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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시] 여기 노래가 그리고 날개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12. 18:06

여기 노래가 그리고 날개가
-詩人 김남주 헌정 시집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여름이 되면 우리는 새삼 덥다고 불평이고 보양식을 찾거나 바다며 산으로 휴가를 떠난다. 뜨거움이 사라진 시대에 뜨거운 날씨만 남아 역시 무미건조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우리는 자연의 지속적이고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탄압에 맞서 얼음을 가득 채운 음료를 마시거나 에어컨을 틀거나 그것도 아님 연신 손부채질을 한다. 그렇다. 여름이 왔다.

나에게 항상 여름인 시인이 있다. 이승에는 없다. 그는 저 너머의 세상에 있다. 시인으로 혹은 전사(戰士)로 불린 사내, 목숨을 내건 투쟁과 영혼을 다한 시작(詩作)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 바로 김남주다. 스스로가 전사라고 굳게 외쳐왔던 시인. 그가 떠나고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변할 시간에 강산보다 많은 것이 억겁으로 변했지만, 강산만큼은 여기 그대로다. 그리고 이 강산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많은 시인들이, 김남주 헌정 시집에 참여하였다.

2012년 5월 24일에 출간된 김남주 헌정 시집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은 백무산 등 58명의 김남주의 후배 시인의 시로 채워져 있다. 58편의 시는 김남주에 대한 추억을 다룬 회고담이 아닌, ‘지금 이곳의 세계’를 김남주를 빌어 표현하려는 시적 욕망으로 가득하다. 김남주가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났지만 세계의 참혹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자본이라는 미증유의 적은 그 몸집을 무한대로 키우고 우리를 위협한다. 시인에게 한없이 치욕인 시절이고, 그렇기에 시를 써야 마땅한 시대이기도 하다.


온몸으로 우는 북

김사이

찬밥 남은 밥 가리지 않아야 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고
배설되는 온갖 욕설과 성희롱을 견디면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네
늘 10시간씩 일하고도 허덕이는 생활
식당에서 일을 하는 나는 동네북
손님이 고용주가 가정이 사회가 때린다
사람이 아니니 맞아도 말을 못 하지

내게 꽃피는 시간이 있었던가
일용직 아줌마나 돈 벌러 날아든 이주민 아가씨나
비정규직 노동자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사회가 외면한 나는 바람의 여자
허공에 소리가 뜨면 쫓아가야 하는
대기 번호
이모 띵똥 엄마 띵똥 아줌마 띵똥 여기요 저기요 띵똥

삶이 근육통 관절통으로
삐거덕거리고 절룩거린다
구석구석 축축하게 젖어 마르지 않는다
노동을 한다는 것이 아픈 일인지도 몰라

온몸을 핥아대는 천대와 멸시의 눈빛들
그래 열심히 내 몸뚱이를 때려라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라는 말 안 믿겠다
살기 위해 산목숨 걸어야 하는 현실
참으로 향기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참으로 치욕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외로운 이웃들에게 환한 달빛으로 머물고
얼굴 색이 달라도 가진 것 없어도 차별받지 않는
네가 있고 나도 있는 오색 빛깔 꿈을 꾼다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고 덜 버리는
그것이 너를 외면하지 않는 내 삶이다
울어라 북아
온몸으로 저항하자



김남주의 시는 신화가 되었지만 그의 시는 어디까지나 사람 안에 존재하는 신화였다. 김남주에게 ‘신’과 ‘신화’는 다름 아닌 ‘민중’과 ‘민중의 삶’이다. 민중의 삶과 괴리되지 않은 시를 쓰기 위하여, 더 나아가 민중을 위한 세상을 위하여 김남주는 스스로를 불태웠다.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시인의 열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세상의 발화점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위의 시를 보라. 김남주 시인의 떠난 지 20년이 지나도록 식당 아주머니는 맞고 있다. “손님이 고용주가 가정이 사회가” 그녀를 때린다.

사회는 이 땅의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놓았고, 정규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지고, 비정규직은 하청업체와 그 아래 하청업체로 나뉜다. 무기 계약직과 단기계약직으로 나뉘고 인턴과 아르바이트로 나뉜다. 취업준비생과 백수로 나뉜다. 시쳇말로 우리 모두는 결국 ‘을’이다. ‘갑’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을’. 김남주는 ‘을’이 주인 되는 세상을 바랐으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많은 주인과 또한 엄청나게 세분화된 노예로 구성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끼리 경쟁하고 우리끼리 상처입는 혼란의 시절이다. “참으로 향기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참으로 치욕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 구절은 시가 아니다. 사실 그대로며 차라리 르포다. 그것이 우리를 치욕스럽게 한다. 치욕스러운 시간에서 시를 쓰기에 선배인 김남주 시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허수경 시인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시인에 대한 애타는 감정을 ‘애정’이라 명명한다. 그렇다 우리는 시인 김남주의 투박한 미소를, 이글거리는 눈빛을, 그의 시를 사랑했다.


