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성동 (4)
함께쓰는 민주주의
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2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학년에 편입한 일본육사를 3등으로 졸업한 황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곧 박정희(朴正熙)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해 11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동아일보 권오기(權五琦), 조선일보 김인호(金寅昊) 기자와 함께였는데, 이승만(李承晩)정권 때의 부패 타락한 기자는 배제한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의 느낌을 『역정(歷程)』에서 읽어본다. 특파원들의 도움을 받는 다른 신문․통신사들과는 달리 단기필마로 고군분투하던 합동통신 리영희 기자가 보고 들은 박정희․케네디 회담의 내용은 참혹한 것이었다. 회담의 정치적 효과를 정책적으로 과장해서 브리핑한 백악관 공보비서 ..
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1 글씨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삐뚤빼뚤 그러나 꾹꾹 힘주어 눌러 쓴 리영희(李泳禧)선생의 엽서를 받은 것은 작년 5월이었다. 많이 모자라는 소설명색 ‘꿈’을 보내드렸던 것인데, 풍타낭타(風打浪打) 떠돌아 다니느라 선생이 풍 맞으신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 중생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큰일났구나.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사상의 길라잡이가 쓰러지시다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싹쓸바람 몰려오던 저 조선조말 그 시절처럼 다시 미일중러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이 땅의 중생들은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인가. 뉘 있어 사상의 죽비(竹篦)를 내려칠 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보는 통찰력이 없습니다. 여중생 학살문제만 해도 모두들 행정협정 개정문..
조한알 장일순 2 흑백이 없는 세상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이데올로기싸움이 막을 내리면서 이드거니 미루어 짐작하고 내다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 남은 것은 오로지 경제가치 뿐. 돈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자본만능의 막세상에 사람들은 허둥지둥하며 막대 잃은 장님처럼 갈 곳을 모른다. 갈 곳이 없다. 「컴퓨터」와 「디엔에이」로 상징되는 선천문명의 대마루판 앞에서 꿈도 없고 환상도 없으니, 가보고 싶은 곳 또한 없는 것이다. 왜 사는가? 튼튼한 몸으로 오래오래 보람차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골칫거리가 있다. 생때같은 몸뚱이로 오래오래 흐뭇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 모두의 바램이지만 이것..
조한알 장일순(張壹淳) 1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곤드레만드레한 새벽 몰록 잠이 깨었을 때처럼 목타는 안타까움으로 풀잎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떠올립니다. 이 살터 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오면서 눈앞은 또 부옇게 흐려옵니다. 저만큼 별이 보입니다.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린 사회주의국가들의 좌절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전제로 한 사회주의사상의 끝장으로 볼 수 없듯이, 민주주의 건설의 역사는 아직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꿈을 이뤄내고자 하는 아아라한 길에서 안달할 것은 없겠지요. 사람이라는 이름의 중생은 궁극적으로 존재입니다. 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을 꿈꿀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