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정여행 1

여행은 운동이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 여행인문학과 만나기 지난달 15일 저녁, 마포구 민중의 집 좁은 강의실에서는 ‘여행인문학’이라는 생소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선풍기 바람에 겨우 더위를 식혀야 했지만 3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제주올레라는 고유명사가 된 제주도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의 강의는 마치 그와 함께 산티아고를, 제주 올레길을 걷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간절히 열망하면 떠나게 되어 있고, 떠나면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을 화두처럼 남기며 강의는 끝이 났지만, 강의실을 나온 발걸음은 어디든 오래 오래 걷고 싶어졌다. ‘여행인문학’ 여행에 인문학을 갖다 붙인 이 독특한 강의를 기획한 이매진피스의 이혜영 씨(38)를 만났다. 그가 뗀 첫마디는 ‘여행은 운동이다!’였다. 운동? 여행은 시간이든 돈이든 여유있는 자만이 누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라고 여겼는데 뜻밖의 말이었다. “여행은 매체나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현장을 보는 거잖아요. 세상을 직접 만나고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행이야말로 중요한 운동의 영역이 될 수 있죠.” 그는 한 예로 팔레스타인으로 추수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려줬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올리브 경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올리브 숲을 파괴하고 있다고 한다. 올리브 숲을 파괴해 그 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뿌리 뽑기 위해서였다. 올리브 추수 기간이 되면 이스라엘은 총을 쏘며 추수를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올리브 추수여행은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뒤섞여 올리브를 따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스라엘군은 더 이상 올리브 숲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게 되었다. 총성이 울리던 올리브 숲에 평화와 희망의 웃음소리가 번져갔다. 미국인들이 쿠바를 여행할 수 없도록 한 미국의 관광봉쇄 정책에 반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쿠바를 여행하고 쿠바의 예술과 유기농업, 아름다운 자연 등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사람들의 얘기도 흥미로웠다. 이처럼 여행은 평화에 대해 잘못된 국제정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여행은 엄청난 가치가 포함된 행동’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 여행인문학 강좌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제가 제법 무겁지만 여행과 인권, 여행과 환경, 여행과 정치, 여행과 경제 등 인문학적 분석 기준으로 여행이 분석이 되고 여행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은 개인의 취미이고 개인적 활동이지만 여행 산업이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구조는 정치, 경제, 인권 등 다양한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만큼 여행을 바라볼 때 인문학적인 도구들이 현실을 직시하는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가능하면 친환경적이고 가능하면 현지인과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숙소나 식사를 이용할 때 가능한 현지인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게끔 하는 데 공정여행의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주제가 있는 여행이에요. 패키지에 묻혀 따라다니기 바쁜 여행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여행을 기획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그리고 돌아와 내 삶에도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그런 여행이 되길 바래요.” 그의 바램처럼 올 여름에는 여행을 통해 삶의 작은 변화를 실천해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글 양지연 | 사진제공 이매진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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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불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세상 "공정여행" 旅行(여행):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객지로 나다니는 일 公正(공정): 공평하고 올바름 공정여행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다가왔던 이미지는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조합이었다. 하기야 ‘공정무역’이라는 대안적 방식에 대해 알고 그 취지에 공감하여, 활동하게 된 것도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공정’이란 접두어가 붙은 이 새로운 개념이 생소한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 아시안브릿지 필리핀 게스트하우스에 모두가 모여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은 ‘여행이란 무엇인가?’였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대한 낯선 느낌과의 만남, 그것을 낳은 여행지의 ‘다름’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돌이켜 보건대 나에게 이번 여행은 ‘다름’과 더불어 그 다름에 대한 ‘동질성’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이 대단한 것을 배우거나, 삶의 가치관을 단숨에 바꿀 정도의 ‘충격적인 계기’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공정여행에 대해 접했을 때, 그저 사전적 의미의 조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의 인식을 깨고 이제 여러 현상들에 대해 한번쯤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나에게 선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란 작은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여행하는 내내 되도록 현지인이 이용하는 식당과 숙소, 교통수단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끼리만 즐기는 배타적 여행을 배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현지와 친해질 수 있었고 까무잡잡한 동남아시아 사람들로 대표되는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조금이라도 깨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내가 자원봉사로 일하는 아름다운 가게 주변에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온다. 