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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을 찾아서 사진가 성남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15

나이 들어 사회생활을 하다가 만난 사람을 동료 또는 선후배로 10여 년 넘게 가깝게 지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사진판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성남훈이 그런 경우입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만난 후로 동료로서 선배 사진가로서 그는 저뿐 아니라 많은 사진가들의 귀감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남훈이 프랑스에서 사진을 시작한 후 15년의 긴 장정 끝에 내놓는 이번 사진은 특별합니다.


199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취재한 루마니아 집시들의 사진으로 서울에 있던 <파인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만 해도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즘 콘테스트인 <월드프레스포토> 수상작 작품집(1994년)을 통해 그의 이름을 접하고는 ‘아!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해외에서 다큐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구나’했습니다. 그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만난 그는 특별했습니다.


새까맣게 아래위로 검정색을 옷을 입고 등에는 배낭을 맨 작달막하고 통통한 사내가 내가 만나고 싶었던 바고 그 성남훈인가 했습니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참으로 아마추어틱하게 니콘 FM2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틈만 있으면 남대문의 빈대떡 집에서 동료 사진가들을 모아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술자리는 대부분 새벽별이 뜨는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그는 우리에게 참으로 신선한 사진들을 선보였습니다.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사진은 내전의 고통 속에 처한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내보이기도 했고, 아프리카의 르완다-자이르 내전에서는 이렇게 인간이 잔혹할 수 있을까하는 자괴심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외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작업한 사진들은 저를 포함해 많은 한국의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자극했습니다. 이제 국내 작업에 한정하지 않고 우리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마음껏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한때 방송이 해외 분쟁지역에 직접 뛰어든 동영상을 원할 때 성남훈은 한손에는 캐논 EOS1을 한손에는 소니 캠코더를 들고 뛴 적도 있습니다. 잡지 기고로는 도저히 취재비를 감당하지 못해 방송일까지 한 것이지요. 그렇게 어렵게 자신의 주제였던 ‘타의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덧 15년을 넘겼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의 사진 스케일이 세바스티앙 살가도 못지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진 정리는 여러 번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그것은 사진 출판의 부재였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고 그의 방대한 작업이 최근 선을 보였습니다. 15년 동안의 사진 기록을 모은 『UNROOTED, 유민의 땅』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야기 합니다. “앞으로 아트보다는 저널리즘에 천착하고자 한다면 분명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이 지금 나오게 된 이유도 어쩌면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15년 동안 단 한시도 인간과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진들이 없습니다. 또 앞으로 최소한 5년 동안 분명한 사진의 방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책 『UNROOTED, 유민의 땅』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저 자신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엽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웹진 이미지프레스 http://imagepress.net의 대표로 있다.
『실크로드 탐사』(생각의 나무),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동녘)등을 썼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등을 기획하고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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