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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공부방에서 교육을 품다 쌀보리 공부방 지루한 장맛비가 도대체 앞으로의 날씨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횡성 가는 중앙고속도로는 2킬로미터에 한 번씩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비가 내린다. 그리고는 또 젖은 해가 뜬다. 취재 일정에 맞춰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인터넷 기상청 홈페이지를 수시로 드나들며 얻어낸 그나마 나은 날인데도 하늘은 도움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강원도 횡성, ‘쌀보리 공부방’에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 흘리며 벌겋게 달아 오른 채로 공부방에 들어온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보자 넙죽 인사를 한다. 들어오자마자 주방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은 마냥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선생님, 오늘 간식 뭐예요?” “오늘은 수박하고 ..
건강한 농민을 위한 건강한 약사들 이야기 약을 사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노인은 여직 젊은 약사와 이야기 중이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오래할까 자세히 들어보니 대부분 한평생 땅 파다 망가진 자신의 쇠한 몸 이야기뿐이다. 간혹 동네 어른 소식을 묻는 약사의 말에 노인은 그이도 어느 곳이 자신과 똑같이 아프다며 반색을 하기도 하고, 그제는 허리가 아팠고 어제는 몸 전체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오늘 새벽부터는 또 다른 곳이 아프다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또 그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약사의 모습이 도시 약국에서는 볼 수 없는 드문 풍경이다. 그리고는 못내 다 하지 못한 듯 아쉬운 표정으로 버스를 타러가야 한다며 노인은 한참 만에 짐 보따리를 들고 일어선다. 오늘은 홍천읍내 오일장이다. 농민을 위해 만든 농민약국 “..
지역문화운동을 아이들과 함께 그이가 걷는 길, 탈춤 봄 날씨가 요란하다. 바람 불다 비 내리고 다시 황사바람이 일고……. 계절상으로 보면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어 놀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지만 이런 변덕스런 날씨엔 노는 거 좋아하는 아이들도 난감할 것이다.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마을에는 바깥의 날씨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춤사위가 한창이다. “낙양~동천 이화~정” 덩더쿵 쿵덕! 장구를 치며 실내의 훈기로 얼굴이 상기된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아이들의 입 모양이 곧 따라붙는다. “낙양~동천 이화~정” 덩더쿵 쿵덕!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서 그런가 가까이서 지켜보던 아이 하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목에 잔뜩 핏대가 섰다. 그래도 저희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듯 추임새를 넣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요즘 ..
살아있는 글쓰기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모임 ‘구로’라는 지명은 서울의 한 자치구다. 그럼에도 ‘구로구’라는 지명보다는 ‘구로공단’이란 명칭으로 더 빨리 인식하는 것은 지난 85년 구로동맹파업과 87년 노동자대투쟁 등 활발한 노동활동의 근거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전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진보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삶창)이 구로에 있다는 것이 그다지 낫설지가 않다. 삶창에서 진행하는 르포 문학모임에 오늘 강사는 소설가 이인휘 씨다. 대 여섯 평 됨직한 작은 강의실에 앳된 대학생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얼굴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한다. 저녁 7시 40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