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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하고 가장 보수적인 음악, 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 7. 25. 21:49

가장 흔하고 가장 보수적인 음악, 팝

글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bandobyul@hanmail.net

 


팝(Pop) 음악이라고 하면 대개 두 가지 개념을 떠올립니다. 먼저 한국의 음악, 그러니까 국내 음악 혹은 로컬 음악이라고 부르는, 국내에서 만든 음악이 아닌 해외의 대중음악을 우리는 팝이나 팝송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팝 음악이라고 하면 파퓰러(Popular) 음악, 즉 대중음악이라는 뜻인데도 1990년대 초반 정도까지는 해외의 대중음악만을 팝이라고 부르고, 한국의 대중음악은 그냥 대중가요, 가요, 유행가라고 불러왔습니다. 의미로 치자면 한국의 대중음악 역시 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영어와 한국어로 각각의 대중음악을 구분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외국의 대중음악은 팝이라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음악이고 우리의 대중음악은 질 낮은 유행가 정도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팝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는 가장 대중적인 스타일의 대중음악이라는 의미입니다. 록, 블루스, 재즈, 포크, 힙합 등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장르적이지 않으며 누구나 쉽게 좋아하고 따라할 수 있는 멜로디와 구조를 지닌 음악을 팝이라고 불러왔습니다. 특정 장르가 지니고 있는 장르적 치열성이 없고, 작가주의적 음악 같은 개성적인 사운드와 메시지도 없지만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쉬운 테마를 가진 음악, 그리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주로 팝이라고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팝은 대중적인 음악이고, 주류의 음악이고, 통속적인 음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당연히 가장 많은 이들이 좋아하면서도 왠지 개성이나 예술성은 떨어지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판매와 인기를 위해 많은 이들이 좋아하게 만든, 순수하지 못하고 수준이 높지 않은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을 좀 듣는다는 이들이나 고급한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팝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팝 음악은 10대나 20대의 소녀들에게 맞춰진 음악이라고 여겨졌고, 실제로 팝 음악의 주요한 소비층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음악 출판과 음반 레코딩에 기반한 음악산업이 본격화 된 이후, 특히 1950년대 이후 팝 음악은 로맨틱한 분위기나 빠른 비트로 소녀팬들을 공략하는 음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성의 보컬로 화음 위주의 음악을 들려주거나 젊은 층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춤곡을 선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음악으로 인기를 얻은 뮤지션들은 당대의 스타가 되었고 꺅꺅대는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곤 했습니다.