그들은 다른 한국 손님들과 다름없이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묻거나 불만사항 등을 이야기하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물건을 산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그들의 생김새와 어눌한 한국어만 듣고는 그들이 최근 도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냥 신경을 곤두세울 때가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적으로 풍족한 국가의 우월감을 즐긴 것이 아닌가 싶다. 깨고 싶어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 내 마음에 뿌리 깊게 박힌 천박한 우쭐함은 필리핀 사람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반성과 부끄러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자연을 보호하자는 이번 공정여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급속히 무너져가는 ‘계단식 논’을 복원하고, 사라져가는 ‘뭄바키(제사장)’와 함께 축제를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그 곳 시민단체와 마을 사람들을 돕는 ‘일회성의 도움’으로 끝나지 않고 고민과 토론을 통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있었다는 게 이번 공정여행의 매력 중 하나였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단기 해외 자원봉사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스펙’의 한 줄로 전락해버린 것은 이런 ‘고민의 시간’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백화점 ‘몰 오브 아시아(Mall of Asia)’ 와 세계 3대 빈민 지역으로 꼽히는 ‘바세코(Baseco)’가 10km를 사이에 두고 공존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극단적 폐해를 극명히 보여주는 슬픈 그림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이 두 곳을 모두 돌아보면서 우리는 여행 내내 고민했던 질문에 답을 구하게 된다. 수 천만 명 중 겨우 ‘나 하나’가 이런 최악의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무엇일가? 그것은 ‘행동하는 용기’이다. 공동의 뜻이 연대되어 발휘할 수 있는 변화의 힘을 믿는 것이다. 아이와 여성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상품을 기꺼이 불매하는 것, 지역의 재래시장과 유통구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진입을 저지하는 것, 현명한 소비자와 시민으로서의 ‘나’의 결심과 행동. 이런 개인들이 만드는 변화 속에서 ‘공정(公正)함’을 이루어 낼 수 있고, 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마지막 수료식에서 코디네이터 고두환 씨는 공정여행의 ‘즐거운 불편’을 언급했다. 여행을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이제 ‘즐거운 불편’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에서도 기꺼이 이 ‘즐거운 불편’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개개의 연대가 만들어 내는 변화’를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 신소예 | 고려대 경제대학원 석사과정 - 공감만세 필리핀 여름 공정여행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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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지리산마인드힐링여행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에 실린 시들을 천천히 기억하며 걸어갔던 6월의 지리산을 7월에 다시 간다.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산청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점심 먹고 느지막이 시작하는 도보여행이기 때문에 수철마을에서 시작해 거꾸로 까만 화살표를 따라 방곡마을까지 간다. 18명의 여자들이 지리산 둘레길 마인드힐링 명상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마인드힐링 명상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자기 안의 긍정성을 돋우는 편안하고 행복한 명상이다. 힘겹게 결가부좌를 틀지 않으며 오랜 시간 호흡을 지켜보게 하지 않는다. 그저 온전한 나를 누리며 행복하게 마음을 내려놓는 명상이다. 심지어 명상 도보 여행임에랴. 햇살이 뜨거운 지리산 길에 나선다. 걷기 시작한 지 십분도 지나지 않아 등줄기에 땀이 차오른다. 물병이 비기 시작한다. 시멘트로 포장된 그늘도 없는 오르막길을 걸으며 고동재까지 가기만 하면 숲길이 시작된다고, 그러면 바로 새소리와 바람소리로 샤워를 하게 될 거라고 말해 주지만 더운 길은 의외로 길다.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뜨겁게 타오른다. 얼마나 남았어요? 어디가 고동재예요? 아무리 물어봤자 한걸음씩 걷지 않는 한 길은 그냥 줄어들진 않는다. 그 사이에 줄딸기 밭을 지나고 고사리 밭을 지난다. 걸어가며 한 알씩 딸기를 입에 넣는 ‘여자 어른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 한량없다. 드디어 숲길이 시작되는 고동재다. 고동재부터 쌍재까지 1.8킬로미터.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른다. “혼자 가기 좋은 길이에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바람 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천천히 걸어가세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사람들이 열 걸음 넘게 떨어져 아무 말 없이 걸어간다. 그 숲에 들어서자마자 바람 소리가 마치 바닷가 파도소리처럼 쏴아, 쏴아 불어온다. 새소리 천지다. 두 팔을 벌리고 티셔츠 앞섶을 열고 욕심껏 바람을 맞는다. 앞에서 걸어가는 여자들의 마음이 짚이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무언가’ 생각이 들었겠지, 군대 간 아들, 고 3딸, 속상하게 하는 남편, 삐걱거리는 회사 일들, 아프기 시작하는 부모님. 복잡하고 고단하리라. 그녀들이 각자의 생각 속으로, 마음속으로 마치 숲 속으로 들어가듯 깊숙이 들어간다. 개망초 꽃을 꽂은 꽃 밥상을 받고 나물과 채소로 풍성한 저녁밥을 먹는다. 꿀맛이란 말이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이다. 시간이라도 맞춘 것처럼 비가 내리고 사위가 어둡게 내려앉는다. 비 내리는 아침, ‘생명의 소리’에 맞추어 108배 절 명상을 한다. 기독교인이건 불교인이건 천주교인이건 그저 지금 여기, 나와 모든 생명을 향해 감사의 절을 올린다. 