노라니

사위어 가던 가슴마다에 잎새 푸른

싱그런 나무 한 그루씩 돋는구나

거기서 선생님 빙그레 웃고 계시는 구나

-이병철의 <무위당 일속자 선생님을 보내며>에서-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또 이슬방울과도 같은 게 하늘 밑에 벌레들의 죽살이판 이라던 금강경(金剛經)의 말씀은 정녕 진언(眞言)인 것인가.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달통하여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 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 한 포기 산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 -김지하의 시<말씀>에서」

이 땅보탬 되신 지 하마 8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캄캄하다.

조한알 선생과의 첫 만남은 글씨로부터 비롯되니, 또한 전정(前定)된 연분이었던가. 선사(仙槎)의 처소처럼 소조(蕭條)한 시인의 백방(白房)벽에 걸려 있는 글씨가 있었다. 전아한 행서체(行書體)로 된 <天山遁>. 청강(淸江)이라는 아호가 씌어 있었다. 하늘과 산은 스스로 그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역(易)에 나오는 잠언(箴言)이었다. 세상이 악하여 소인배들이 득세할 적에는 그 몸을 엄하게 가져 소인배들에게 곁을 주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무문관(無門關)에서 막 나와 창황랑조하던 김지하 시인한테 가르쳐 준 것이 문인화(文人畵)였다. 문인화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난(蘭)이었고 난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표연란(飄然蘭)이었다. 쓰러질 듯 일어서고 일어선 듯 쓰러지는 가 싶다가 욜그랑살그랑 다시 또 일어서는 난의 섬세한 몸맨드리를 한 붓으로 치게 한 것은 바람을 따라 쓰러졌다가 바람을 따라 일어서는 오묘부사의(奧妙不思議)한 ‘마음’ 잡아보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곧게 뻗쳐만 가는 ‘혁명시인’의 혁명방법론을 다스려주려는 선교방편(善巧方便)이었던 것이다. ‘조화롭게 살려내는 것이 운동’이라는 유명한 명제가 나오게 되는 뒷그림이다. 선생은 표연란의 국수(國手)였다. 판교(板橋)와 소남(所南)의 법통을 받아 완당(阮堂)과 석파(石坡)와 운미(雲媚)를 이어 명품을 남긴 분이다. 글씨도 그렇거니와 ‘조한알란’에 대해서는 그림하는 동네에서는 깊은 길닦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순일곱 한평생을 사는 동안 손목잡아 무릎공부를 시킨 이는 할아버지 여운(旅雲) 장경호(張慶浩)와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선생이다. 두 어른한테서 글씨와 그림을 배웠으며 사물과 현상 그리고 역사와 현실을 올바르게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었다. 다섯 살적부터 열다섯 살까지 한학을 하며 매일 신문지가 까매지도록 글씨를 썼는데, ‘먹은 새(鳥) 힘으로 갈고 붓은 황소힘으로 쥐라’던 할아버지였다. 차강 선생은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장군 밑에서 의병투쟁을 하다가 평창 도암에 낙향하여 묵객(墨客)으로 풍타낭타(風打浪打)하며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던 우국지사였다.

원주에 가면 <무위당 장일순선생을 기리는 모임>이 잇다. <장기모>에서 추린 해적이를 본다.

1928년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서 태어나 1940년 원주국민학교를 마친 다음 배재고등학교를 나왔으며 1944년 경성공업전문학교(현 서울공대 전신)에 입학하였으나 해방 후 미군대령의 총장취임을 핵심으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대한 반대투쟁의 주요 참여자로 지목되어 제적되었다. 194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전쟁으로 군에 입대하여 통역관으로 활동하던 중 제대하여 원주로 돌아와 줄곧 원주에서 생활하였다.

1954년 학교법인 대성학원(大成學院)을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는데 학교명을 대성이라 하였음은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선생이 설립한 바 있는 대성학교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함이었고, 교훈을 ‘참되자’라 하여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일인일기 교육을 하여 오늘의 대성학교가 있게 하였다.

제4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낙선하였고, 4.19혁명 후 실시된 제5대 민의원선거에 원주시에서 사회대중당으로 출마하여 낙선한 바 있는데, 이때 원성군에서는 서상일(徐相日)이 총재이던 사회대중당 간사장 윤길중(尹吉重)이 당선되었다. 5.16군사반란이 일어나면서 중립화통일론을 주장하던 혁신정당 계열 인사들을 체포할 때 7년 언도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춘천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룬 바 있다. 출옥 후 다시 대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나 1965년 4월 2일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이 고등학생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한일굴욕외교 반대 시위를 벌이자 이사장직을 박탈당하였고, 정치정화법과 사회안전법에 묶인데다 집앞에 파출소를 세워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자 칩거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는 한편 서화의 세계로 숨어들게 된다.

여기서부터 원주는 지역자치운동의 첫 점이 된다. 1965년 설립된 천주교 원주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지학순(池學淳)주교와 만나 교육사업, 재해대책사업을 통한 농어민과 광산노동자들의 의식화교육에 힘쓰는 한편 풀잎사람들에게 자주적이고 자립적이며 그리고 협동적인 삶을 일구어나가게끔 김지하․박재일․이창복 등 운동의 지도자들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운동을 아우르는 중심사상으로 간추려낸 것이 ‘생명사상’이었고 이것은 스스로를 한 알의 작은 좁쌀알로 낮추었던 말년의 아호 조한알(一粟子)로 드러난다.

장기모에서 애쓰시는 분들은 해야될 일이 많다. 생명사상을 알짬으로 한 생명운동이야 땅속으로 물 스며들 듯 장판지에 들기름 배듯, 문창호지에 놀 배듯 시나브로 슴배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므로 접어두기로 하고, 올바르게 밝혀 올곧게 이어짐으로써 살아있는 역사가 되게 해야 할 어섯이 많다는 생각이다.

