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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그곳에 희망이 있다

낯선 땅으로 온 사람들의 이웃 <아시아의 친구들>

기념사업회 2003. 9. 1. 13:55


  병든 부모를 고국에 두고 돈 벌러 한국에 온 외국인노동자가 눈물을 흘리며 티비 화면에 등장한 식구들을 보고 있다. 수년 째 한국에 와 있는 그가 고향에 있는 가족을 만나길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 화면에 어른거리고 그의 소원을 담아 연예인이 이주노동자의 고향을 찾아나선다. 고향을 찾아가는 연예인의 과정은 참으로 눈물겹다.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도 지나야 하고 난감한 현실 문제(비자입국거부 등)에 부딪치기도 한다. 어렵사리 찾은 이주노동자의 고향에서는 이미 부모가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되다. 가족을 보고 싶다고 프로그램에 신청을 했던 이주노동자가 한줌의 재가 되어 있기도 한다.
  요즘 한 방송에 나오는 이주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내용이다. 물론 작위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휴먼다큐’란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여러 명의 가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노래를 하는 건지 저희들끼리 속삭이다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쇼프로그램에 지친 나같은 이에게는 그나마 영양가(?)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방송이 나간 뒤로 외국인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하니 정서를 자극하는 ‘눈물샘’은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약효를 보여준다. 티비프로그램 만큼 큰 힘을 지니지 않았을지 몰라도 백배 천배의 열정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생활과 문화를 공유하고 연대하는 단체가 있다.

  아시아와 친구되기
  “인도네시아에도 볶음밥이 있어요?” “우와, 우리랑 똑같네.”
음식이 완성되기도 전에 아이들의 입에서 신기한 듯 탄성이 흘러나온다. 동네에서나 티비에서 그저 가끔 보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대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낯선 이방인이 설명하는 그네들의 문화와 전통이 아이들 눈에는 못지않게 흥미로워 보였나 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버마의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 나라의 문화와 역사, 풍습을 소개하고 아이들은 그들의 고유의상을 입고 놀이를 즐겨보기도 하고 그들이 먹는 음식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식 '나시고랭'을 직접 만들어 보는 아이들

 
  일일 교사를 담당한 인도네시아의 얀노 선생님은 자신의 나라에서 즐겨 먹는 ‘나시고랭’이 한국의 ‘볶음밥’과 비슷하다며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다. 우리의 설날과 비슷한 그들의 라마단(1년에 한 번 부모나 형제들과 어울려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아이들은 더 진지해진다. 외국인 선생님의 나라에 대해 소개하는 것도 즐겁지만 능숙하지 않은 한국말이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3일 동안 진행된 이 체험교육은 일산지역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생활과 문화를 통해 지역과 더불어 사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과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담당하고 있는 <한살림공동체>가 공동으로 만들고 기획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바꾸기란 쉽지 않죠. 오히려 아이들에게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급하기도 했고 또 효과적일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이 프로그램은 강의식이거나 주입식이기보다는 놀이와 체험을 통한 프로그램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기획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교육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박연주(한살림 공동체)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3일이란 짧은 시간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꺼번에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제 일산에서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이라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버마 소수민족의 의상을 입고 너스레를 부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교육효과도 그러거니와 이 내용을 함께 준비한 이주노동자들도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피곤하고 지친 몸에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척박하고 냉정하기만 한 낯선 땅에 ‘자신감’도 생겼다는 느낌을 전했다. 

  그들에게서 우리를 본다
  일산은 흔히들 말하는 보통의 중산층 가정이 사는 곳이다. 비교적 젊은 핵가족 특유의  가족중심적 생활이 전형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런 도시에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이런 교육내용이 있다는 것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일산 신도시’와 ‘이주노동자’란 단어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신도시 외의 주변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3, 4천명에 달합니다. 성남이나 안산처럼 공단이 밀집한 지역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몰려 있어서 인권실태나 노동현황의 파악이 쉽고 오히려 특성화가 되어 있는데, 일산 지역은 영세업체들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니 어찌 보면 이주노동자들 속에 또 다른 소외 이주노동자로 볼 수 있는 거죠.”
  <아시아의 친구들>의 김경숙씨는 이런 일산의 지역적 특성에 대해 잠시 말을 덧붙인다. “지난 6월에는 일산 시내에 있는 공원에서 버마이주노동자들의 문화공연을 했는데 처음  우려했던 것보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괜찮았어요. 그런데 일부에서는 동네 물 흐려진다고 민원을 넣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동네 물 흐려진다’란 말에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좋은 물에 살고 있는가! 한국전쟁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우리네 아버지들이 기름 넘쳐난다는 사우디와 쿠웨이트를 오가고 아메리칸드림의 꿈을 안고 부자나라 미국에 불법 체류해 살아보려 발버둥쳤던 일이 엊그제다.

  우리 이웃이 된 이주노동자
  <아시아의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법적인 문제나 노동문제를 직접 풀어주진 못하지만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일상적인 상담을 통해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다. 말하자면 생활상담인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꼼꼼히 챙겨 대안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임금이 밀렸다고 하면 외국인노동상담소를 소개시켜 주고 건강이 나빠졌다는 상담을 받으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알려주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는 임금체불과 한국인 고용주의 체벌도 참을 수 있지만 외로움이 더 힘들다는 말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외로운 그가 어울릴 수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아시아의 친구들>은 지역 주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이 어우러져 이웃처럼 살아가기 위해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나눔꽃’ 이란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후원자들과 봉사자, 지역주민들이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을 기증한다. 사용하지 않는 티비나 냉장고에서부터 갓난아기용품, 작아서 신지 못하는 운동화, 읽지 않는 책 까지 다양한 물품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사고 다른 지역에서 온 아시아 친구들과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물건 사러 온 한국주민과도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무료’는 노동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무슨 ‘동정’의 의미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한국인들도 이주노동자가 사는 물건을 똑같이 사게 하면 그들과 동등해지는 거죠. 버마사람이나 러시아인이나 몽골족이나 조선족이나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인 저희도 다를 게 없는 거죠.”
  김경숙씨는 인종도 종족도 문화도 다르고 살아온 전통과 역사가 다르지만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네들이 우리의 ‘이웃’ 이라는 것이다.   

  아시아, 아시아
  일산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는 가게 <나눔꽃>은 단순히 물품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과 문화적 소통을 이루는 ‘사랑방’인 것이다. <아시아의 친구들>이 만들어진 지 2년도 지나지 않아서 약간의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 교수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 단체를 후원하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도 외국인 이주노동자로서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처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박노자 교수와 이네들간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어찌됐건 그도 한국에 와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2~30만에 달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불법’이든 ‘합법’ 이든 간에 그들은 낯설고 물설은 이 땅에서 그들의 2세, 3세가 태어나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늘어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정부가 고용허가제(실제 내용 중에는 불법체류자 중 3년 이하의 노동자는 합법화, 3년 이상인 자들은 내보내는)라는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기존의 연수생제도를 유지하며 병행하겠다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장기적인 정책이 되지 못한다.
  어찌됐건 그들은 우리의 옆집에서 살며 우리와 같은 공원을 산책하고 같은 가게를 이용하는 우리의 이웃이다. <아시아의 친구들>이 했던 어린이를 위한 교육내용도 버마문화를 알리려는 문화공연도 <나눔꽃> 가게 운영도 이제 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한 작은 준비를 하는 실천일 것이다. 평생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외국인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도 커다란 행운이지 않겠는가.
 
글,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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