빗소리 때문에 절 한번 올릴 때마다 새기는 구절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마음으로 듣고 헤아릴 수밖에. 각각의 색깔로 우비를 입고 폭우 속으로 길을 나선다. 찻길을 피해, 농로를 따라, 마을길을 걸어 빗속으로 주저 없이 걸어가는 저 앞의 여자들을 향해 말을 건네 본다. “왜 그렇게 걸어요? 이 빗속에.” “너무 많이 걷는 거 아닌가요? 그만 걸어도 되지 않아요?” 신발은 이미 젖은 지 오래, 발가락들이 물 젖은 신발 속에서 쪼글쪼글 불어 가고 있을 터였다. 그립다. 대상도 모를 촉촉한 그리움으로 온 몸이 젖는다. 세 시간을 걸었을까. 비는 그치지 않고 비에 씻긴 온갖 풀들이, 벼들이, 밭의 식물들이 신나서 춤을 추다 지친 것처럼 조용하다. 따뜻한 커피와 차 한 잔이 그리워 찾아간 천막 같은 블루베리 농사짓는 집에서 이 여행의 정점 같은 노래와 시들이 터져 나왔다. 각자의 가슴 마다 시 한편을, 노래 한곡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마치 기적 같다. 한 소절씩 나누어 따라 외웠다. 서로 눈을 바라보며. 콧잔등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보며. “나 하나 꽃피어/풀밭이 달라지겠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결국 풀밭은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글 권혁란 | 전<이프>편집장. 새세상여성연합 여행디렉터 - 새세상여성연합 지리산 둘레길 마인드 힐링 명상여행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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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텡그리의 하늘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 내몽골 공정여행 # 손을 내밀어 이웃과 관계 맺기 출발하기 전 가진 여행준비모임에서 반복된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손을 내밀어 타인과 관계 맺기였다. 손을 내밀 대상은 현지에 사는 주민일 수도 있고 버스기사일 수도 있으며 공정여행을 선택한 일행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삶의 환경이 어느 정도 고정된 뒤에 인간관계를 확장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베이징에서 타이푸스치 초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참가자들의 여행 동기와 약간은 들뜬 기대감을 접하면서 이렇게 서로 관계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경계하는 마음과 함께 조금씩 기대감이 일었다. 모락모락 일어나는 기대감이 경계심을 누른 순간은 늦은 밤 초원에 도착하자 환영의 뜻으로 건네받은 하닥을 목에 두르고 독한 마유주를 마셔버린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학용품 전달과 몽골학교 학생들의 노래와 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공정여행도 참가비의 일 퍼센트를 모아 학용품을 마련해왔다. 방학이어서 작년에는 선생님만 오셨었는데, 이번에는 학생들도 함께 와서 준비한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 선물이 거듭되면서 진정성이 전달되었나 보다. 저녁을 먹고 세수를 하고 나니, 전통 의상을 입은 몽골 아이들이 여기 저기 활발하게 뛰어 다닌다. 그 중에 가장 어린 쌍둥이 소년 둘이 앉아 낯선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기에 사진을 같이 찍자고 말을 걸었더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피한다. 몽골어로 안녕이란 말이 ‘세노’라 하기에 아이들에게 우리 노래 ‘세노야’를 불러 주면서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이 쌍둥이는 저녁 공연에서 몽골의 전통씨름 ‘부흐’를 춤으로 표현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의 신나는 몽골 춤과 노래가 끝날 무렵 쌍둥이 중 한 아이가 갑자기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노래로 통한 것인가? 과자를 주어도 절대 받지 않고 고개를 뒤로 빼더니 짧은 시간이나마 얼굴이 익어서인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음이 허전했다. 좀 더 몽골어를 할 줄 안다면, 중국어를 할 줄 안다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두 상자의 학용품에 불과했는데,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들 참 많은 분들이 오셔서 환대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 오보에 올라 텡그리에게 기도하다 산등성이에 있는 오보(돌탑)까지 걸었다. 가는 길에 돌을 하나씩 주워서 오보까지 걸어 올라갔다. 오보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짙푸른 초록의 물결이 만드는 생동감, 뭉게구름 끊임없이 피고 지는 파란 하늘의 개방감, 묵었던 걱정과 근심을 잔잔히 털어버리도록 격려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외국 여행에서 그 나라의 아름다움은 배움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갖고 관습적인 가치 판단을 극복할 때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미학은 서구와 달리 인위적인 형상화보다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에 색과 생기를 더하는’ 무위의 존재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같은 풍경의 특징을 발견하면 여행자는 ‘가슴이 사무치는’ 감동을 거듭하게 되며 비로소 우리의 이웃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사람의 취향과 문화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평등한 것이다. 사람이 풍경이 되는 여행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남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현지 주민과 이해하고 마음을 여는 교류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여행자는 그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비범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선물과 공연을 통해 관계 맺기를 지속하고 있는 내몽골 공정여행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 준 계기가 되었다. 텡그리는 몽골인의 하느님이다. 장룽의 소설 <늑대 토템>에는, 죽은 뒤 텡그리로 돌아가라고 늑대가 있는 초원에 시체를 던져놓고 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아직도 초원 깊숙이 사는 몽골인들은 그리 장례를 지낸다고 한다. 오보의 돌무덤에 주워온 돌을 얹고, 오른편으로 세바퀴 돌면서 몽골인의 하느님 텡그리에게 소원을 빌었다. 여기 이 초원에 비가 많이 오기를, 몽골의 아이들이 바라는 것들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이 초원에 다시 올 수 있기를…….

글 김대규 | 서울 디지털대학교 법학전공교수 - 국제민주연대 내몽골 공정여행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