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기념관/역사기념관_해외 (20)
함께쓰는 민주주의
엘리스 아일랜드 이민사 박물관 유목의 세월을 기억하는 방 프랭크 맥코트 가족은, “자유의 여신상에 헬로’라고 인사하는 대신에, ‘굿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뉴욕 항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부루클린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이제 겨우 네 살, 그의 부모는 아이리쉬 이민세대였다. 대공황이 휩쓸던 1930년대, 뉴욕 슬럼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아일랜드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월이 흐른다. 갖은 고초 끝에 청년으로 성장한 프랭크는 풍운의 꿈을 안고 다시 뉴욕 행 증기선 호의 갑판 위에 서 있다. 드디어 희망의 횃불을 높이 쳐든 자유의 여신상이 점점 가까워온다. 이 이야기는 가난한 아이리쉬 가톨릭이었던 작가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의 자전적 성장 소설로, 1997년 퓰리처 문학상을 수상..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 더 이상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한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홀로코스트는 살아남은 자들을 구속하는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기억이다. 그것이 남긴 수많은 슬픔과 상처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항상 망각을 동반하는 선택적 작업이다. 망각 또한 기억의 한 형태인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망각되는가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미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의 문맥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으로 남은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이면서 현재이자 동시에 미래다..
기념관이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바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대개 기념관은 여러 자료들을 동원하여 그 기억을 만들어주지만, 자료만으로는 역사적 상상력을 증폭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료란 과거의 기억이고 증언이지만, 그것으로 역사적 체험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그 역사를 직접 살아보지 않은 후대들에게 기억을 살려내면서 역사적 인식으로 전환하기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후손들은 역사적 체험이 아닌 자료로 역사를 그려가야 하는데, 그 자체가 매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역사란 정확한 기록과 자료를 통해 가능하다지만, 그래서라도 여전히 기념관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역사적 체험에 준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기념관이 처한 난관인 것이다.그런 ..
- 설립목적 : 나치와 그들의 협력자들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함 - 설립시기 : 1993년 4월 개관 - 홈페이지 : www.ushmm.org ▷ 홀로코스트 대통령위원회 (1978. 11. 01) - 구성 (총 34인) : 의장 1인, 상원 5인, 하원 5인, 학계 7인, 법조 1인, 목사 1인, 랍비 2인, 생존자를 포함한 12인 - 조직 : 7개 하위준비위원회로 구성 기념관 및 기념물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 ; 중등교육과정 수행 준비위원회 ; 고등교육과정 수행 준비위원회 ; 기억의 날 행사 준비위원회 ; 홀로코스트 관련 유적지 현장답사 준비 위원회 ; 인권향상을 위한 준비위원회 ; 기금 마련 준비위원회 - 위원회를 지원할 27명의 자문단을 구성함 - 역할 : 홀로코스트 희생자들..
다하우 수용소 (KZ-Gedenkstaette Dachau) 주소 : 독일 뮌헨 다하우(http://www.kz-gedenkstaette-dachau.de/ ) - 1933년 3월 10일 독일에 만들어진 최초의 나치 집단수용소로 의학실험에 사용하기 위해 최초로 실험실을 세운 곳 - 아직도 철조망이 쳐져 있는 17만㎡의 수용소 자리에는 2채의 단층건물과 60여 채의 수용소 건물이 남아 있으며, 수용소의 하나뿐인 입구인 Jourhaus의 문앞에는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ARBEIT MACHT FREI' 문구가 걸려있다. 원래는 화가들이 즐겨 찾았던 작고 아름다운 마을 다하우에는 “제3제국”의 집단수용소가 들어서면서 “또 다른 다하우”가 생겨났다. 공포와 범죄와 절망의 기간이었던 그 때를 잊지 않기 위해서,..
- 명칭: 제국전쟁박물관 - 위치: 런던(본부) Lambeth Road London SE1 6HZ United Kingdom - Site: http://www.iwm.org.uk - 구성(locations) ① 런던(본부) ② 정부청사내 내각전쟁실(Cabinet War Rooms) ③ Cambridge의 IWM Duxford ④ 런던항에 정박해 있는 HMS Belfast호 ⑤ Trafford에 있는 IWM North - 1917. 기금조성 시작. - 1920. 박물관 및 그 운영위원회에 관한 법 제정. 크리스탈 궁전에서 개관. - 1924-1935. 부설 Imperial Institute와 함께 두 작은 진열실로 운영. - 1936. 건물이전개관 - 1939. 2차대전과 1914년 8월 이후 영연방회원국..
3) 남경대학살기념관 기념관의 명칭 :남경대학살기념관(침화일군남경대학살우난동포기념관) 기념관의 위치 : 중국 남경시 강동문 차정동가 195호 기념관의 규모 및 면적 : 3만 여 평 (1) 조성연혁 - 1985년 남경시에서 건립, 1985년과 1997년 2차에 걸쳐 개관 - 1차 완공 : 주 전시관, 계단, 자갈밭 및 조경, 기념부조벽, 유골전시관 완성 - 2차 완공 및 이후 : 통곡의 벽, 금릉겁난 상징공간, 동판조각로, 평화의 종 등 (2) 조성 배경 : 일본의 남경대학살을 증거하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관으로서 특히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의 평화 공세에 대응하는 중국의 평화추구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념관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부상하고 있는 기념관이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대규모 예산을 쏟아 대대..
기념관의 명칭 : 평화기념공원(Peace Memorial Park) 기념관의 위치 : 島市中中島町1-2 기념관의 규모 및 면적 : 평화기념공원 122,100㎡, 평화기념자료관 11,713㎡ 히로시마 평화문화센터 http://www.pcf.city.hiroshima.jp/hpcf/index.cgi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http://www.pcf.city.hiroshima.jp/ . 1945.8.6 히로시마 원폭투하 . 1949.8.6 주민투표 90% 이상의 지지를 얻어 히로시마기념도시건설법 제정 . 1952.3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에 항구평화를 기념하는 평화기념관, 평화기념자료관, 공회당, 원폭 위령비가 착공됨 . 1955. 평화기념관과 평화기념자료관이 개관 자료수집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남 . 19..
평화를 둘러싼 치열한 기억투쟁 -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 - 양금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예산팀 과거의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평가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집단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건을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지향이 상처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리한 면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불리한 면은 가능한 한 잊어버리거나 숨기려고 한다. 정치세력들 간의 기억과 망각을 둘러싼 이와 같은 갈등과 투쟁, 타협의 흐름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하여 왔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지상최대의 격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와 그 엄청난 희생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일본의 정치세력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평화’의 의피를 쓰고 치열하게 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