가장 애바쁘면서도 종요로운 알짬이 해방 직후부터 5.16을 당하여 ‘천산둔(天山遁)’하기 까지 거쳐온 길이다. 더덜이 없이 증언해 줄 노선배들이 세상을 뜨고 계시기 때문이다. 몽양(夢陽)의 제자로 입문하여 사회주의 사상에 눈 뜨게 되는 과정과 죽산(竹山)과의 이음고리가 맨먼저 애바삐 밝혀져야 하고, 가학(家學)으로 몸밴 유가철학(儒家哲學)과 가톨릭과의 이음고리, 유학(儒學)과 동학(東學)의 이음고리, 동학과 가톨릭과의 이음고리, 유학과 코뮤니즘과의 이음고리, 동학과 코뮤니즘과의 이음고리, 동학과 주체철학과의 이음고리, 귀독반정(歸督反正)하게 되는 과정, 사회대중당으로 대표되는 4.19직후 혁신정당과 몽양․죽산과의 이음고리, 깊이 들어갔던 것으로 보이는 간디즘과 코뮤니즘과의 이음고리, 동학과 민족문제, 계급문제와의 이음고리, 동학 가운데서도 해월(海月)의 ‘밥사상’과 민족문제를 넘어선 인류문제․지구문제․생태계문제와의 이음고리….

‘장기모’는 할 일이 태산같다. 기념관을 짓고 학교를 세우는 것도 대모하지만 가장 애바쁜 것이 선생의 사상철학을 일매지게 간추려내는 일이다. 그것이 참으로 올곧게 ‘무의당 장일순 선생을 기리는’ 일이다. 우리시대의 마지막 ‘도덕정치가’요 마지막 ‘초야서가(草野書家)’요 마지막 ‘문인화가’였던 선생의 예술세계를 안받침하고 있는 ‘조한알사상’의 참모습을 밝혀내어 인류절멸의 위기에 처한 이 시대 중생들에게 보여줘야 된다.

선생은 글을 남기지 않은 분이다.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하시었다. 석가도 예수도 공자도 해월도 그리고 또 성명삼자까지도 남기지 않고 간 많은 선철(先哲)들이 글을 남기지 않았으니,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이치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평론>을 하는 김종철(金鍾哲)교수가 선생의 말씀을 모아 엮어낸 ‘나락 한 알속의 우주’라는 육성모음이 있고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풀어말씀한 것을 이현주(李賢周)목사가 였던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는 끝맺지 못한 채로이다.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풀 하나 돌 하나 벌레 하나를 보았을 때 함부로 꺽지 않고 함부로 살생하지 않고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 말이며 그것들 일체가 이용의 대상이 아니란 것입니다. 10년 전 미국의 젊은 친구들이 한국에 왔는데 마침 돌아가신 함석헌옹이 원주에 가서 장일순씨를 만나보라 해서 찾아왔기에 그 미국사람 보고 너희 나라에서 달나라 간사람 있지 하고 물으니까 암스토롱이 갔었다고 하기에 그가 달나라에 가서 성조기 꽂고 왔지 했드니 그렇습니다 하길래 그러면 그 달이 미국달이 되느냐 그게 바로 제국주의야, 내가 먼저 보고 내가 가질 수 있다는 태도 말이지, 미국이 세계에서 대국을 자랑하고 계속 영광을 누리겠다고 하면 그런 태도 가지고 되겠느냐 이말이야. 그 달은 일체중생의 살아있는 유정(有情)과 무정물(無情物)지도 다 함께 즐기는 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쟁의식속에서만 살고 있으며 또 사회가 경쟁을 촉구하고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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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조선말 풀이]

∘몰록 : 문득. 갑자기. 단박에. 점차적인 수행과정을 거치지 않고 화두를 타파하여 단박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선가(禪家)의 문자.

∘살터 : 대자연.

∘아아라하다 : 아득하다. 까마득하다. ‘아스라하다’의 본딧말.

∘슴배이다 : 스며들어 젖어들다.

∘난바다 : 뭍에서 멀리 떠나 자유로운 바다

∘나이갓수 : 수명

∘이뉘 : 이 세상. 이승.

∘길라잡이 : 남의 앞장을 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 길나장이.

∘하늘 밑에 벌레 : 사람

∘죽살이판 : 생사판. 죽고사는 판.

∘땅보탬 : 죽음.

∘하마 : 벌써.

∘욜그랑살그랑 : 욜랑거리며 살랑거리는 모양과 태도.

∘뒷그림 : 배경. 밑그림. 뒷경치.

∘갈닦음: 연구. 따짐. 파고듦. 캠. 팜. 마음씀.

∘해적이 : 연보

∘첫점: 출발점

∘알짬 : 여럿 가운데 가장 요긴한 대목.

∘어섯 : 부분. 조각. 갈래. 곳

∘애바쁘다 : 시급하다.

∘더덜이 : 가감

∘이음고리 : 관계. 아랑곳. 걸림. 까닭. 사이. 손.

∘귀독반정 : 불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가는 것.

∘대모하다 : 줄거리가 되게 중요하다.

∘일매지다 : 죄다 가지런하다. 모두가 고르고 비슷하다.

 


글_ 김성동

1947년 충남 보령 출생

1966 불교 사문으로 입산수도

1975 주간종교지[종교소설현상모집]당선

1978 한국문학신인상에중편[만다란]당선

1979 [만다란]을 장편으로 개작출간

저서 창작집 ‘오막살이 집한채’, ‘피안새’

장편소설 ‘길’ ‘만다라’ ‘집’ ‘국수’ 등

산문집 ‘생명기행’ ‘미륵의 세상 죽의 나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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