나의 사랑하는 시인

허수경

나는 다만 그를 나의 사랑하는 시인으로 기억한다 폭력과 피의 거리 속을 온몸으로 거닐다가 고요히 시를 쓰던 갇힌 방에서 시를 쓰던 그리고 시로만 남은 생의 모든 날숨과 들숨을 모은 시로만 오롯이 남은

나의 사랑하는 시인

그의 시를 읽으며 나는 자랐고 그의 시를 읽으며 나도 시인이 되었다 내 시인의 마음이 한없이 초라해질 때마가 귀퉁이 낡은 그의 시집을 펼치며 이국의 거리에서 하늘을 보았다 그의 시들을 읽으며 모든 세상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생각하며 걸었다

그가 번역한 하이네의 시들을 읽으며 이방에서 이방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 이 세계의 아름다운 정치시 모두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시라는 걸 간절하게 보여주던

나의 사랑하는 시인

시인의 별은 찬란하지도 초라하지도 않고 다만 매를 맞으며 빛을 뿜어내는 별이라는 걸 매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다 어느 날 저편으로 가는 별이라는 걸 보여준

나의 사랑하는 시인

결국 가면서 길 위에서 그의 시집을 다시 펼칠 때 그의 시들이 쓰여지던 시대에 우리가 아직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이편 동아시아에서 저편 오리엔트에서 그리고 모든 지구의 구석구석, 어디에서든 그의 시들이 펄펄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오늘도 여지없이 그의 시들을 읽는다.

나의 사랑하는 시인



“아름다운 정치시 모두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시”다. 지금 이 땅의 시인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가. 김남주를 생각하면 여름 햇빛에 손으로 차양을 만들 듯이 반성을 하게 된다. 양미간을 좁히고 생각한다. 작금의 시대에 대하여. 사람과 양심을 말하면 빨갱이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 문장은 잘못되었다. “그의 시들이 쓰여지던 시대에 우리가 아직도 살고 있”는 것처럼, 김남주가 살던 시절의 문장은 모두 현재형으로 바뀌어야 문법에 맞다. 20년 동안 바뀐 것이 없다는 말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빨갱이라고, 누군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누군가는 좌파라고 공격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지없이 그의 시들을 읽”어야 한다.

우리 후배들의 잘못이 이토록 크다. 산 자의 잘못이 한량없다. 2012년 시인 김남주 헌정 시집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2012년에 우리는 겨우 50%가 약간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했다. 지금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유명인사의 손짓에 열광하지만 바로 옆 쌍용자동차 분향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부정경선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별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에게 국가관을 확인 받으려 한다. 숙제 검사하듯이, 사상을 검증하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이것이 2012년인가. 그렇다면 역시나 너무나 치욕스럽다. 김남주 시인을 볼 면목이 없다. 세상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염치를 차리지 않고 싶다. 숨고 싶다. 이기지 못할 싸움에서, 겁이 많은 새처럼 도망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시민이 아닌 소시민이 되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미소 짓고 살고 있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게 감각하지 않는다. 무감(無感)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마도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은 무감의 시대에 통각을 깨우기 위한 시집일지도 모른다. 시집을 모두 읽고 나면 어딘가가 찌릿 아프다.


작은 새

함기석

나무들의 푸른 수인복을 입고 서 있는
교도소 연못가
흔들리는 부들에 앉아
물결에 어른거리는 저녁달을 보네

달의 이마에 파인 물고랑으로
금붕어들 산책을 나가고
암말의 젖은 눈망울 같은 바람이 부네

물결 따라 일렁이는 당신의 웃는 얼굴
하늘을 노을을 뿌리다
어린 별들과 함께 물속
당신의 숨결 속으로 캄캄히 가라앉고

내 가슴에서 수면에 떨어진 깃털 하나
연못 바닥, 당신이 간 아름다운 진흙별에
영원히 닿지 못하네

물들의 소리 없는 파문을 타고
사랑처럼 혁명처럼
소금쟁이 한 쌍 물풀 사이로 환하게 지나가네
물결이 연못 밖 먼 우주로 퍼져가네



혁명은 결국 사랑이다. 지금의 시인은 술자리에서조차 혁명을 말하지 않는다. 속없이 낄낄거리고 말없이 낑낑거린다. 우리는 “연못 바닥”에 있고 “당신이 간 아름다운 진흙별”에 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곳에 가야함을 우리는 잘 안다.

시인 김남주는 교도소 독방에서 은박지에 시를 썼다. 못으로 벽을 긁으며 글을 썼다. 1980년 광주를 온몸으로 지나온 그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에 닿은 시를 쓰고, 결국 1992년에 그는 죽는다. 20년이 지나 2012년이고, 우리는 죽음에 닿은 시를 쓰지 않는다. 헌정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지금 이곳의 시인들은 부끄러움으로 여름을 난다. 5월을 지나 6월의 복판으로 달려가는 해가 제 몸을 활활 태운다. 해가 땅을 비춘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의 날개와 노래가 있다.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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