하지만 팝 음악이 수준이 낮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작가주의적 관점이거나 특정 장르 중심의 관점일 수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끈다는 것이, 특정 연령대와 특정 젠더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음악성이 낮아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혹은 해외에서 사랑받았던 수많은 팝들 중에는 대중음악의 어법과 메시지를 진화시킨 곡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시 들어보면 놀랄만큼 새롭고 트렌디하면서도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곡들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팝 음악에 대한 평가의 온도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음악이 취향과 세계관, 계급, 성차, 세대, 지역 등을 통해 해석되고 소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대중음악사에서 어떤 음악이 팝이었을까요? 앞서도 언급했듯 특정한 장르만을 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대체로 감성적인 사랑노래나 빠른 비트의 음악이 팝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감안해보면 우리가 흔히 발라드라고 부르는 느린 사랑노래나, 댄스음악이라고 부르는 비트 강한 음악이 팝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에서도 발라드와 댄스 음악이라는 통칭이 거의 모든 주류 대중음악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을 비추어보면 팝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 발라드나 댄스 음악 경향을 가진 팝의 주요한 양식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근대화와 맞물려 이식된 서양의 대중음악 양식은 그 이전까지 유지되었던 한국의 전통 음악 양식을 대체하거나 흡수하면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중 가장 먼저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 바로 일본의 엔카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지는 트로트입니다. 하지만 트로트는 한 때 세련되고 현대적인 음악으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차차 신파적이고 왜색적인 음악,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부 계층에게만 소구되는 음악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1960년대에 등장한 미국의 스탠다드 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급격히 미국화된 한국사회에서 미국은 가장 부강하고, 가장 세련된 대중문화를 생산하는 한국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군 클럽 등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적 음악의 감성과 어법을 익힌 뮤지션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손석우가 만들고 한명숙이 부른 <노란 샤쓰의 사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노래는 기존의 주류 음악이었던 트로트와는 다른 비트와 연주, 창법을 선보입니다. 트로트가 농촌의 감성을 껴안으며 서민화되었다면 스탠다드 팝은 미국적이며 도시적이고 낙관적인 감성을 받아들이며 중산층 이상의 음악으로 자리 잡습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지역에서 성장했고, 어떠한 계급적 지위를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1970년대에는 포크 음악이 잠시 팝의 지위를 가졌다면 1980년대에는 본격적인 팝 발라드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더욱 자본주의화되고 도시화된 한국 사회, 그리고 더욱 서구화된 한국사회에서는 트로트는 완전히 변방으로 몰렸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발라드였습니다. 물론 1980년대의 음악 경향을 한두 가지로 한정할 수는 없겠지만 1980년대 들어 이른바 팝 발라드라고 불리는 음악들이  매우 사랑받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이영훈과 콤비를 이뤘던 이문세가 있었고, 변진섭, 신승훈, 윤상, 이광조, 이상우, 이승철, 최성수 등 많은 가수들이 팝 발라드 곡들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가수들이 불렀던 곡들의 공통적인 정서는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정서입니다. 피아노와 현 중심의 연주와 격렬한 절정부를 가진 음악들은 사랑과 이별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매우 세밀하고 감성적으로 묘사합니다. 클래시컬한 연주와 시적인 노래들은 기존의 트로트 음악에 비해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주고, 담담한 포크 음악에 비해서는 훨씬 더 감정을 뒤흔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팝 발라드의 인기는 1990년대 초중반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로 한 일군의 댄스그룹들에게 양도됩니다. 이들은 힙합과 일렉트로닉에 기반한 음악으로 팝의 주도권을 팝 발라드에서 댄스 팝 음악으로 옮겨놓습니다. 에이치오티(H.O.T.), 젝스키스(Sechs Kies), 핑클(Fin.K.L), 에스이에스(S.E.S.)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들은 팝의 주도권을 10대 아이돌 그룹과 아이돌 팬으로 바꿔놓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케이팝(K Pop), 아이돌 팝 신화의 노둣돌을 놓았습니다. 댄스 팝은 1990년대 후반 조성모를 위시로 한 보컬리스트들에게 잠시 밀리기도 했지만 금세 다시 왕좌를 탈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팝 발라드는 알앤비 경향의 발라드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른바 소몰이 창법이라고 불리는 알앤비 스타일의 가요들은 맑은 목소리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발라드의 성향에 잘 어울렸고 금세 대세가 되었습니다. 반면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옥상달빛 등을 비롯한 몇 몇 인디 뮤지션들은 이문세, 윤상, 유희열, 윤종신으로 이어지는 팝 발라드를 계승하면서 고급스러운 팝 음악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댄스 팝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댄스 팝의 사운드를 진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 반면 팝 발라드 계열의 음악들은 약간의 음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정조와 어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발라드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보수성 때문일 것입니다. 발라드의 정조는 슬픔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일 뿐 그 슬픔을 극복하거나 슬픔의 힘으로 절망의 가치를 획득해내려 하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포즈를 취하면 될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발라드 음악은 기존의 틀 안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현실과 타협한다고 해야 할까요. 가장 덜 비판적이고 덜 저항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단지 가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지금 가장 보수적인 장르는 발라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았고 오래 사랑받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의 귀는 무척이나 보수적인데다 사람들 역시 음악에서 꼭 변화와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 같은 스타일만 반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최근 버스커 버스커(Busker Busker)나 로이킴 같은 어쿠스틱 팝이 인기를 끄는 것은 어떤 징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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